검색보기
댓글보기
[만민보]한국 민중가요를 사랑한 청년,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이 되다
없음
일본 오사카(大阪)지방재판소가 28일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고교 수업료 무상화 배제 조치가 위법하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소식을 듣고 환호하고 있는 후지나가<br
일본 오사카(大阪)지방재판소가 28일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고교 수업료 무상화 배제 조치가 위법하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소식을 듣고 환호하고 있는 후지나가ⓒ제공 : 김명준 몽당연필 사무총장

2017년 7월 27일 일본 오사카 지방재판소 앞.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만을 고등학교 무상화 제도에서 배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숨죽여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일주일 전에 히로시마에서 같은 내용으로 진행된 재판에서는 패소했기 때문에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예상 밖 승소에 얼싸 안고 기뻐하는 무리에는 비단 재일동포들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간 ‘자이니치’(在日)라고 불리는 재일동포들에 대한 차별에 꾸준히 반대하고 목소리를 높여 온 양심적인 일본의 시민사회 인사들도 함께였다. 대학 교수이면서 시민단체 ‘오사카 조선고급학교 무상화를 요구하는 연락회’(이하 연락회)에서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후지나가 다케시(藤永壮)씨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오사카 재판의 감동이 아직 가시지 않은 지난 16일, 서울을 방문 중인 후지나가 교수를 운 좋게도 만날 수 있었다. 능숙한 한국어 인사와 함께 그가 건넨 명함에는 일본어와 영어, 한글로 이름이 적혀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질 수가 없는 재판이라고 생각했지만, 1월달 보조금 재판 결과가 좋지 않았고 히로시마는 최악이었잖아요. 변호인단을 믿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불안하긴 했어요. 그런 와중에 승소 결과가 나와서 그날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어요”

승소 판결이 나온 7월 28일은 후지나가 교수에게도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날이다. 지난 1월 오사카부(府)의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패소한데다 앞서 언급한 히로시마에서의 재판 결과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저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조선학교는 식민지 해방 이후 일본에 남은 재일동포들이 민족교육을 위해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지난 2010년 고교 무상화제도를 실시하면서 조선학교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일본 정부의 재정 지원이 없기 때문에 조선학교에 자녀를 보내려면 1년에 50만 엔(약 500만원) 정도의 결코 적지 않은 돈이 든다. 학부모 입장에선 학비가 들지 않는 일본 학교를 보내지 않고 조선 학교로 보낸다는 것 자체가 큰 용기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조선학교가 피고인 재판은 많았지만 원고가 되어서 재판에서 이긴 건 이번이 처음일 거에요. 어떤 의미에선 일본의 재판사에서도 보기드문 재판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와중에 조선학교가 처음으로 국가를 대상으로 이긴거죠. 재일한국인 역사에 있어서도 중대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런 운동에 참가할 수 있어서 자랑스러워요”

하지만 일본 사회 전체로 봤을 때에는 여전히 조선학교에 대한 지원배제 등 차별은 당연시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희망을 버려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법원이 이번 재판에서 조선학교의 손을 들어준 점은 그에게 하나의 희망을 안겨줬다.

“일본 사회 전체로서는 조선학교 차별은 당연하다는 분위기이지만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재판소가 그런 정당한 판단을 해줬다는 것은 역시 희망이 있다는 거죠. 아직 정의가 살아있다고 느꼈어요”

또한 후지나가 교수는 이번 법원의 판결에 대해 일본의 언론들도 교육문제에서 만큼은 정치적 잣대를 적용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지지를 표했다고 전했다.

“일본의 전국지에서 아사히와 마이니치는 지지했어요. 교육문제는 정치와 다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지지한다고요. 물론 산케이는 반대했고 요미우리는 침묵했어요. 히로시마 재판에서 졌을 때는 요미우리가 지지한다는 사설을 썼는데 오사카 판결에 대해선 아무것도 못 쓰더라고요. 전국지보다 지방지가 훨씬 진보적이에요. 대표적인 진보 지방지는 판결을 지지하는 그런 논설들을 냈어요. 실망하고 절망할 일이 많지만 그 속에서 희망을 볼 수 있는 판결이었다는 거죠”

한국어 스승을 통해 접하게 된 민중문화운동
한국 민중가요를 즐겨 부르는 청년이 되다

후지나가 교수의 한국과의 인연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일본 시모노세키(下関)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주위에 조선인 친구들이 많았다.

“제가 다니던 학교에도 조선인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일본 이름을 다 쓰기 때문에 처음에는 조선 사람인지 몰랐어요. 그러다 집에 놀러갔는데 불고기를 요리한다든지 해서 알게 되었죠. 아주 차별적인 건 일본 학교에서 학생 명단과 이름을 생긴 도장을 만들어요. 거기에 본명의 성(姓)이 먼저 나와요. 괄호로 일본식 성(姓)이 나오고. 우연히 보고 처음에는 무엇인지 몰랐지만 제가 친구로 사귀고 있는 사람은 결국 괄호 안에 있는 거죠. 나중에 사정을 알게 되고 한국 사람이란 걸 알았죠”

그가 본격적으로 한국과 가까워진 건 대학생 시절이다. 1979년도에 교토대에 입학한 그는 역사를 전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본사보다는 이웃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고 싶었던 후지나가 교수는 당시 인기가 높았던 중국사 대신 한국사, 그 중에서도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으로 건너가 어업을 했던 할아버지와 관련된 내용을 졸업논문을 쓰기로 했다.

“그 시기에 한국어를 공부해야겠다 싶었어요. 그 시기는 한국어를 배우는 게 하나의 운동이랄까,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공부해야하는 것이었어요. 한일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라던지, 양심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어를 배우는 분들이 많았어요”

한국이 군부독재로 삼엄한 분위기던 시절, 그는 당시 학교에 개설된 ‘조선어 자주강좌’ 강의를 통해 일본에서 한국의 문화운동을 활발히 펼치던 재일동포 3세 양민기 선생을 만나게 된다.

“(양민기 선생은)주로 한국의 민중가요나 마당극, 그림 등을 가지고 한국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재일한국인의 문화운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신 분이에요. 한국어를 그 분에게 배웠는데 ‘이런 공연 하니까 놀러와라’ 라고 해서 가다보니 길거리 공연도 가고 그 사람들과 친구가 됐죠.”

그렇게 재일동포들과 일본인들이 함께하는 민중문화패에서 활동하게 된 그는 한국의 민중가요를 소개하는 노래집을 만들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조선어 자주강좌에서 양민기 선생님의 지도 아래 한국의 민중가요를 소개하는 논문을 편집해서 책으로 내자고 했어요. 그 시기에는 민중가요 논문도 학문적으로 분석해서 나와있던 시기에요. 일단 한국에 가서 자료를 모으는 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어요. 그 시기의 운동 관련 서적도 찾고. 연대 앞에 ‘오늘의 책’ 이라는 운동 관련 서점이나 운동단체들, 민요연구회. 친구의 친구를 통해서 일본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을 찾아나섰죠”

그는 어느덧 안치환을 좋아하고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아침이슬’ 등 한국의 민중가요를 즐겨 부르는 일본의 청년이 되어 있었다. 재일조선인들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내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장의균씨의 시 '우리 아이들의 나라는'으로 직접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이후 한국 유학길에 오른 그는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연구생으로 3년간 공부했다. 당시 역사학계의 젊은 학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지금의 한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다.

후지나가 다케시 오사카산업대학 교수·조선고급학교 무상화를 요구하는 연락회(오사카) 공동대표가 16일 서울 마포구 몽당연필 카페에서 만나 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후지나가 다케시 오사카산업대학 교수·조선고급학교 무상화를 요구하는 연락회(오사카) 공동대표가 16일 서울 마포구 몽당연필 카페에서 만나 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일본인들, ‘일본이 아시아에서 최고’란 인식 여전해”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한 후지나가 교수는 현재 오사카산업대에서 동아시아의 문화와 사회 등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이번 서울 방문은 학생들의 한국어 단기 어학연수 프로그램의 인솔 차원에서 이뤄졌다. 그를 만나기 하루 전날은 73주년을 맞은 광복절이었다. 어느 때보다 한일 관계가 안 좋은 이 시기를 양국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해 온 그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일본이 어떤 식으로 이웃나라 사람들과 대등한 관계로 사귈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시기라고 생각해요. 많은 일본 사람들이 식민지배나 제국주의를 반대하면서도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최고다’라는 인식이 잡혀있는 것 같아요. ‘리버럴(liberal)' 이라고 하는 분들 중에도 ’위안부‘ 문제 등 여러 문제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지향을 하는 분들이 꽤 있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일본 사람들이 자신이 의식하지 않고 있지만 우월감에 기초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양국관계가 잘 안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지나가 교수는 그러한 점에서 최근 한류 붐을 통해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일본이 최고다’라는 기존의 인식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점은 고무할 만한 변화라고 지적했다. 이들이 현실정치에는 관심이 없지만 이웃나라에 존경할 만한 대상이 생기다보면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저도 60에 가까운 나이다보니 ‘일본이 아시아에서 최고다’라는 인식 속에서 산 사람이긴 해요. 하지만 그렇다해도 존경하는 한국 분들이 있고,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곁에서 보고 있던 세대로서 자기 힘으로 그런 사회를 발전시켰다는 것에 대해 한국 사회에 존경심을 갖고 있어요. 아직 일본 사회가 배외적인 분위기가 심하지만 다른 발상에서 한국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어요. 눈에는 안 보이지만 희망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소영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