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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적 뇌물’이라는 황당한 논리로 이재용 형량 최대한 깎아준 사법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뇌물공여 등의 혐의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뇌물공여 등의 혐의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전 정권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수백억원대 뇌물을 제공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혐의를 일부 유죄로 판단해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지만, 양형 이유를 살펴보면 재벌에 대한 재판부의 관대한 시각과 논리적 모순점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25일 오후 이 부회장 등의 뇌물 사건 선고공판에서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직원들의 뇌물, 횡령, 국외재산도피, 범죄수익은닉 혐의 상당 부분을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구형한 징역 12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징역 5년 형량을 산정하는 데 고려된 건 재판부가 별도로 제시한 ‘양형요인’이다. 양형요인을 들여다보면 재판부가 ‘가중’ 요소보다는 이 부회장 등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감형’ 요소를 비중있게 적용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재용 승계 위한 뇌물’이라면서도 ‘수동적 뇌물’이라는 모순된 양형 사유

재판부는 이 부회장 등 피고인 모두에 대한 감형 사유로 “피고인들은 ‘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이나 이를 구성하는 개별 현안에 관해 대통령에게 적극적·명시적으로 청탁을 하고 뇌물을 공여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해 뇌물을 공여한 것”이라며 이른바 ‘수동적 뇌물’이라는 논리를 제시했다.

이어 “승계작업은 피고인 이재용의 계열사 지배력 확보를 위한 것이지만,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삼성그룹과 각 계열사의 이익에도 기여하는 면이 있다고 인정된다”며 “지배구조 개편 과정이 오로지 피고인 이재용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은 피고인들의 뇌물 및 횡령 범행에 대한 비난 가능성을 완화시키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 개인에 대해서도 “직접 대통령으로부터 승마와 영재센터에 대한 적극적·구체적인 지원 요구를 받은 당사자로서 대통령의 요구를 쉽사리 거절하거나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며, 수동적으로 뇌물공여 범행에 관한 의사결정을 한 것”이라며 “피고인의 뇌물공여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소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별도의 양형 사유를 제시했다.

이어 “피고인이 ‘승계작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개별 현안들에 관하여 대통령에게 청탁하였다거나 그 청탁의 결과로 자신이나 삼성그룹에 부당하게 유리한 결과를 얻었다는 사실까지는 확인되지 않고, 승계작업의 추진이 오로지 피고인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수동적 뇌물죄’라는 재판부의 논리는 판결 주문에서 제시한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 유죄 판단 논리와 배치되며, ‘강압에 의한 피해자’라는 그동안의 삼성 측 논리를 상당 부분 반영한 것이다.

재판부는 주문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순환출자 고리 해소 작업 등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이며, 이 부회장은 승계작업을 위한 기업 지배구조 개편과 그 필요성을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승계작업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지원을 기대하고 최순실 일가에 승마지원을 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재판부의 주문과 감형 사유를 종합하면,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지배구조 개편을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원 요구를 수동적으로 응했다’는 모순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이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전제해 놓고, 정작 ‘수동적 뇌물’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형량을 깎은 것이다.

재판부가 다른 감형 요소로 제시한 ‘승계작업 추진은 계열사들 이익에도 기여하므로, 이 부회장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는 것도 납득이 어려운 대목이다. 이 부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쥐게 되면 계열사들의 이익이 곧 이 부회장의 이익으로 직결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이 부회장 외 다른 계열사들의 이익이 무엇인지도 특정하지 않았다. 나아가 ‘계열사들 이익’을 감형 요소라고 하면서, 계열사 합병에 대한 이해관계가 달랐던 주주들의 손해는 배척했다.

감형 사유 내에서도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 부분이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대통령의 지원 요구에 응함으로서 승계작업에 묵시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한 사실은 인정된다”고 해놓고 “‘부당하게’ 유리한 성과를 얻었다는 사실까지는 확인되지는 않는다”는 대목이다. 이는 ‘부정한 청탁을 했지만 부당한 성과를 얻은 건 아니다’ 혹은 ‘승계작업 추진은 계열사들의 이익에 기여하지만 유리한 성과는 아니다’는 말과 같다. 재판부가 감형 사유를 무리하게 집어넣으려다 내적 모순에 빠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재판부가 선고할 수 있는 ‘최소’ 형량

재판부는 이렇게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 ‘징역 5년’이라는 형량을 제시했다. 이는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을 때 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형량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의 혐의 중 처벌 기준이 가장 높은 것이 ‘50억 이상의 경우 징역 10년 이상’의 법정형 하한을 두고 있는 재산국외도피 혐의다. 재판에서 이 부회장이 빼돌린 것으로 인정된 액수는 특검이 공소 제기한 79억원 중 37억원이다. 국외로 빼돌린 돈이 50억원에 못 미치면 징역 5년 이상의 법정형 하한을 적용받는다.

이 부회장의 경우 뇌물과 횡령 등 다른 혐의까지 합치면 경합범 가중 기준에 따라 재산국외도피 혐의나 횡령 혐의의 법률상 장기 한도인 '30년'의 1.5배인 최대 징역 45년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즉 최저 5년에서 최장 45년을 선고할 수 있으나 판사는 최저형은 징역 5년을 택한 것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김준우 변호사는 “계산법 자체가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판사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감형을 해준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강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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