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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전 비겁했습니다” MBC PD수첩 막내PD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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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대통령은 누군가?", "존경하는 영부인은 누군가?", "광화문 세월호 천막은 언제 치웠으면 좋겠는가", "2012년 노조파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당시 안광환 전 MBC 사장과 임원들은 2015년 피디 경력 공개채용 최종면접 장에서 한 지원자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그때 면접에 들어가서 소신 있게 말하지는 않았어요. 비겁하게 대답했죠. 그 사람들에게 거슬리지 않는 수준에서 말했죠. 만약 이게 싸움이었다면 먼저 꿇고 들어가는 것이었죠."

최종면접에 올라갔던 그는 정치적 의도가 뻔히 보이는 노골적인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어렵게 그 날의 얘기를 꺼낸 최원준(33) 피디를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만났다. 최 피디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인터뷰만 하다가, 인터뷰를 받는 상황에 당황해 어쩔 줄 몰라했지만,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여전히 MBC에는 경력직으로 들어온 신입들에 대한 경계심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표현이 옳은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게 있고, 또 저는 그런 게 이해가 돼요. 최소한 이렇게 들어온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마음으로 공영방송 MBC에 한 부분이 되려고 하는 지를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피디수첩 최원준 피디
피디수첩 최원준 피디ⓒ송일준 페이스북

"왜 그 시절에 MBC에 들어갔어? 라고 묻는다면 전 할 말이 없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엄혹한 시절에 이상한 면접들을 통과해서... 자격지심일 수도 있고, 제가 지고 가야 할 짐일 수도 있어요." 그는 MBC 구성원들을 향한 '마음의 빚'이라고 말했다.

최 피디는 합격 이후 시사제작국에 발령됐다. 다른 매체에서 휴먼 다큐를 약 3년 동안 제작했던 그가 처음으로 시사 프로그램의 피디가 되고 말았다. 그것도 MBC에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망가져 버린 피디수첩에. 당시만 해도 기존 공채 피디들의 경계심이 있어 경력직 피디들이 한 데 섞이기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벽은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피디수첩에 처음 발령돼서 참 다행이에요. 거기서 선배들을 만나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게 최소한 제가 숨지 않고 앞에 나설 수 있게 계기를 마련해준 프로그램인 것 같아요."

'죽은 권력 더이상 물어뜯지 마라'

그가 처음 피디수첩에서 조연출 당시 선배 2명이 두산 인프라코어 희망퇴직과 관련한 아이템을 진행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편향적이라는 이유로 국장선에서 아이템은 엎어졌다. 결국 그날 방송은 '데이트폭력'으로 대체됐다.

"전 그때부터 선배들에게 아이템 검열이 상시화되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어요. 선배들은 상시화된 아이템 검열에 저항해도 소용이 없다 혹은 거기서(간부들이) 그런 걸 기다리고 있을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느껴졌어요. 그런 것으로 꼬투리를 잡아서 피디들을 점점 내보내고 다른 사람들을 채울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점점 커지고 있었을 때, 피디들을 아이템을 보도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다같이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피디들이 방송을 위해 검열을 피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할 정도로 사측의 상시적인 검열에 노출돼 있었다.

MBC 피디수첩 지난 4월 18일 '세월호, 101분의 기록' 방송 화면
MBC 피디수첩 지난 4월 18일 '세월호, 101분의 기록' 방송 화면ⓒMBC 방송화면 캡처

그는 동기 피디와 함께 올해 4월 18일 피디수첩에서 지금까지 다루지 못했던 '세월호, 101분의 기록' 편으로 제작할 수 있게 됐다. 무려 3년 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시사제작국장은 '국가'와 '청와대'라는 말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최 피디가 '왜 청와대를 노출시키지 말아야 되냐'고 항의하자 '지나치게 청와대를 부각시켜 비난하고자하는 의도가 보인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촛불로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검열은 계속됐다.

"끝까지 우기니까 그러면 (청와대를) 앞에만 넣고 뒤에만 빼자는 식으로 나오는 거예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 검열인 거예요.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내가 이만큼의 성의를 보였다는 것을 누군가에게는 보여주고 싶은 거죠."

MBC 사원들이 사장을 향해 내려오라고 성명을 내고, 김민식 피디는 사옥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외치고 다니던 상황 속에서 피디수첩의 제작거부는 '비장한 각오'라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반응'에 가까웠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말처럼 MBC 구성원들의 고통의 임계점에 달했다.

"MBC라고 부르는 국민이 없었어요"

그는 "MBC라고 부르는 국민이 없었어요"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이후 그의 입에선 "엠XX"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촛불집회에 나가면 불신의 시선이 깔려있었고, 무력감과 패배감이 짓눌렀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사장 말고도 MBC에서 일하는 구성원 모두가 XX인거예요. 다 적폐세력에 동조한 사람들이고. 저는 망가진 공영방송의 일원으로서 그분들한테 인터뷰하려는 사람이에요. 얼마나 괘씸했겠어요. 국민들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너희들은 안에서 편하게 월급받는 동안 나라가 이렇게 망가졌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시민 한 분을 인터뷰 하기 위해 엄청 오래 설득하고 또 오래 혼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더 괴로웠던 순간은 촛불 집회가 길어지다가 태극기 집회가 커졌던 상황이었다. 어디 언론사야? 묻던 태극기 집회 참가자는 다른 언론사들과의 인터뷰를 물리치더니, MBC 한마디에 갑자기 태도가 180도로 바꾸었다. "그나마 잘하고 있는 방송사야"라고 추켜세우면서 흔쾌히 인터뷰를 응해줬다.

"그때부터 미칠 거 같았어요. 저의 상식에서 비춰볼 때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인터뷰하는) 그 상황에서 헛웃음이 나면서 다시 한 번 좌절에 빠지게 했어요. 내가 속한 방송사가 어떤 지경에 이르렀구나를 느끼게 됐죠."

MBC 피디수첩 피디들의 모습 (왼쪽에서 4번째 최원준 피디)
MBC 피디수첩 피디들의 모습 (왼쪽에서 4번째 최원준 피디)ⓒ최원준 PD 제공

건강했던 MBC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에겐 과거 MBC에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했고, 피디가 자신의 소신과 양심에 따라서 제작을 할 수 있었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고 말해주는 선배들이 있었다. 그도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게 느껴졌다.

"저는 소위말하는 사주가 있는 회사, 엄혹한 회사를 다녀봤기 때문에 그래도 이 회사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느꼈어요. 경영진이 위계로 조직의 힘으로 누르는 것에서 여전히 건강하게 반발할 수 있는 마음들을 가지고 있고 투쟁을 할 수 있다는 힘이 느껴졌어요. 그런 건강한 조직이 되살아 나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었습니다"

파업에 두려움이 없었냐는 질문에 "김장겸 사장의 퇴진이라면 두려움이 없었다. 2012년에 선배들이 했던 싸움이 이제는 끝낼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꽉 차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과거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건강조직이었던 엠비씨로 돌아갈 수 있느냐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편한 회사생활'이 아닌 그가 든 피켓의 문구처럼 "피디수첩이 다시 우리시대의 정직한 목격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MBC 안에는 파업 당시 쫓겨난 동료들의 자리를 채우는 대체인력, 파업 이후에 매년 뽑혔던 경력직들, 파업을 통해서 현장에서 쫓겨나고 상처받았던 사람들에 대한 감정의 고리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혼자 또라이로 두지 않게 해서 다행이다"

"MBC가 어떤 상처를 입었느냐하면 내가 저 사람은 못 믿는거죠. 저 사람이 상식적이고 양심적일 것이다라는 믿음이 사라진 거예요." 과거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이유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영화 '공범자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하나를 꼽았다. MBC 사옥에서 '김장겸은 물러가라'고 외치며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하던 김민식 피디가 자신에게 아내가 해줬던 말을 전하며 갑자기 흐느껴 우는 장면이다.

"당신이 이렇게까지 했는데 내부에서 아무도 안 하면 당신은 또라이야. 당신 혼자 또라이되고 마는 거야."

"김민식 선배가 공범자 영화에서 보면 만약에 이렇게 저 혼자하고 끝나게 되면 전 진짜 또라이가 됩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눈물을 보이시는데 조합원을 믿고 있지만 혼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그런 분을 혼자 또라이로 두지 않게 해서 너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양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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