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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평화를 일구는 노래, 평화가 되는 노래

인천에는 인천평화창작가요제가 있다. 올해로 3회째다. 2014년에 시작한 인천평화창작가요제는 여러모로 독보적이다. 일단 평화를 주제로 한 창작가요제는 인천평화창작가요제가 유일하다. 한국에서 열리는 대중음악 관련 공모/선발 프로그램은 대부분 특정한 주제를 정하지 않는다. 특정 장르로 한정하거나, 장르 전체를 아울러 음악성을 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보적이거나 사회적인 주제를 담은 대중음악 공모/선발사업은 광주광역시에서 열리는 오월창작가요제와 통일부에서 주관하는 유니뮤직레이스 정도이다. 그런데 오월창작가요제는 518기념재단이 주최하고, 유니뮤직레이스는 통일부가 주최한다.

인천평화창작가요제 대상팀 강태구와 강혜인
인천평화창작가요제 대상팀 강태구와 강혜인ⓒ인천평화창작가요제 조직위원회

반면 인천평화창작가요제는 인천광역시에서 공동 주최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가 주최하고 있다. 올해에는 경인방송이 함께 주최했는데, 인천창작가요제를 끌고 가는 힘은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를 중심으로 한 인천의 시민문화역량이다. 처음부터 그랬다.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가 조직위원회를 꾸려 인천평화창작가요제를 열었다. 2014년 시를 설득해 예산을 확보했고, 시 예산 지원이 중단되자 어쩔 수 없이 한 해를 거르고 시민들의 힘을 모아 가요제를 다시 이어나갔다. 대부분의 문화예술관련 지원공모사업을 관이나 기업 등에서 주도하거나, 관과 기업의 예산지원을 빌어 운영하는 현실에서도 인천평화창작가요제는 시민의 자발성과 주도성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평화라는 주제를 선택했다는 점에도 큰 의미가 있다. 사드 배치 논란과 북한 핵실험 논란은 한반도에 어떤 가치가 절실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데 남북이 계속 대치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한국에서 평화는 통일보다 덜 중요한 가치처럼 여겨졌다.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하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통일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그리고 통일을 이뤄가고, 통일을 이룬 후에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평화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평화는 항상 통일 이후에나 가능한 과제로 밀려났다.

평화란 평등과 조화가 어우러진 가치

평화에 대한 피상적인 인식도 여전하다. 평화는 그저 싸움이 없는 조용한 상태를 말하지 않는다. 평화는 평등과 조화가 어우러진 가치이다. 평화는 존재하는 생명과 비생명, 연령/성/민족/지역/계급 등의 차이를 차별의 원인으로 만들지 않고 평등을 추구할 때 가능하다. 평등을 토대로 조화를 이루는 일이 평화이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어울리는 일이 평화가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평화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일처럼 여겨지면서 현실에 만연한 불평등과 불화를 가리는 역할을 하고 말았다. 평화는 평등을 향한 치열한 쟁투와 조화를 향한 끝없는 대화와 공감 없이는 불가능함에도 고민 없이 아무나 쓰는 하나마나한 이야기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특히 인천은 평화의 가치가 더욱 소중한 지역이었다. 한반도 어디라고 평화가 소중하지 않을까 싶지만 인천은 강제적인 근대화의 시발이 된 도시이고, 한국전쟁의 핵심적인 전투현장이었다. 남북 해상 분쟁의 현장과도 가까워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도시이다. 지역 내에서 평화를 키우고 지켜나가야 할 이유가 분명했다. 그럼에도 문화예술의 힘으로 평화를 만드는 작업을 관이 하지 않고 지역의 시민문화역량이 먼저 시작한 것이다.

2014년에 시작한 인천평화창작가요제에는 177곡에 이르는 음악인들이 응모했다. 음원 심사와 공개 오디션 심사를 거친 후 진행한 본선에서는 솔가와 이란의 <같이 살자>가 대상을 차지했다. 시의 지원이 중단되어 한 해 거르고 어렵게 재개한 2016년 가요제에서는 132곡이 응모해 단식광대의 <새벽달>이 대상을 차지했다. 올해 가요제에서는 119곡이 응모해 강태구+강혜인의 <둘>이 대상을 차지했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른 기관에서 진행하는 대중음악 공모사업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많은 뮤지션들이 계속 응모했다. 꽤 이름 있는 뮤지션들과 인디/비주류 뮤지션, 아마추어 뮤지션, 뮤지션 지망 학생 등이 여러 장르의 음악으로 응모한 외형만으로는 다른 공모사업과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인천평화창작가요제는 평화라는 특별한 주제를 가진 공모사업이고, 막 시작한 프로그램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많은 뮤지션들이 응모한 결과는 그만큼 조직위원회가 발로 뛴 덕분이었다. 주요 도시의 공연장과 관련 학과, 뮤지션 관련 커뮤니티, 시민단체 등등에 부지런히 홍보하지 않았다면 만들어낼 수 없는 결과였다. 물론 요즘 음악인으로 생활하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음악인들이 각종 공모/지원사업에 적극 응모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가요제에 대한 관심이 저절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평화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콘서트

좋은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에서는 실무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고, 실무능력이 높은 집단에서는 가치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가요제는 가치의 문제의식을 끝까지 놓지 않았고, 하는 일들은 모두 순조롭고 자연스러울 만큼 능숙했다. 조직위원회는 단지 가요제 공모/선발사업을 진행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참여 뮤지션과 워크샵을 하고, 본선곡을 CD로 담는 등 사업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참여하는 뮤지션과 시민들 모두 평화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사고 없이 마무리함으로써 음악을 즐기며 음악의 역할과 감동을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다고 아쉬움이 남지 않을 리는 없다. 평화창작가요제임에도 평화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이해한 곡이 많지는 않았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평화를 피상적으로만 이해해왔기 때문이었다. 민중가요 진영에서도 평화에 대한 곡이 많지 않은 현실은 우리 사회의 일천한 평화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좀 더 많은 전문음악인들이 참여하지 않은 부분도 아쉬운 부분이었으나 이 부분은 가요제에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었다. 가장 큰 아쉬움은 평화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지 못한 지자체에서 지속적으로 함께 하지 않음으로 인해 가요제가 안착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민과 관의 문제의식이 만나고 함께 할 때 더 안정되고 더 큰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음에도 지역에서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천평화창작가요제 포스터
인천평화창작가요제 포스터ⓒ인천평화창작가요제 조직위원회

하지만 인천평화창작가요제가 열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더 많은 평화의 노래, 더 다양한 평화의 노래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더 많은 음악인들이 어떻게 평화를 노래할지 고민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을 것이다. 1회부터 3회까지 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세 곡의 노래는 민중가요 진영에 한정되었던 평화의 노래가 다른 장르, 다른 메시지로 풍부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올해 대상곡 강태구+강혜인의 <둘>은 평화를 직접 노래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너는 나의 전부는 아니지만 네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어. 너는 내 삶의 이유는 아니지만 네가 없는 삶은 있을 수 없어”라는 애틋하고 순정한 마음은 평화를 그리는 마음이나 평화 그 자체와 다르지 않다. 평화는 이처럼 애틋하고 순정하고 간절한 마음이다. 이 마음이 없는 평화는 평화라고 할 수 없다. 어쿠스틱 기타와 보컬, 바이올린 연주만으로 이루어진 소박한 곡임에도 강태구와 강혜인은 가슴 뭉클할만큼 아름다운 멜로디와 진심어린 노랫말로 관객과 심사위원을 사로잡았다.

노래가 곧바로 평화가 되지는 못할지라도 노래를 듣는 순간만큼은 평화로 충만할 수 있다. 이런 노래가 하나 둘 쌓인다면, 이런 노래를 듣는 시간이 하나 둘 쌓인다면 이윽고 평화가 되리라. 평화는 완성된 순간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지금 평화를, 더 많은 노래와 함께 지금 평화를. 그리고 인천평화창작가요제에 더 많은 관심을.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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