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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밴드 팎, ‘살풀이’로 세상의 모든 사악함을 베어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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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팎

한국대중음악시장에서 다양성은 이미 충분하다. 록, 알앤비, 일렉트로닉, 재즈, 팝, 포크, 힙합을 비롯한 대부분의 장르에서 완성도 높은 음악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해외의 대중음악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다만 모를 뿐이다. 음악 마니아가 아니라면, 열심히 찾아드는 사람이 아니라면 있어도 있는지 모를 뿐이다. 테크놀로지가 발전해서 스마트폰 몇 번만 클릭하면 되는데도 모른다. 아이돌 그룹들 말고, 노래 잘하는 팝 뮤지션들 말고, 오래된 스타들 말고 여러 장르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모른다. 오래 활동한 뮤지션들을 신화와 전설로 떠받들 줄은 알아도, 훗날 신화가 되고 전설이 될 뮤지션은 모른다. 온라인 음악서비스 차트에 눈과 귀가 집중되는 동안 음악의 다양성을 지키고, 서로 다른 음악 언어의 아름다움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모른 채 살고 있다. 이제 음악은 정보와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단숨에 매혹시켜야 하지만, 금세 잊어버리게 되는 콘텐츠 중 하나일뿐이다. 뮤직비디오와 캐릭터와 입담으로 눈길을 끌고 재미를 주면 좋으련만 세상의 모든 뮤지션이 그렇게 다재다능할 수 있을까. 사실 음악은 그저 음악일 뿐 다른 무엇이 될 수 없을 때가 훨씬 많다. 그러나 음악은 그저 음악일뿐이어도 충분하지 않은가. 최근 밴드 팎이 내놓은 [살풀이]도 마찬가지이다.

해파리소년과 아폴로18에서 활동한 뮤지션 김대인이 박현석, 김태호와 2014년 5월에 결성한 밴드 팎(Pakk)는 2016년 카세트 테이프로 [곡소리] 음반을 발표한바 있다. 3인조 밴드의 체제로도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를 폭발시켰던 팎은 이번 음반에서도 폭발적인 사운드를 자유롭고 농염하고 장엄하게 펼쳐놓았다. 밴드의 리더인 김대인은 음반 소개 글에 이렇게 적었다. “곡소리가 가득했던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하고 부조리가 판을 치며 추악한 모리배들로 가득하다.”고. “상처 입은 자들은 비루한 술잔을 기울이며 보이지 않는 내일을 안주 삼아 자위하지만, 슬픔은 분노를 넘어 살기를 품고 비수가 되어 서로에게 꽂힌다. 이 앨범은 현세에 가득 차 있는 악한 기운들에 대한 살풀이다.”라고.

그렇다. 이 음반은 비분강개와 분노가 빚어낸 음반이다. 전작의 제목이기도 했던 ‘곡소리’의 시간이 지나가고도 불공평과 부조리와 추악한 모리배가 넘실대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이 음반을 만들었다. 밴드 팎은 그렇다고 민중가요처럼 세상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 대신 팎은 살풀이를 빌어온다. 무속 신앙에 기반을 둔 살풀이는 ‘살’이라고 표현하는 사악한 기운을 모조리 풀어 없애기 위한 대응방식이다. 무속 음악과 노래, 춤을 결합해 기도하고 춤추고 노래하면서 살을 소멸시킨다. 살을 푼다고 표현하는 무속신앙의 대응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묻는 일은 의미가 없다. 사악함에 대한 종교적 대응이 예술의 형태로 형성되고, 독자적인 예술 장르로 이어져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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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팎

살이라는 사악함에 맞서 싸우는 의식은 당연히 격렬한 쟁투일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존재한다고 믿는 실체에 다가가 말을 걸고 싸우고 물리치는 살풀이 의식은 살이 죽거나 내가 죽는 삶과 죽음의 한 판 갈림길이다. 살이 죽어야만 내가 살고 우리가 산다. 목숨을 건 싸움과 상대의 죽음으로서만 삶이 지켜지는 것이다. 그 싸움은 영적인 세계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밴드 팎은 그 격렬함과 사이키데릭함을 록의 언어로 재현한다. ‘연적’, ‘곤’, ‘살’, ‘협’, ‘해’, ‘악’, ‘겁’, ‘유’, ‘파’, ‘재’, ‘여적’으로 이어지는 11곡의 음악은 록으로 수행하는 한 판의 제의이다. 팎은 살풀이라는 방식을 제목으로 쓰고 있지만 전통음악의 어법을 빌어오거나 계승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들이 해왔던 록 음악 어법으로도 동일한 대결과 기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11곡의 음악은 노랫말조차 주문처럼 읊조리고,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 베이스 기타의 즉흥성을 극대화하면서 어울리고 교접하는 순간의 뜨겁고 분방한 에너지를 고스란히 옮겨 담았다. 일렉트릭 기타의 리프가 반복적으로 돌출하면서 테마를 던져놓았다가 순식간에 탈주하고, 드럼은 일렉트릭 기타가 재현한 장엄한 쟁투에 뼈대와 속도감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결코 예상할 수 없는 살풀이의 쟁투가 그러하듯 이들의 음악 역시 예상할 수 있는 경로를 충실하게 따라가지 않는다. 여기서 튀어나오고 저기서 튀어나오는 살들, 여기로 숨고 저기로 숨는 살들을 쫓아가듯 리듬과 멜로디와 사운드 모두 변화무쌍하다. 밴드 팎은 살풀이에 깃든 간절함과 치열함을 자유분방한 기승전결의 서사로 표현해냄과 동시에 매 순간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불어넣는다. 베이스 기타, 일렉트릭 기타, 드럼의 연주가 개별적으로 내달리거나 합쳐질 때 음악은 때로는 호쾌하고 때로는 장엄하다. 때로는 맹렬하고 때로는 고독하다. 분노의 쟁투를 대신하는 연주는 그 순간이 재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잠시도 놓치지 않는다. 밴드 팎은 거칠고 생생한 분노의 에너지를 아름다움으로 만들고, 간절한 기원이 되어 숭고해지는 서사 역시 아름답게 만든다. 헤비메탈과 하드코어, 포스트록을 넘나드는 음악에서 장르 언어를 내밀하게 구분하는 일은 별 의미가 없다. 밴드 팎 역시 개별 장르의 언어를 충실하게 재현하는 것보다 그 언어들이 지닌 장점을 최대한 끌어내고 뒤섞음으로써 자신들이 표현하려 하는 분노와 간절함을 적확하게 담아내고 증폭하는데 열중할 뿐이다. 질주하는 듯 내달리다가 순식간에 방향을 바꿔 몰아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에너지는 한결같이 충만하고 전투적이며 아름답다.

이 음반은 팎이라는 밴드의 에너지와 기량을 보여주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은 음반이고, 2017년 한국 록의 역사와 깊이를 증명하는 역작이다. 또한 촛불이 꺼지고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한 오늘 우리의 무의식 안에 담긴 열렬한 욕망을 드러내는 문제적 작품이기도 하다. 예의 바르고 단정한 언어로는 도저히 다 담아낼 수 없는 열망. 쉽게 꺾이고 잊고 용서할 수 없는 마음들이 음악 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온갖 살들이 다 풀릴 때까지 가만히 잊지 않겠다고. 다 쏟아내고 다 베어버리고 새롭게 만들어낼 때까지 춤추고 노래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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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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