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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호 칼럼] 백남기 농민 1주기, 농민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지난해 11월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영결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안희정 충남지사 등이 참석해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영결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안희정 충남지사 등이 참석해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9월 25일은 고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지 1주기가 되는 날이다. 고인의 장례식 날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국민들은 “우리가 백남기다”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다. 이렇게 시작된 거대한 촛불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박근혜 정권을 탄핵시키는 촛불혁명을 이루었다.

이렇듯 고인의 죽음은 이명박-박근혜 정권하에서 고사되기 직전에 놓여 있던 한국의 민주주의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비록 적폐청산과 민주주의의 진전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점도 있지만 어쨌든 그 방향으로 조금씩 전진해 나가고 있다. 고인이 생전에 바라마지 않았던 민주주의가 다시금 새살이 돋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인의 또 다른 유지이기도 한 ‘농민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고인이 목청 높여 외쳤던 “쌀값 보장, 밥쌀 수입 중단”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는 농민들의 절박한 요구로 남아 있다. 쌀값 폭락 사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상 최악의 폭락사태를 빚었던 작년에 비해 올해 쌀값은 소폭 오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전히 정상적인 수준으로 회복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 될 것이다. 특히,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임명으로 한미FTA 재협상과 WTO 쌀 관세율 검증협의 과정에서 또 다시 농민이 희생양으로 내몰릴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촛불로 탄생한 새 정부의 농업정책은 고인의 유지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농민들의 입에서 실망과 분노의 소리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농정의 방향전환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농민들은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나 새 정부 농정의 5년 기본계획이라 할 수 있는 100대 국정과제가 발표된 후 이러한 기대감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농정과제들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농업정책과 별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갈 길 먼 농민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무엇보다도 농정의 목표를 새로 설정하고 농정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던 약속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농업과 농민을 죽이는 농정에서 농업과 농민을 살리는 농정으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했지만 여전히 살농정책(殺農政策)의 기본 틀이 새 정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기존 농정이 새 정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게 된 것은 기존 농정을 추진했던 관료들이 새 정부의 농정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기존 농정 적폐의 몸통들이 청산되기는커녕 오히려 새 정부의 농정계획을 주도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농민의 손에 주어진 성과라고는 쌀 우선지급금 환수 문제를 해결하고, GMO 작물생산을 중단시킨 정도이다. 이것 역시 새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했다기보다는 당면한 현안 문제에 대해 농민들이 현장에서 투쟁하고 농성을 벌인 결과로 얻은 성과이다. 새 정부에서도 아스팔트 농사를 지어야만 하는 농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척 하는 농정의 구태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5일 열린 백남기 농민 장례식 노제에 이낙연 국무총리(왼쪽)와 장휘국 광주교육감이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지난해 11월 5일 열린 백남기 농민 장례식 노제에 이낙연 국무총리(왼쪽)와 장휘국 광주교육감이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김주형 기자

지금 이대로 간다면 새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은 고인을 똑바로 바라볼 면목이 없을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고인의 1주기를 맞아서도 여전히 농정에 대한 분노와 성토는 이전과 다름없이 이어진다면 어찌 고인에게 면목이 서겠는가.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새 정부는 기존의 100대 국정과제에 있는 농정 부분을 폐기해야 한다. 적폐 관료들이 만든 농정계획 대신에 농민과 국민이 참여하여 농정의 큰 그림을 새로 그려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대통령 직속 특별기구를 하루라도 빨리 구성하여 운영토록 해야 한다. 이 특별기구가 농민과 국민의 여망이 담긴 새로운 농정계획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그나마 고인의 뜻을 외면하지 않는 최소한의 길임을 새 정부와 대통령이 잊지 말기를 기대한다.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소장, 건국대 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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