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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교의 인문학 교실] 학생폭력 대책, 처벌 아닌 다른 길을 찾자
학폭위가 열린 지난 15일 전북 전주시 해당 중학교 앞에서 유족과 학부모들이 마스크를 쓰고 침묵시위를 벌이는 모습이다. 2017.09.18.
학폭위가 열린 지난 15일 전북 전주시 해당 중학교 앞에서 유족과 학부모들이 마스크를 쓰고 침묵시위를 벌이는 모습이다. 2017.09.18.ⓒ뉴시스

근래에 학교폭력 관련 보도가 여럿 있었다. 지난 8월 말 전주의 한 여중생이 안타깝게도 아파트 15층에서 투신해 죽었다. 1년 가까이 친구들한테서 괴롭힘을 겪은 결과다. 9월 초에는 부산의 한 여중생이 친구들한테서 의자와 유리병 등으로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됐다. 잘 알려진 두 사건 말고도 부천과 강릉 등지에서도 학생 폭력 사건이 보고됐다.

당장 교육청에서 대응의 몸짓을 보였다. 경기와 충북, 경북 교육청이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의 추미애 대표가 “소년법 개정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며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이를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비쳤고, 같은 당의 표창원 국회의원이 11월까지 (처벌을 강화하는) 소년법 개정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바른정당의 하태경 최고위원도 “강력 처벌이 필요하다”며 최고형량을 15년에서 20년으로 늘리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것으로 충분한가? 교육청과 국회가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으니 이쯤에서 우리들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저마다 생업生業으로 복귀해도 괜찮겠는가?

처벌이 능사인가?

전주의 가해 학생들은 별로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다. 말(언어)로 친구를 깔아뭉갰을 뿐이다. 그런데 친구가 충격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괴롭힘의 결과가 끔찍하므로 이들은 법정 최고형의 형벌을, 그것도 기준을 더 높여 선고받아야 할까? 언어폭력의 경우, “이런 말은 몇 년, 저런 말은 몇 년에 처한다”고 객관적 기준을 마련할 수나 있는가?

부산의 가해 학생들은 즈그덜 스스로 자기들의 행동(폭행)을 SNS로 알렸다. “우리는 얼마나 멋진(대담한) 사람이냐!” 무슨 조직폭력배를 닮은 일진 불량써클의 학생이라면 제 행동의 불법성을 스스로 알았으련만(그래야 경찰의 단속망을 피할 수 있으니까) 이들은 그런 관념도 없었다. 세상일의 옳고 그름에 대해 최소한의 관념도 품지 않은 유아幼兒 수준의 아이들을 형벌로 교화敎化할 수 있는가?

지난 1일 부산에서 여중생들이 또래 여학생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폭행하고 있는 모습. CCTV 화면 캡쳐.
지난 1일 부산에서 여중생들이 또래 여학생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폭행하고 있는 모습. CCTV 화면 캡쳐.ⓒ민중의소리

형벌로써 범죄자를 교화할 수 있는지 여부는 해묵은 논쟁거리다. 학자들은 대부분 ‘그거, 어렵다’는 쪽으로 입을 모은다. 그런데 보수 정치인들은 ‘교화 여부’는 따지지 않고 그저 분노가 들끓는 대중 여론에 손쉽게 올라타서 “(가해 청소년들한테) 온정을 베풀지 말라!”고 으름장 놓기 일쑤다. 그쪽이 선거에서 표를 얻는 데 낫다는 공리주의적(기회주의적) 처신들이다.

그런데 이번의 소년법 개정안은 표창원 의원이 들고 나오는 바람에 새삼 뉴스거리가 됐다. 그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만 해도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쪽으로 목청을 높여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박근혜 누드그림 전시 건으로 호된 비난여론을 겪고 소속 정당의 징계까지 당해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이런 주제는 보수를 편들어야 정치인으로서 입지가 보장된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아서 노선을 확 바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의 뒷걸음질으로, 우리는 문재인정부의 개혁 정치에 대한 기대를 또 한 가닥 내려놔야 할 것 같아 썩 유쾌하지 않다.

여러 교육청에서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나섰다는 소식도 미덥지 않다. 실태조사라면 예전에도 숱하게 있었다. “너희들, 누구한테 얻어맞거나 돈을 뺏긴 적 있으면 다 털어놔라!”는 식의 조사에서 무슨 뾰족한 수가 나오나? 학문적 접근이 요구된다. 그런 천편일률의 조사 말고, 요즘 벌어진 학생폭력 사건들을 심층 연구해서 ‘달라진 흐름’을 찾아낼 일이다.

시장 사회가 낳는 새로운 폭력 문화

일본 쪽 얘기를 경청할 만하다. ‘어른 없는 사회’를 쓴 우치다 타츠루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일진一陣’ 따위의 청소년 폭력조직에 따른 피해가 많이 줄어든 지 오래다. 일본에서도 무슨 ‘폭력’이니 ‘자살’이니 부정적인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에서 “큰 일 났다!”고 비상벨을 울리곤 했는데 세상을 비관하는 자살 사건도 일본에서 그런 일이 급증했던 때는 1960년대였지 요즘이 아니란다. 요즘은 그런 노골적인 학교폭력으로부터는 크게 안전해졌다고 한다.

우리도 과연 최근에 학교폭력이 더 빈발했는지 통계자료를 면밀히 검토해서 결론을 얻어야 한다. 어느 신문기사에서는 ‘3~4년 전보다 늘었다’고 통계를 꺼냈는데 그런 간단한 비교에서 얻어낼 정책적인 함의가 있을까? 30~50년쯤의 장기적인 흐름을 살펴야 의미 있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아무튼 필자의 직관적인 판단으로는 일본처럼 한국도 학교 폭력조직의 위세는 많이 꺾인 것으로 보인다. 길게 보자면 그럴 거라는 말이다. 애들은 어른들 본本을 뜨며 살아간다. 군사파쇼 체제가 많이 물러나고, 자본 체제로의 포섭이 전면화된다면 전자前者에 따른 사회악이 줄어들고 후자後者에 따른 새로운 사회악이 생겨나는 법이다. ‘일진一陣’은 박정희 군사파쇼를 흉내낸 새끼 조직이 아니겠는가.

‘친구 지옥’을 쓴 도이 다카요시에 따르면 요즘 일본 청소년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지메’는 무슨 폭력적인 성향을 띤 일부 아이들의 작품이 아니라고 한다. 범생이(모범생)도, 활달한 날라리도 피해자가 되고, 어제의 피해자는 또 오늘의 가해자로 둔갑한다. 그는 이른바 ‘친절한 관계’를 꾀하고 싶어 하는(=남들과의 충돌을 꺼리는) 집단 심리가 청소년들한테 스트레스를 끼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충동으로 이지메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근원적인 데 있다. 다들 모래알로 흩어놓는 ‘시장 사회’가 그런 폭력문화를 낳았다.

우리의 경우, 흉기로 상해傷害를 입힌 부산 사건은 ‘일진 문화’의 찌꺼기로도 보이지만 언어폭력을 일삼은 전주 사건은 달리 보인다. 더 심층 연구를 필요로 하겠지만, 한번 미운털 박힌 아이를 끝끝내 (친구 관계로부터) 매장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청소년들이라면 비정한 선발/탈락의 학교(사회) 체제가 낳은 괴물들이 아니겠는가. 그 아이들을 교화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나 고타마 싣다르타를 모셔와야 가능하지, 혼찌검 한두 차례 퍼부어서 될 일이 아니다.

없음
ⓒ뉴시스

다른 길이 얼마든지 있다

결론을 말한다. 보수 정치인들아, 제발, 처벌 말고 딴 길을 찾자. (당신들 눈에는) 그 길이 아무리 뜬구름 같아 보인다 해도 말이다. 왜 사람이 남에게 공감할 줄 아는 따뜻한 사람으로 바뀌게 돕는 일이 불가능하겠는가? 끗발 누리면서 나이를 잡순 늙은이들의 인간 개조가 어렵지, 아직 제 욕심 채우며 살아온 세월이 얼마 안 되는 젊은이의 품성이 바뀌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 법무부(교정 당국)와 교육부(교육청)는 관료주의 행정에 찌든 자기들 머리만 믿는가? 어디서 주관을 하든, 인문학 하는 뜻있는 사람들을 성심껏 초청하여 그들한테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 청소년의 교화 임무를 100% 맡겨라. 이를테면 프랑스의 교정당국에서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 몇몇에게 ‘2000km 걷기’ 과제를 부여하는 것으로 처벌을 대신하는 실험을 한 적 있다고 한다. 그 과제를 완수한 청소년들이 몰라보게 성숙해졌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는 따뜻한 가슴을 품은 지식인들이 아직 꽤 많다. 그들은 교도소 재소자한테 인문학을 가르쳤고,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하느라 애썼다. 글쓰기 교육을 통해 나이 먹은 성인들의 인간 해방을 도운 일꾼도 있다.

아직 그들을 못 믿겠는가? 재야在野의 낯선 사람들을 부르려니 온갖 노파심이 다 일어나는가? 그렇더라도 당신들의 천편일률의 일버릇만은 부디 내려 놓으라. 그리고 TV를 통해서든 다른 어떤 마당을 통해서든 인문학자들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의 중지衆智를 모아내라. “처벌 말고 딴 길은 없다”는 그 뻔뻔스러운 기회주의 논리만큼은 당장 거둬들여라.

정은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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