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울산과학대 청소 노동자들의 외롭고도 기나긴 투쟁 이야기

1200일 가까이 길고 외로운 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할머니, 누군가의 할아버지임이 분명한 사회 최약자들, 바로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요구는 너무도 지당했다. 2014년 6월 16일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20여 명은 당시 최저임금(시간 당 5210원)이었던 급여를 시간 당 6000원으로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가족의 생계가 유지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구는 학교 측에 의해 처참히 묵살 당했다.

청소노동자들은 농성을 시작했고, 학교는 끈질기게 농성장을 박살냈다. 네 번의 강제철거 이후 노동자들은 교문 밖으로 쫓겨 나갔다. 학교는 이들에게 학교 재산에 손실을 입혔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고, 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들에게는 한 명 당 8200만 원의 배상금 지불 판결이 내려졌다.

투쟁을 이끄는 김순자 위원장이 도움을 구하기 위해 총학생회를 찾았다. 하지만 그가 들은 말은 “당신들을 도와주면 취업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총학생회는 수시로 조합원들의 현수막과 천막을 훼손했다.

2015년에는 울산과학대 총학생회가 공식적으로 청소노동자들에게 천막농성 중단을 요구하는 항의서한을 발간했다. 아래 사진이 바로 학생들이 보낸 서한이다. 누군가의 어머니임이 분명한 그 노동자들에게 총학생회는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위협을 서슴지 않았다.

2015년 울산과학대 총학생회가 청소노동자들에게 과격시위 중단을 요구하며 전달한 서한
2015년 울산과학대 총학생회가 청소노동자들에게 과격시위 중단을 요구하며 전달한 서한ⓒ민중의소리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데에 도움을 주면, 좋은 학점을 받고 현대중공업 계열사 취직에 가산점을 준다는 소문은 이미 비밀이 아니다. 울산과학대는 학교법인 울산공업학원의 지배를 받고, 울산공업학원은 현대중공업이 지배한다. 회사 설립자는 정주영이고 지금의 이사장은 정몽준이다.

식칼 테러 사건의 주인공, 현대중공업

현대 정 씨 가문은 노동자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현대중공업이 있다. 정몽준은 1981년, 고작 30세의 나이에 현대중공업 상무로 재계에 입성했다. 그리고 이듬해 정몽준은 31세의 나이로 현대중공업 사장에 오른다. 1980년대 후반부터 현대중공업에서 벌어진 수많은 노동탄압의 처참한 사건들은 정주영, 정몽준의 합작품이었다는 이야기다.

노동역사에 가장 참혹한 사건으로 기록된 이른바 식칼테러사건도 현대중공업에서 벌어진 일이다. 1989년 1월 8일, 파업 중이던 현대중공업과 현대엔진 등 현대그룹 노조 간부들이 울산 울주군 석남사에서 수련회를 가졌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직전해인 12월 18일 회사 측과 단체협상이 최종 결렬되자 파업에 돌입한 상태였다. 당시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이 파업은 테러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외견상 평온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평온’은 회사 측이 34명의 괴한을 동원해 수련회장을 급습하며 일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마스크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괴한들은 횃불을 들고 석남 산장을 ‘포위’한 뒤 일거에 뛰어들어 노조 대의원 19명을 각목과 야구방망이, 곡괭이자루 등으로 마구 두들겨 팼다.

이들은 노조 대의원의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우리 아버지는 김일성이다”는 말을 복창하도록 시켰다. 이를 거부한 대의원들은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두들겨 팼다. 괴한들은 특히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씨앗이 됐던 현대엔진 노조 초대 위원장 권용목을 찾기 위해 “누가 권용목이냐?”를 꼼꼼히 체크했고, 결국 권용목을 찾아내 오른 팔을 부러뜨리는 등 전치 6주의 중상을 입혔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엔진 노조원 5000여 명은 즉각 폭력테러 규탄 대회를 열고 “이번 집단 폭행은 노동운동을 탄압하려는 현대그룹 차원의 테러”라고 주장했다. 반면 현대그룹은 “이번 폭행은 정상 조업을 원하는 노조 대의원들이 중심이 돼 ‘자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발뺌했다.

하지만 현대그룹의 이 뻔뻔스러운 거짓말은 딱 하루 뒤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들통이 났다. 10일 경찰이 “현대엔진 전무 한유동이 범행을 지시했다”는 1차 수사 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테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한유동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권용목이 단식을 하자 단식 10일째 찾아와 “오래 단식을 해서 속이 깨끗해 좋겠다”고 비아냥거린 인물이었다. 또 1988년 권용목이 회사 측의 협상 기피에 항의하며 몸에 석유를 끼얹고 분신을 시도하자, 한유동은 “지금 죽어봐야 개죽음이다. 죽어봐라”라며 방송 차량을 이용해 공장 내에 장송곡을 틀기도 했다.

노조 테러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는 와중에 정주영과 현대그룹은 1차 테러 피해자들의 핏자국이 채 마르기도 전인 2월 21일, 강도를 훨씬 높인 2차 테러를 감행한다.

이 테러에 동원된 구사대 숫자는 무려 2000여 명. 구사대는 경찰 10개 중대 1500명이 지켜보는 와중에 평화 시위 중이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무리로 난입해 식칼과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쇠파이프야 상대를 다치게 하려고 쓰는 무기이지만, 식칼은 근본적으로 상대를 죽이려고 쓰는 무기다. 그런데 구사대는 이런 식칼로 노조원들을 사정없이 베고 찔렀다. 조합원 두 명이 칼에 찔려 중태에 빠졌고, 다리가 부러지는 등 중경상을 입은 노동자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현대중공업 사측은 3월 18일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각 신문 1면에 광고를 내며 대응에 나섰다. 광고 중 백미는 “회사는 법과 질서 유지의 테두리 안에서 사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마지막 문구였다. 실컷 쇠파이프로 패고, 식칼로 찌른 뒤에 “나는 대충 분이 풀릴 때까지 때렸으니 지금부터는 법과 질서 유지의 테두리 안에서 마무리하자”는 태도를 보인 셈이다.

한 노동자의 편지

이런 시각을 가진 정몽준에게 청소노동자들이 과연 사람으로 보이겠는가? 1200일 가까이 생존을 위해 투쟁을 하는데도, 현대중공업 자본은 노동자들에게 8000만 원이 넘는 압류를 걸어놓고, 학생들을 동원해서 비열하게 이들을 탄압한다.

울산공업학원은 도무지 겁이라는 것을 먹지 않는다. 올해 초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우원식, 유은혜, 송옥주 의원 등)이 울산과학대를 찾아서 중재를 했다. 학교 측은 중재에 따라 원만한 합의를 약속했다.

하지만 의원들이 떠나자 학교 측은 바로 용역을 동원해 다시 천막농성장을 강제로 철거했다. 우원식 의원은 “협상을 주도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서도 이렇게 갑질하며 무시하는데, 청소노동자에게는 오죽 하겠느냐”라며 분노를 터뜨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들은 오직 정몽준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1야당도, 지금의 여당도 무섭지 않다. 현대중공업은 배를 만드는 회사이므로 소비자 눈치를 볼 일도 없다.

정몽준의 마음이 바뀌어야 문제가 해결되는데, 이 집안은 세월호 사건으로 온 국민이 고통에 빠졌을 때 “국민이 미개하다”는 시각을 보여준 집안이다. 정몽준의 생각이 도무지 바뀔 기미를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이곳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더 슬프고 외롭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청소노동자들과 연대투쟁을 벌인 현대중공업 소속 한 노동자가 최근 <민중의소리>에 손편지를 보내왔다. 청소노동자들이 벌이는 외롭고 처절한 투쟁의 과정이 이 손편지에 기록돼 있다. 편지를 쓴 노동자의 양해를 얻어, 손편지 전문을 공개한다.

울산과학대 청소 노동자들과 연대투쟁 중인 한 현대중공업 노동자의 손편지
울산과학대 청소 노동자들과 연대투쟁 중인 한 현대중공업 노동자의 손편지ⓒ민중의소리

더운 날씨에 안녕하십니까? 제 소개를 하자면 저는 40세 현대중공업에서 용접을 직업으로 하는 조합원입니다. 낮에는 열심히 일을 하고 저녁에는 지역 투쟁사업장 농성장에서 연대노숙을 하는 시민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모든 투쟁사업장은 어느 한 곳 열외 없이 힘들고 거칠고 간절할 것입니다. 이곳 또한 그렇습니다. 이곳은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노숙 농성장입니다.

지금 1150여 일 진행 중이고 다섯 번째 농성장입니다. 이전의 네 곳의 농성장은 모두 공권력의 힘에 의해 철거당하고 쫓겨났습니다. 투쟁의 시작은 2014년 6월 16일 당시 최저시급 5210원. 하지만 생활임금에 못 미치는 돈이었고 시급 6000원으로 인상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집단 해고되었습니다.

그 이전 2007년 집단해고가 있었지만 투쟁으로 승리했고 고용합의서까지 작성했지만 그 고용합의서는 2014년에는 휴지조각이었습니다. 그것은 시작이었습니다. 학교 내에서 농성장을 설치했다는 이유로 1인당 660만 원의 가압류를, 학교 바깥의 땅에 농성장을 설치했다는 이유로 또 다시 1인당 8200만 원의 압류.

생활임금 6000원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집단 해고. 1억 원 가까운 압류. 업무방해로 벌금과 실형. 자본과 사법부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거죠. 이까지 읽고 화를 내시면 안 됩니다. 현대자본은 정말 악랄합니다.

1. 학생회를 이용해서 투쟁 승리 기원하는 리본을 수시로 철거합니다. 현수막을 칼로 찢어버리는 것은 기본이지요.

2. 교수와 학생들이 고민을 합니다. 어떤 고민이냐고요? 청소노동자를 효과적으로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학점에 반영한다고 합니다.

3. 학생회장 입장으로 공문을 발표합니다. 청소노동자 나쁜 사람, 연대하는 노동자 동지를 전문 시위꾼, 외부세력으로 규정하고 고립시키고 있습니다.

4. 학교 입구에는 큰 체육관이 있는데 지역주민들이라면 누구나 이용 가능하지만 체육관 입구에 대문짝 크기의 공문(법원에서 나온 것)으로 지역과 학교 내에서도 고립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열심히 활동하는 학생은 학교장 추천서를 통해서 현대자본 기업의 정규직으로 입사를 시키는 것은 지역사회의 민낯입니다.

힘듭니다. 과학대 청소노동자들 정말 힘듭니다.

첫째, 투쟁하는 노동자들 연령이 평균 만 65세입니다. 60대 초반에서 70대 초중반까지. 그냥 평범하게 사셔도 건강에 이상신호가 있을 나이이신데, 투쟁한다고 정말 힘드십니다.

둘째, 거리에서 비를 피해보겠다고 비닐로 보금자리를 마련했으니 이 날씨에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여름이라 풀벌레, 모기, 볼펜 크기만 한 지네도 가끔 출몰합니다. 진짜 얼마 전에는 주무시다 지네한테 물려서 며칠 동안 고생하신 연대 동지들도 계십니다.

셋째, 거리에서 만 3년을 넘기다보니 지역연대도 뜸해지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갑니다. 가끔 들러주시는 연대 동지들의 관심은 있지만 제가 정말 바라는 것은 지역 주민들의 사랑입니다.

넷째,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경제적 문제입니다. 소득 한 푼 없는 투쟁을 3년 넘게 지속하다보니 지갑이 말라가는 건 당연한 이치겠지요. 돈이 많아서 청소노동을 시작한 것은 아닐 테니까요.

이곳의 소개를 하나 더 하자면 지부장님이신데요, 18대 대선을 무소속으로 완주하셨던 김순자 님이십니다. 이분의 능력이겠지만 이 노숙 농성장에는 여당 우원식 의원을 비롯해 정의당, 바른정당, 울산의 무소속 의원 등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해결하려 하였으나 현대자본은 정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정몽준 때문일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여당 원내대표를 비웃는 조직입니다. 국회의원 85명의 서명을 받았고 국감 증인으로 출석해 억울함을 알려도 해결하는 시늉만 하고 돌아서서 다시 비웃는 조직입니다.

정말 이기고 싶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보냅니다. 저분들 고령이시라 하루빨리 해결점을 찾아야 합니다.

누군가의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인 저들이 거리에서 얼마나 더 불안에 떨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저는 투쟁하는 늙은 노동자와 끝까지 함께 하려 합니다. 하지만 큰 힘이 되지 못합니다. 슬프지만 현실이지요.

저의 바람은 하나입니다. 이곳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그런 곳입니다. 이곳의 이야기를 꼭 보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7년 7월 23일, 울산에서

이완배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