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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한 장의 음반으로 보여주는 아이유 그 이상
아이유 가을 아침 꽃갈피둘
아이유 가을 아침 꽃갈피둘ⓒ사진제공 = 페이브엔터테인먼트

이제 한국대중음악시장에서 리메이크 작업은 흔하다. 날마다 TV 오디션/서바이벌 음악 프로그램에서 리메이크 곡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리메이크 작업은 드문 편이었다. 물론 신중현 헌정음반이나 김광석의 다시 부르기 음반이 있기는 했다. 윤도현 밴드, 조관우, 조성모의 리메이크 음반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럼에도 리메이크 작업을 하는 뮤지션은 소수였다. 굳이 옛날 노래를 다시 부르느니 자신의 창작곡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그래도 충분히 인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리메이크 작업이 좀 더 활발해진 것은 2004년 이수영이 [광화문 연가] 음반을 발표한 후부터이다. 이후 ‘슈퍼스타 K’나 ‘나는 가수다’처럼 큰 화제를 일으킨 음악 서바이벌/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미션 곡으로 리메이크 곡을 선택하면서부터 리메이크 작업은 아주 흔해졌다.

대개 리메이크 작업은 뮤지션 자신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음악인에게 헌정하기 위해 만들거나 자신의 음악적 능력을 펼쳐 보이기 위해 만든다. 전자의 경우 자신이 특정 장르와 뮤지션의 계보를 잇고 있는 뮤지션이라는 사실을 공인하는 효과가 있다. 자신이 이러한 음악을 들어왔고 존경해왔으며 자신이 이 뮤지션의 뒤를 잇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고자 할 때 리메이크 음반 작업은 말보다 적절하다. 실제로 김광석과 윤도현 밴드의 리메이크 음반은 그들에게 한국 포크와 록의 역사와 계보를 잇는 뮤지션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공인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리메이크 작업은 기존의 인기곡이나 명곡을 재해석해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원곡의 완성도와 인기에 기대는 측면이 있지만 원곡의 완성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해석을 가미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리메이크 작업을 쉽게 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렇지만 잘 해내기만 한다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그런데 최근 방송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리메이크 작업은 의미가 조금 다르다. 물론 이미 기술한 의미도 있지만 최근의 리메이크 작업은 현재 유행하는 음악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를 위한 당의정에 가깝다. 최근의 리메이크 작업은 트렌드한 음악들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는 30대 후반 이상의 기성세대들에게 아는 노래를 계속 공급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는 이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노래는 분명 아는 노래이고 좋아하는 노래이다. 덕분에 잘 모르는 이들이 나오는 서바이벌이나 오디션 프로그램도 얼마든지 볼 수 있고 좋아할 수 있다. TV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보장되고, 리메이크 곡을 찾아들으면서 온라인 음악서비스도 좀 더 자주 이용하게 된다. 리메이크 곡을 잘 소화하면 젊은 세대들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들에게도 사랑받는 뮤지션이 될 수 있다. 뮤지션이 더 많은 세대를 포괄하는 스타가 될 수 있게 돕고, 음악시장이 유지/성장할 수 있게 하는 기제로 리메이크는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이다.

아이유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둘’ 커버 이미지
아이유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둘’ 커버 이미지ⓒ제공=페이브엔터테인먼트

최근 두 번째 리메이크 음반 [꽃갈피 2]를 내놓은 뮤지션 아이유 역시 리메이크 음반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2008년 데뷔한 아이유는 젊은 여성싱어송라이터로 주목받기보다는 귀엽고 발랄한 국민여동생 컨셉트로 비로소 주목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아이유는 그 성공을 바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 노래해가면서 자신이 욕망과 의지와 세계를 지닌 풍부한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유가 내놓은 첫 번째 리메이크 음반 [꽃갈피]는 정확하게 1980년대와 1990년대 세대들을 겨냥해 손짓했다. 자신도 옛 노래를 알고 있고, 좋아하고, 존중한다고. 자신은 단지 젊고 인기 있는 연예인이 아니라 음악을 많이 듣고 옛 노래도 잘 소화해낼 수 있는 뮤지션이라고 말하는데 리메이크 음반은 적절했다.

그리고 지난 9월 22일 아이유는 두 번째 리메이크 음반을 내놓았다. [꽃갈피 둘]에는 ‘가을 아침’, ‘비밀의 화원’,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어젯밤 이야기’, ‘개여울’, ‘매일 그대와’까지 6곡의 노래를 담았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명곡이나 인기곡을 아우른 음반의 선곡 역시 동년배의 팬들만이 아니라 이 음악들을 들으며 성장하고 좋아했던 윗 세대들을 겨냥하고 있다. 아이유는 자신의 솔로 음반을 통해서는 자신의 세대들에게 어필하고, 리메이크 음반을 통해서는 윗 세대까지 아우르는 전략을 쓰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유는 단지 동세대에게만 인기를 끄는 스타가 아니라 훨씬 많은 세대를 커버하는 뮤지션으로서의 위상을 굳히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인기를 끌었던 에일리, 악동뮤지션, 트와이스, 볼빨간 사춘기, 크러쉬 같은 뮤지션 누구도 하지 않았고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국민가수라는 광범위한 인기가 불가능해진 시대에 아이유만은 세대를 아우르는 뮤지션이라는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데 이 같은 인기에 아이유의 리메이크 음반이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최근 종영한 ‘효리네 민박’에서 아이유가 보여준 성실하고 섬세한 모습이나 선배 뮤지션 이상순, 이효리, 장필순 등과 소통하고 배우는 모습 역시 과거로부터 배우고 존중하는 아이유의 예의 바르고 깊은 이미지를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물며 아이유가 내내 들고 있던 책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었다는 사실도 허투루 넘길 수 없다.

음반의 선곡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좋은 노래를 고른 것만이 아니다. 30여년의 시간을 아울러 곡을 고른 폭넓은 시야는 팝 발라드, 포크, 댄스까지 포괄한다. 각 곡의 편곡과 연주는 참여뮤지션의 면면만큼 모두 훌륭하다. 그리고 아이유는 발랄하게 노래하고, 담담하게 노래하고, 쓸쓸하게 노래하는 모습까지 다 잘 소화한다. 그뿐 아니다. “응석만 부렸던” 아들의 성숙을 담은 ‘가을 아침’. “어제의 일들은 잊어/누구나 조금씩은 틀려/완벽한 사람은 없어/실수투성이고 외로운 나를 봐”라는 성찰을 담담하게 노래한 ‘비밀의 화원은 아이유의 성숙을 대리한다. 농염하지만 절제된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와 여성 주체의 쿨한 피로감을 부각시킨 ’어젯밤 이야기‘도 원곡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아이유의 차이와 개성을 잘 외화한다. 그리고 정미조가 불렀던 명곡 ’개여울‘에 이르러 아이유는 젊거나 어리다고 치부할 수 없는 완벽한 성인의 면모를 드러내면서 어덜트 컨템포러리 뮤지션으로서 아이유의 가능성까지 완전히 긍정하게 만들고 만다. 정미조와는 다르지만 쓸쓸하고 처연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버리는 아이유의 모습은 이제 아이유가 자신이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기에 만들어진 한국대중음악의 빛나는 유산까지 나름대로 소화하고 자신의 스타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뮤지션이라는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준다. 아이유는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이유 그 이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고, 더 주의 깊게 살피고 들어야 하는 뮤지션이 되었다. 아이유의 리메이크 음반이 바로 증거이며 예고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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