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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 위반으로 압수된 신학철의 ‘모내기’ 28년 만에 반환 추진
화가 신학철의 ‘모내기’는 지난 28년간 이적표현물 규정을 벗지 못한 채 압수물로 규정돼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그림을 프린트한 이미지만 남아있었다.
화가 신학철의 ‘모내기’는 지난 28년간 이적표현물 규정을 벗지 못한 채 압수물로 규정돼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그림을 프린트한 이미지만 남아있었다.ⓒ기타

신학철 화가가 그린 ‘모내기’가 28년 만에 검찰 압수물 창고를 벗어나 작가에게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검찰 등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됐던 ‘모내기’ 반환과 관련한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신학철 화가는 “반환과 관련해 공식적인 통지를 받아 않아 조심스럽다”면서도 “관련 기관 등에서 ‘모내기’ 반환을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란 이야기를 들었다”고 성황을 전했다. 때문에 압수 28년 만에 ‘모내기’가 세상에 공개될 수 있을 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100호(112.1×162.2cm) 크기의 대작이 A4 용지 크기로 접힌 채 마구 보관된 것으로 알려져 작품의 상태가 어떠한 지는 아직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신학철 화백, 지난 9월 서울중앙지검에 모내기 반환요청서 발송
“자식과도 같은 ‘모내기’ 작품을 저에게 즉시 돌려주시길 요청드린다”

1989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찰에 압수된 이후 신학철 화가와 수많은 미술가들이 그림의 반환을 요구했지만 지금까지 작품은 서울중앙지검 압수물 창고에 처박혀 있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작품의 반환을 요청했다 거부된 바 있었던 ‘모내기’는 신학철 화가가 지난 9월25일 윤석렬 서울중앙지검장 앞으로 ‘그림 반환 요청서’를 보냈고, 이에 관련 기관들이 반환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학철 화가는 반환요청서에서 “저에게는 자식과도 같은 ‘모내기’ 작품을 저에게 즉시 돌려주시길 요청드리며 그동안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던 검열과 감시의 야만적인 시대를 청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세계와 함께 하는 문명국가로 거듭나길 겸찰의 총기있는 결단으로 유엔 인권위원회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화답해주시길 요망한다”고 밝혔다.

신학철 화가가 지난 7월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국제화상회의실에서 열린 제1차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에 민간위원으로 참석하고 있다.
신학철 화가가 지난 7월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국제화상회의실에서 열린 제1차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에 민간위원으로 참석하고 있다.ⓒ뉴시스

신학철 화가의 그림 ‘모내기’가 검찰 압수물 창고에 쓰레기처럼 지금까지 버려져 있었던 상황은 국가보안법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얼마나 억압하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가보안법의 칼날로부터 화가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모내기’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은 여실하게 증명하고 있다. 화가 신학철은 1987년 여름 그림마당 민의 ‘통일전’에 ‘모내기’라는 작품을 출품했다. 이 작품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농사꾼의 모내기에 담아낸 그림이다. 신학철 화가는 검찰에 보낸 반환요청서를 통해 “모내기 그림은 162.2x112.1cm 크기로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봄에 모내기를 하고 들밥 먹고 가을에 수확하고 잔치하는 농민들의 모습이 아래로 놓인 통일염원도다. 본 작품은 이런 희망의 메시지를 명쾌한 구도와 색조로 표현한 것이다. 그림의 소재는 본인의 고향 경북 금릉군 강문면 농촌을 찍은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외세와 군사독재 정권, 코카콜라 따위의 외래문화 등 반통일적 이미지들이 농부의 써레질로 밀쳐지는 장면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89년 북한 찬양 그림이라며 이적표현물로 압수
1심과 2심에선 무죄… 98년 대법에선 유죄

하지만 신학철의 ‘모내기’는 제작 2년이 지나 뒤늦게 문제가 됐다. 다른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수사하면서 누군가 소지하고 있던 부채에 들어있던 ‘모내기’ 그림을 검찰이 문제를 삼은 것이다. 그림은 1989년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압수됐고, 신학철 화가는 구속됐다. 통일의 염원이 담긴 ‘모내기’ 그림은 검찰의 시각으로 왜곡되면서 느닷없이 북한을 찬양한 그림으로 돌변하고 말았다. 신학철 화가는 “당시 정부는 위쪽의 농부들 잔치 모습이 평화로운 북한을 써레질로 군사독재정권과 외수문물을 쓸어내리는 하단을 남한 현실로 대조시켰다며 문제를 삼았다”고 검찰에 보낸 반환요청서에서 밝혔다.

모내기의 모티브가 된 고향 친척들의 써래질
모내기의 모티브가 된 고향 친척들의 써래질ⓒ신학철 화백 촬영

이런 어이없는 논리는 처음엔 법원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했다. 신학철 화가는 1989년 11월 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았고, 1심과 2심 모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하지만 검찰은 이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상고했고, 10년이 지난 1998년 대법원은 “모내기 그림은 북한의 모습을 통일저해 요소가 없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으로, 남한을 통일저해세력인 미일제국주의와 독재권력, 매판자본이 가득한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북한을 찬양하고 민중민주주의 혁명을 일으켜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려는 북한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하는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결국 사건은 다시 서울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내졌고, 화가 신학철은 1999년 11월 징역 10월, 선고유예 2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2000년 신학철 화가 사면 복권 됐지만 작품은 여전히 이적표현물
유엔인권위 규약위반 판결에도 법무부 등에선 작품 반환 거부

신학철 화가는 2000년 5월 유엔인권위원회에 제소했고, 유엔인권위원회는 곧바로 “작품 모내기와 관련한 심리를 3년 내에 열 것이라며 작품을 폐기하지 말것을 한국 정부에 요청하고, 6개월이내에 답변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확정 판결을 받은 이듬해인 지난 2000년 8월15일 화가 신학철은 사면 복권됐다. 하지만 사면 복권에도 불구하고 신 화백의 작품은 ‘이적표현물’이라는 낙인을 벗지는 못했다.

유엔인권위 제소 4년만인 2004년 4월 유엔인권위원회는 작품 ‘모내기’에 대한 유죄판결은 인권규약 위반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유엔인권위원회는 화가 신학철이 낸 진정에 대해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 제19조 표현의 자유침해사실을 인정한다고 밝히고 유죄판결에 대한 보상, 유죄판결의 무효화, 법정비용 보상, 그림의 원상복구 및 반환 등을 한국 정부에 제시했다. 그리고 이 결정 후 90일 이내에 한국 정부가 취한 조치를 통보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유엔인권이사회의 권고는 무시됐다. 신학철 화가에 따르면 검찰측과 제3지대인 국립현대미술관으로의 이전 보관을 합의했지만 마지막 반환 단계에서 석연치않은 이유로 검찰총장이 불허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당시 검찰은 화가 신학철이 요구한 작품 ‘모내기’에 대한 열람신청조차 불허했다. 검찰은 열람신청 불허사유에 대해 “그림이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의해 이적표현물로 규정돼 타인에게 보여주는 행위 자체가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반포죄에 해당하며, 그림이 대법원 확정판결에 의해 몰수돼 국고귀속된 만큼 작가에게는 처분권이 없어 신 씨는 열람등사신청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법무부도 이적표현물로 판단해 몰수처리된 신학철 화가의 ‘모내기’ 그림을 작가에게 반환하라는 유엔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해 논란이 일었다. 법무부는 “그림을 원상복구해 반환하라는 유엔인권위의 권고에 대한 검토 결과 현행법상 몰수 처리된 물건을 원 소유자에게 반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반환불가를 통보한 것이다.

신학철 화가의 ‘모내기’가 이번엔 작가의 바람대로 반환될 수 있을까? 신학철 화가는 “아직 조심스럽다”면서도 반환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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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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