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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복에 말을 건 경제학자 _ 아마르티아 센

*편집자 주 - 아마르티아 센부터 체 게바라까지. ‘왜 부는 한쪽에만 편중돼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아가 불평등한 인간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경제학자 10명을 이완배 기자가 소개합니다. 이들의 고뇌와 분투를 되짚어보면 사람이 먼저인 경제, 모두가 행복한 경제로 나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희망합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1943년 인도의 벵골 지역에 극심한 기근이 들이닥쳤다. 태풍의 영향도 있었지만 이 대기근의 원인은 사실 당시 인도를 지배했던 영국의 엉터리 식량 정책 탓이었다. 이른바 ‘벵골 대기근’으로 불리는 이 참사에서 얼마나 많은 인도인들이 목숨을 잃었는지는 정확한 통계조차 나와 있지 않다.

어떤 이들은 아사자(餓死者)가 300만 명이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700만 명이라고 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대기근으로 최소한 우리나라 부산의 인구를 넘는 사람들이 배고픔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이 참혹한 사태에 인도를 다스리던 영국 총독은 영국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런데 영국인의 영웅으로 불렸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이 요청을 “식량을 실어 나를 배가 없다”는 이유로 묵살하며 이렇게 비웃었다.

“아니, 인도가 굶고 있어? 그러면 굶고 있다는 간디는 아직도 안 죽었나?”

이 참혹한 현실이 한창일 때, 벵골 지역에는 총명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굶어 죽는 수많은 사람들을 직접 목격하며 “왜 가난한 사람은 이처럼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 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리고 그는 1998년 아시아 출신으로는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 위대한 경제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바로 후생경제학의 대가(大家), 경제학계의 ‘마더 테레사’로 불리는 아마르티아 센이다.

민주주의의 확립, 빈곤 해결의 첫 걸음

센은 대표적인 후생경제학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경제학계에서는 ‘센코노믹스(SEN-conomics)’, 즉 ‘센의 경제학’이라는 분야가 따로 정립됐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이 막대하다.

아마르티아 센
아마르티아 센ⓒ기타

‘굶주림과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연구한 센의 결론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바로 민주주의의 확립이다.

독재 국가에서는 독재자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독재자는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권력이 견제를 받지 않으니 독재자는 국민들의 삶을 걱정하지 않는다. 권력자는 원래 ‘다음 선거에서 내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어야 굶주린 국민들을 돌보는 법이다.

이 때문에 여당과 야당이 적절히 힘을 나누고 경쟁하는 나라에서는 국민들이 굶어죽는 극단적인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 센은 “민주주의 국가는 단 한 번의 기근도 겪은 적이 없다.”라는 말로 자신의 견해를 요약했다.

벵골 대기근을 겪은 인도가 좋은 사례다.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은 인도에서 독재 권력이었다. 당연히 영국은 인도 국민들의 삶을 돌볼 이유가 없었다. 국민들이 굶어죽건 말건, 자신들의 권력은 유지될 테니까. 수 백 만 명이 굶어죽는 그 처참한 현실을 보고도 처칠이 “식량을 실어 나를 배가 없다”는 황당한 이유로 곡물 지원을 거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차별,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

센이 내린 두 번째 결론은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었다. 센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풍요로운 사회”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풍요의 혜택이 일부 소수에게만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경제적으로 발전한 사회란 과연 무엇일까? 스마트폰의 성능이 높아지고, 고급 자동차가 늘고, 맛있는 음식이 지천에 널려 있으면 그게 경제적으로 발전한 사회일까? 가난한 사람들은 그 풍요로움을 그림의 떡처럼 바라봐야 하고, 몇몇의 부자들만 그 풍요를 누리는 사회를 과연 ‘경제적으로 발전한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센은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답한다. 그는 “경제적 발전이란 풍요로움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누리는 실질적 자유가 확장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누구나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야말로 진정으로 경제적인 발전을 이뤄 낸 나라라는 뜻이다.

이런 사회를 이루려면 인간에 대한 권리의 박탈과 억압, 그리고 차별이 없어져야 한다. 모두가 풍요로움을 누릴 권리와 토대가 있어야 한다. 여자라고 차별하고, 종교가 다르다고 차별하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차별하고, 출신 지역이나 피부색이 다르다고 차별한다면 그들은 인간의 권리를 누릴 수 없게 된다.

특히 센이 인간의 기본권 확대를 위해 가장 신경을 쓴 두 가지는 바로 교육과 의료의 불평등을 해소였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병이 들었는데 치료도 못 받고 죽는다면, 역시 가난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다면 이들은 자신의 재능과 꿈을 펼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그래서 센은 국가가 나서 의료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이에게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소득이 아니라 빈곤지수

또 한 가지, 센은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적 통계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센이 비판하는 대표적 통계가 ‘1인당 국민소득(GDP)’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한 나라 국민들이 1년에 평균 얼마를 버느냐를 계산한 수치다. 평균이기 때문에 소득격차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2만 7000달러(3000만 원)인데 이는 4인 가족 집안이라면 1년에 1억 2000만 원의 소득이 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4인 가구 중에 1년에 1억 2000만 원을 버는 사람이 대한민국의 ‘평균’이라는 주장은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소득불평등 3위의 불명예를 괜히 얻은 게 아니다.

이런 이유로 센은 1인당 국민소득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숫자라고 단언한다. 센에게 중요한 것은 평균이 아니라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삶을 사는 이들의 인생이었다. ‘모두가 인간의 기본권을 누리는 세상’을 위해서는 평균치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빈곤하게 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센은 ‘빈곤지수’라는 것을 개발해 실제 가난한 국민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빈곤지수는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소득을 올리는 이들의 비중이 전체 국민에서 얼마 정도를 차지하는지를 계산한 수치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건 낮건, 빈곤지수가 높으면 그 사회에서는 최악의 가난을 겪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 된다. 아무리 겉으로 잘 사는 듯 보여도 이 수치가 높으면 뭔가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함께 사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법이다.

센은 “악마는 항상 꼴찌부터 잡아먹는다”는 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잔인함을 이야기했다.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먼저 극단의 고통에 처하는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을 최소한 인간답게 살도록 해 주는 것, 어떤 경제 위기가 닥쳐도 적어도 그들이 굶어죽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아마르티아 센이 바라보는 ‘진정한 경제학의 임무’였다.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 1933년~) = 인도 벵골 지역에서 태어났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영국 유학 시절 그가 묵었던 하숙집의 주인은 “너는 밖이 안 보이지만, 밖에서는 네가 보인다”라며 센에게 밤에 커튼을 열지 말 것을 지시한다. 이런 혹독한 인종 차별을 겪으면서 센은 자신만의 후생경제학을 개척했다. 그는 복잡한 수치와 그래프를 동원한 경제학을 배척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정립했다. 이런 영향 탓인지 그의 저서 『위기를 넘어(Beyond the crisis)』는 한국에 번역되면서 『인간의 행복에 말을 거는 경제학』이라는 ‘인간적인’ 제목으로 바뀌었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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