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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를 완전히 넘어서기 위해

연재를 시작하며

예술행정의 제도적 개혁과제를 중심으로 연재를 시작하며, 먼저 현재 예술행정의 개혁을 상징하는 블랙리스트 사건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제도적 과제에 대하여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좀 더 깊숙이 예술정책의 제도적 개혁과제에 대하여 의견을 이어갈 예정이다.

연재에 앞서 예술이 국가 운영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흔히 국정철학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명확히 국정철학이 무엇인지 얘기하진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국정철학은 대통령의 철학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어느 정부 부처도 국정철학을 논의하고 발전시키는 부서가 없다. 청와대 역시 마찬가지이다. 과거 군사정권이든 민주 정부든, 부패 정부든 국정철학은 대통령의 철학이었다. 결국 독재자의 철학도, 부패권력자의 철학도 국정철학이 되어 버린 것이다. 국정철학을 담당할 정부기관이 필요하다. 여기에 예술의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예술은 그 자체로 인간의 삶에 대한 관조와 사랑을 바탕으로 기존 질서를 끊임없이 재설계하고 나아갈 바를 제시한다. 따라서 예술 정책을 담당하는 부처의 가장 큰 역할 중의 하나가 ‘예술가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국가운영의 철학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가 운영에서 예술은 철학적 기반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유를 바탕으로 예술 정책의 제도적 과제에 대하여 연재를 진행하고자 한다.

정치와 행정, 그리고 예술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지난해 촛불을 불러 온 또 하나의 힘인, 블랙리스트 사건은 사전검열이 제도의 모순 속에서 어떻게 자행 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국가의 공공성을 무시하고, 지원을 빌미로 예술가들을 사전에 검열하는 진화된 예술탄압이 사건의 본질이다. 이는 정치와 행정이 예술과 어떻게 관련되는가에 대한 의문을 들게 한다. 우리는 쉽게 정치와 행정을 혼돈하여 사용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아가 제도개선의 근본적 과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바르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정치는 정당이나 집단이 지지하는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권력을 잡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주의, 주장이 따른다. 이에 반하여 행정은 국민이 부여한 공무원의 절차적 국가 관리, 운영 시스템을 말한다. 즉 정치는 능동적인 활동을 중심으로 두는 권력의 발현이라면, 행정은 대통령과 여당이 권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절차에 따라 국민의 편에서 국가를 관리, 운영하는 수동적인 행위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행정은 정치집단의 지지와 상관없이 이뤄져야할 중립적인 행위이다. 따라서 블랙리스트 사태의 본질은 정치집단의 권력이 행정력을 동원하여 정치적 행위를 검열의 형태로 한 것이다.

정당들은 모두 문화와 예술을 대상으로 한 직능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가지고 있다. 이는 정치적 주의, 주장을 위해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권력을 잡으면 이들이 장관이나 기관장으로 행정에 관여하기도 한다. 이들은 행정의 방향을 제시하는 등 정권의 국정 목표 실현을 위해 주어진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수는 전체 행정 공무원에 비하면 아주 소수이다. 따라서 그 역할 역시 제한적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도 당연히 지켜져야 할 것은 행정의 중립성이다. 헌법에 명시된 ‘공무원에 의한 행정’의 정치적 중립이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경우,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 인사를 통해 행정에 참여하는 것은 장관과 정책보좌관 등 최소한의 일부 인사가 행정에 결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교체될 기관장 역시 제한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부처와 기관의 방향성 제시와 정권이 제시한 정책 과제를, 공정성을 기반으로 행정이 반영하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는 내각제 국가조차 지켜내고 있는 ‘공정한 행정의 원칙’이다.

그러나 지난 이명박근혜 정부는 공무원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위헌적 행정을 자행했다. 이것이 바로 블랙리스트 사건의 본질이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정치집단의 권력이 ‘공무원과 이에 준하는 인사를 통해 자행한 위헌적 행정행위’이다. 예술은 정치에 결합할 수 있으나, 예술이 행정에 의해 사전에 검열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행정의 중립성을 훼손하고 위헌적 행정행위에 가담한 공무원 역시 이러한 이유로 단죄되어야 하며, 제도개선 역시 여기서 출발하여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당 사건 59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당 사건 59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문재인 정부 예술정책의 우선 과제

정치와 행정이 예술과 어떠한 상관관계를 갖는가의 문제는 나아가 국가와 예술의 역할에 대한 관계정립의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국가와 예술의 역할이 명확히 규정되어질 때, 국가 행정이 어떠한 방식으로 예술가와 국민들에게 작동할 것인지 명확해 지기 때문이다.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헌법의 개정이 논의 되고 있다. 대통령 중임제 등 주요한 이슈와 함께 문화예술계에서는 국민의 문화권에 대한 헌법적 보장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다. 국가는 예술의 진흥을 통해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보장하여야 하며 이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자체로 존중되고 공공재로서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가의 활동은 공익적 사회 기여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예술가의 지원’이 정책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공무원이 중심이 된 심의 절차를 통하여 지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행정이다. 이 과정에 정치권력이 작동하는 것은 더더욱 잘못된 것이다. 왜곡된 국가 예술행정의 근원적 전환이 필요하다.

예술가는 당당하게 사회적 기여 활동으로 예술 활동을 하며, 국가는 국민의 삶의 질 보장을 위하여 예술가의 활동을 국민들에게 고르게 공급하여야 한다. 단지 예술 진흥의 과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 지원금을 나눠주며 길들이는 치졸한 행정의 발상을 버려야 한다. 예산의 부족을 이유로 행정적 공정성을 통해 선택과 분산을 해야 한다는 논리 역시 현재의 행정 구조에서는 예술을 길들이는 기제일 뿐이다. 한정된 예산의 분배를 명목으로 운영되는 현재의 지원심의 제도는, 권력을 통한 행정력의 왜곡된 결합으로 인해 블랙리스트 사건이 되었다.

또한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을 예술가의 활동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예산 사용의 결정권이 예술가와 시민에 의해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영국의 예술위원회와 같이 예술가와 시민의 자율적인 결정에 따라 예술 활동이 이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행정 시스템은 공무원에 의한 행정적 독점이 보장되고 있다. 지난 박근혜정부의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의 개정 전까지는 문화체육관광부는 영화진흥위원회와 문화예술위원회라는 ‘위헌적(?) 민간행정위원회’를 기관으로 두고 있었다. 지금은 말만 민간 위원회지 장관에 의한 기관장의 임명 등 독임제 기관으로 전락하였다. 결국 지금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도입한 민간에 의한 행정위원회를 통한 예술 정책조차 사라졌다.

국민의 문화권을 헌법 개정에 반영하는 것과, 민간 참여를 통한 행정위원회로서의 예술정책 기관을 복원하는 것이 우선 이 정부 예술정책의 과제다.


시민정부 실현을 위한 예술 행정의 과제

블랙리스트 사건이 실질적으로 해당 행정 기관을 통해 이뤄진 것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다. 같은 민간 행정위원회의 성격을 갖는 영화진흥위원회에서는 직접적인 블랙리스트를 통한 사전 검열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영화산업의 특성에서도 기인하는 것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두 기관의 구성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문화예술위원회는 각 장르별 대표자가 모인 종합 예술위원회의 형태를 띠고 있는 반면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예술과 산업에 한정된 단일 장르 위원회로 다수의 위원들은 진보와 보수의 연합된 참여를 일정하게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위원회를 통한 영화의 지원사업의 사전 검열이 이뤄지기에 한계가 있었다. 결국 국정원 등 권력기관이 결합하여 민간 영화투자사(CJ, 롯데 등 대기업)를 통해 제작투자를 제한하는 방식을 통해 사전검열이 자행되었다. 이는 현재 문화예술위원회의 구성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에 의해 탄생된 정부다. 촛불시민이 요구하는 국가의 과제를 실현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기본 과제이다. 촛불시민은 궁극적으로 ‘시민의회’와 ‘시민정부’의 실현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의회의 과제는 국회의 개혁으로부터 시작하는 의회제도의 개혁으로 실현된다. 이에 반하여 시민정부는 직접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과제이다. 문재인 정부의 시민정부 실현의 가장 현실적인 출발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를 복원하고 보다 치밀하게 개혁하여, 문화예술행정 전반으로 확대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문화예술분야가 다른 행정 부처에 비하여 우선 모델을 만들기에 용의하기에 그러하다. 대표적인 문화국가인 프랑스의 경우 역시 이러한 과정을 겪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립된 드골정부에서 앙드레 말로와 자크 랑으로 이어지는 문화국가 프랑스 설립 청사진은, 정부수립초기에는 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예술가와 시민에 의한 문화행정을 설계하고, 이 후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펼쳐져 현재의 자율적인 문화행정의 문화국가를 만들었다. 창조경제를 실현하는 영국의 자율적인 문화행정 역시 시민정부의 실현의 본보기가 된다. 문재인 정부의 문화정책 기조인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행정적 실현이 영국과 프랑스와 같은, 예술가와 시민중심의 자율적인 민간행정에서 이뤄질 것이다. 이것이 시민정부의 출발이다.

9월 2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적폐청산과 문화민주주의를 위한 문화예술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9월 2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적폐청산과 문화민주주의를 위한 문화예술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시민정부를 위한 예술행정에 우선 적용되어야 할 과제는 포괄적으로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예술행정의 주체 구성이다. 예술 분야와 문화콘텐츠산업 분야의 장르별 독립적 정책 위원회가 민간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현재의 문화예술위원회는 장르별 특성을 반영하여 ‘시각예술, 무대예술, 문학출판, 전통예술 등 장르별 위원회로 운영되어야 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역시 영화진흥위원회와 같이 애니메이션, 대중음악, 게임, 방송영상, 캐릭터산업 등 장르별 위원회 구조로 전환 하여야 한다. 이는 각 장르별로 다양한 입장이 논의 될 수 있는 열린 민간 행정위원회를 만들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둘째, 위원회 활동의 공정성 담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문제이다. 모든 회의는 회의록을 예외 없이 작성하여야 하며, 이는 영상 녹화의 방식까지 도입하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이는 절차를 정하여 제한적으로 공개할 수 있도록 제도를 구성하여야 한다. 이를 통하여 다양한 활동의 공정성이 근원적으로 확보될 필요가 있다. 검찰의 조사를 녹화하는 것과 같이, 민간 행정의 공정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영상 회의록을 도입하는 것을 주저할 순 없다. 위원회의 구성에 연령, 성별의 고른 참여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두는 것 역시 필요한 사항이다.

셋째, 민간 행정위원회 제도의 제도적 뒷받침을 위하여 ‘(가칭) 협치기관에 관한 법률’의 제정이 필요하다. 공무원에 행정의 독점을 제한하고 시민정부의 길을 개척해 가기 위해서는 시민참여를 위한 거버넌스 행정 기관의 설치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것이 ‘협치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의 제정이다. 협치기관 설치 법률은 기재부로부터 예산 편성과 운영의 독립 보장과 운영 사무국의 민간 참여 보장을 위한 능동적인 조직구조의 운영을 중심 내용으로 하여야 한다. 전년도 예산을 기준으로 정부 예산 증가율에 연동한 예산의 배정과 자율적인 편성권 확보가 예산권이 독립적 운용이다. 민간의 능동적인 참여를 위한 개방형 행정 체계는 절차에 의한 결제 구조가 아닌 사업에 따른 독립적인 팀의 구성과 운영이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운영되는 것을 말한다. 즉 협치기관의 행정은 프리랜서 공무원에 의한 행정이 되어야 한다.

예술 정책 제도개선의 포괄적인 과제를 시작으로, 향후 연재를 통하여 보다 현실적이고 세부적인 제도개선의 과제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하고 한다.

*필자 소개:김종선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의원 정책 보좌관(15, 16, 17대 국회, 1996 ~ 2004)
15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문화정책 담당 행정관(2003)
문화관광부 이창동 장관 정책 보좌역(문화행정혁신위원회 간사, 2003~2004)
광복 6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기획전문위원(국무총리실, 2005)
6월 민주항쟁 20년 사업 추진위원회 기획팀장(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7)
사)한국대중음악연구소 부소장, 재)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문위원, 운영위원장, 사)한국대중음악산업학회 이사 등 역임
현재 문화재단을 지향하는 사)해아라 상임이사

김종선 사단법인 해아라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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