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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백남기 사건’ 경찰 사과의 숨은 속뜻
이철성 경찰청장이 지난 6월16일 오후 서울 서대문 경찰청에서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고 백남기 농민 물대포로 인한 사망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지난 6월16일 오후 서울 서대문 경찰청에서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고 백남기 농민 물대포로 인한 사망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이철성 경찰청장이 ‘백남기 사건’에 대한 사과 입장을 발표한지 3개월만에 사건 당시 살수차 운용자들도 법원에 ‘청구인낙서’를 제출하며 고인과 유가족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살수차요원들이 사과 뜻을 밝힌지 하루만에 당시 현장 지휘관인 신윤균 총경(현 경찰청 성폭력대책과장)도 떠밀리듯 청구인낙서를 제출했다. 사건 발생 1년 10개월만에 사건과 관련된 현직 경찰관들이 사과 입장을 밝히며 얽히고설킨 매듭이 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경찰 사과의 이면을 살펴보면 꺼림칙한 부분이 많다. 시간을 1년전으로 되돌려보자. 작년 10월 이철성 경찰청장은 병상에서 사망한 백 농민의 부검 강행을 밀어붙였다. 사망진단서 ‘병사’ 기록과 ‘빨간우의’ 등이 부검 강행의 논리였다. 이 청장은 백 농민이 사망한 후 정치권의 수차례 조문 요구도 “법적으로 다투는 사안”이라며 응하지 않았다.

신윤균 총경과 살수차요원들도 작년 9월 국회 청문회와 이후 민사재판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무고함을 주장했다. 그들이 했던 수많은 말을 한 줄로 요약하면 “최대한 안전하게 살수했는데, 사고가 발생해 안타깝다”는 것이다. 법적인 책임을 피하면서 최소한의 유감 뜻만 밝힌 무책임한 답변이었다.

이런 이들이 갑자기 백남기 사건의 사과 뜻을 밝혔다. 사과의 이유와 사과가 늦어진 배경에 대한 설명 없이 ‘사과 퍼포먼스’만 있었다. 경찰청장은 유가족이 아닌 언론 앞에서 머리를 숙였고,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사건의 진상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민사재판에서 무고함을 주장하던 신 총경과 살수차요원들도 끝까지 다툴 것으로 보였던 민사재판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들이 사과했던, 아니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뭘까? 겉으로 드러난 가장 큰 변수는 ‘정권 교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백남기 사건의 진상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청와대가 검경 수사권 조정의 전제 조건으로 경찰개혁을 거론한 상황에서 경찰은 백남기 사건을 묻고 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경찰청장 사과를 비롯한 사건에 대한 경찰의 급격한 입장 변화는 정권교체 1개월 전후에 이뤄졌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사건 당사자들의 앞가림을 위한 결정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철성 청장, 신윤균 과장, 살수차 요원들 모두 경찰공무원으로서 앞가림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새정부 출범 후 청장 교체 이야기가 지속해서 나오고 있고, 신 과장과 살수차 요원들은 검찰의 기소 판단을 앞둔 시점이다. 법적인 책임을 차치하더라도 이들의 인사권자인 청와대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경찰공무원으로서 각자 앞가림을 위해 사과는 불가피했다. 그들의 사과를 왜곡하고 싶진 않지만, 지난 2년간 이들의 행적을 보며 내린 결론이다.

신윤균 과장은 지난달 27일 법원에 청구인낙서를 제출하며 “수많은 갈등과 번뇌 끝에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살수차 요원들도 “하루에도 수십차례 (사과를) 고민했지만 경찰 조직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고민과 번뇌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들은 국회 청문회를 비롯해 수차례 사과를 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경찰과 자신들의 무고함만을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들이 민사재판 피고인인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전 서울청장에게도 사과입장을 밝힐 것으로 권유하고 있지만,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설사 때늦은 사과를 한다 할지라도 1년11개월이 지난 지금 그들의 사과를 순수한 의도로 받아들일 사람들은 없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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