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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지친 발걸음이 저절로 가서 닿게 되는 곳

유레루나의 첫 음반 [Monument]를 들으며, 2017년 한국대중음악 신을 생각한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차트를 누비고 있는 2017년. 윤종신의 ‘좋니’가 노래방 차트 1위를 고수하고 있는 2017년. 워너원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2017년. 그러나 한국대중음악 신은 방탄소년단과 윤종신, 워너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신은 더 많은 공간과 장르와 음악과 뮤지션으로 채워지면서 날마다 달라진다. 인기는 동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뮤지션을 만들어내곤 하지만 동시대는 몇몇 스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기가 음악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음악 신에는 수많은 취향과 지향이 공존하고, 매순간 변화한다. 기준을 바꾸면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과 뮤지션도 얼마든지 바뀐다. 아니 시대를 대표한다고 말하는 일부터 불가능해진다. 누구도, 어떤 음악도 시대를 대표할 수 없다. 다만 공존할 따름이다.

유레루나의 음반은 그 공존의 지도, 2017년의 음악 지도 어디쯤에 놓일까. 신으로 치면 인디, 장르로 치면 사이키델릭 포크와 록 사이에 걸쳐질 음악은 싱어송라이터 유유(eueu)와 기타리스트 경인선(kyeong in seon)이 함께 만들었다. 유레루나는 지난해에 결성한 팀이다. 지난해 3월, 젠트리피케이션 컴필레이션 음반에 담은 ‘별따라 가누나’를 함께 작업하면서 처음 호흡을 맞춘 유유와 경인선이 팀을 결성했다. 서로의 지향점과 활동 성향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 팀 이름은 일본어로 '흔들린다'는 뜻의 유레루(ゆれる)와 영어로 '달'을 뜻하는 루나(Luna)를 멋대로 섞은 이름이라 한다.

유레루나의 첫 음반 ‘Monument’의 자켓
유레루나의 첫 음반 ‘Monument’의 자켓ⓒ유레루나

음반에 담긴 6곡의 노래는 팀의 이름처럼 흔들리고 흔들리며 달처럼 어둠을 배경으로 흐릿하게 퍼져나간다. 사실 음악은 감정을 표현하고 감정을 건드리며 교감하기 때문에 모든 음악이 다 흔들린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유레루나의 음악이 흔들린다고 하는 이유는 안정되지 않은 불안과 슬픔과 두려움이 음악 안에서 숨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음반의 첫 곡인 ‘별따라 가누나’부터 지금 이 곳을 떠나 ‘별따라 가’고 있다 말한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떠나는 이가 흔들리지 않을 리 없다. 흔들리지 않는데도 떠날 리 없다. 그 흔들림은 기타와 보컬과 건반으로 사운드를 만들어 외화한다. 슬로우 템포의 곡은 건반과 기타가 깔아둔 축축하고 어두운 정서를 바탕으로 흐릿하게 노래한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엇 때문인지를 말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느껴진다. 꿈과 이상을 좇아가는 것이 아님을. 희망과 기쁨으로 가지 않음을 모를 수 없다. 멜랑콜리한 멜로디와 일렉트릭 기타의 아련하고 몽환적인 연주, 똑같이 조응하는 보컬의 나른한 톤은 짧은 노랫말이 생략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채운다. 같은 멜로디를 반복하면서도 연주 방식을 바꾼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리버브와 딜레이를 확장함으로써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를 부풀리고 힘을 불어넣는다. 나른함을 편안함으로 치환할 수 없게 만드는 곡은 하나의 서사로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춘 음반의 첫 번째 트랙으로 손색이 없다.

음반은 두 번째 곡 ‘우리들’로 이어지며 사이키델릭한 톤과 아물지 않은 상처의 정서를 계승한다. 보컬의 톤과 일렉트릭 기타 연주 스타일은 거의 달라지지 않는다. “꿈을 꾸었”다 말하며 “우리들”을 호명하는 ‘우리들’은 더 이상 현재가 아닌 과거 ‘그 밤속’의 시간을 호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는 “우리들‘이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이리라. ”꿈보다 더 꿈같은 꿈’이 끝나고 ‘우리들’이라는 호칭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세 번째 곡이자 음반의 타이틀 곡이기도 한 ‘달의 뒷면’은 바로 달의 뒷면처럼 쉽게 볼 수 없으나 부정할 수 없는 마음의 뒷면을 드러낸다. “체념하고 또/받아들이”는 것, “잊어버리고 흘러가”는 것. 그러나 “잠을 자”도 “꿈에서 보고”, “한참을 깨서 울먹이”게 되는 것. 이별이든 실패이든 피해이든 아프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마음을 유레루나는 유유의 어쿠스틱 기타와 보컬, 그리고 건반과 플루트로 담는다. 몽롱한 보컬은 더욱 늘어지고 악기의 어울림은 한층 울울창창하다. 가사가 구체적인 심경을 표현한다면 여러 악기 연주는 심경의 멘탈리티를 거칠고 어지러운 사운드로 드러낸다. “내 마음은 여전히 그 시간에” 있다고 할만큼 잊어버리지 못하고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 역시 거칠고 어지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레루나는 마음의 거친 단면과 어지러움을 재현하면서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전범이 된 음악들에 육박하는 완성도를 놓치지 않는다. 특히 적절하게 사용한 플루트 연주가 혼돈과 번민의 질감을 자아내면서 제 몫을 다했다.

유레루나 음악의 몽롱한 사운드는 ‘밤의 물결’에서도 똑같이 이어진다. “아득히 사라져”버린 시간을 안타깝게 노래하는 이 곡에서 기타와 보컬의 공간감은 더욱 확장한다. 관악기 연주에 이은 일렉트릭 기타가 거친 연주로 변화를 주는 곡은 흘러가는 시간을 견디는 마음을 담아내면서 음반 전체를 잇는 서사를 풍부하게 채워나간다. 비슷한 공간감을 유지하면서 어쿠스틱 기타를 사용해 좀 더 밝은 느낌을 발산하는 ‘공명’은 “너”와 서로 ‘공명’하면서 비로소 위로를 받고 안식을 찾는 마음을 담은 것처럼 느껴진다. 첼로 연주가 편안함을 더하면서 음반의 기승전결은 완성된다. 그리고 마지막 곡 ‘닮은 계절들’은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이제는 희미하게 떠나”간다고, “흔들리며 떠돌던 지난 날에 안녕을” 고한다고, 그렇지만 “그날들이 여전히 내안에서 머”문다고, 그럼에도 “흔들리며 살아갈 오는 날에 안녕을” 전한다고 구체적으로 말하면서 살아있는 마음을 드러내 음반의 서사를 종결한다.

유레루나의 공연 모습
유레루나의 공연 모습ⓒ유레루나

아주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교감할 수 있는 서사와 정서를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와 공간감, 충만한 멜로디로 표현해내는 유레루나의 음악은 은유와 비의가 넘실거리는 일기를 읽는 것 같은 감정의 움직임을 이끌어낸다. 무엇보다 풍부한 정서의 설득력과 일관성은 음악과 음반이 지녀야 할 덕목에 충실하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 뿐일지라도 듣는 이들은 자신의 삶을 뒤져 맞춰보고, 나만 이런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마음을 쓸어내리게 되는 음악이 있다. 누군가에게든 위로받고 너만 그런 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비로소 견딜 수 있는 삶에 위로를 대신하는 음악이 있다. 음악은 예술가의 고백임과 동시에 만인을 향한 응원이며, 조언이고, 탈출구이자 거울이다. 지친 발걸음이 저절로 가서 닿게 되는 곳, 2017년에는 바로 유레루나의 음악이 그 곳에 있다.

*편집자주 - 필자 사정으로 하루 늦게 게재됐습니다. 독자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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