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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 루터와 원효가 조각보처럼 공존할 수 있을까?
종교평화예술제
종교평화예술제ⓒ기타

오늘의 종교 현실을 두고 흔히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종교를 통해 안식과 평화를 찾는 것이 아니라 반목과 대결과 전쟁을 만나게 된다. 종교와 평화라는 단어를 함께 쓰는 것조차 어색해지고, 종교가 세상의 걱정이 되고, 종교 갈등이 전쟁으로 까지 이어지는 세상에서 종교평화를 염원하는 이들이 함께 모이는 종교평화예술제가 13일 개막했다. 첫날 교회에서 종교개혁을 위한 세미나가 열리고, 둘째날 절에선 종교평화를 위한 콘서트가 펼쳐진다. 각자 자신들의 색깔을 자랑하면서도 상대방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가 함께 공존하는 마치 조각보같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루터 종교개혁 500년과 원효 탄생 1400년을 기념해 열리는 ‘종교평화예술제’는 손원영교수불법파면시민대책위원회와 (사)한국영성예술협회, 마지아카데미가 공동주최하는 행사다. 손원영교수불법파면시민대책위는 손원영 전 서울기독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불법 파면을 규탄하기 위해 지난 3월 결성된 단체다. 손 교수는 법당에 난입해 불상을 훼손한 개신교인을 대신해 사과하고 불상 재건립 비용을 모금했다가 지난 2월 파면됐다. 기독교 교리가 금지하는 ‘우상숭배’를 위배했다는 이유였다. ‘종교평화예술제’는 이런 현실을 반성하고 바꾸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마련된 행사다. ‘종교평화예술제’ 첫날인 13일 서울 경동교회에선 ‘종교개혁을 다시 생각한다’를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에 이어 14일 오후 2시부터 길상사에선 ‘콘서트-조각보 같은 공존의 세상’이 펼쳐질 예정이다.

"기독교와 불교 사이의 불화를 끝내고,
오히려 더욱 끈끈한 우정의 공동체로
씩씩하게 앞으로 나가기를”

박정양 목사(손원영교수불법파면시민대책위원회 상임대표)는 “최근 일부 종교인들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상대 종교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 도를 넘고 있어 이를 방치할 경우 한국사회 역시 심각한 종교 간의 갈등과 이로 인한 후유증을 겪게 될 가능성이 있다”며 상징적인 사건으로 손 교수 파면 사건을 꼽았다. 박 목사는 “종교 간의 평화를 위한 노력이 요청되는 상황에서 종교 갈등으로 인한 피해의 당사자인 손원영 교수를 중심으로 종교 간의 평화를 염원하는 이번 ‘루터 종교개혁 500년 및 원효 탄생 1400년 기념 종교평화예술제’가 개최되는 것은 더욱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라며 이번 행사의 의미를 설명했다.

행사총감독을 맡은 조성진 한국영성예술협회 예술감독은 “콘서트를 구상하면서 슬며시 ‘조각보’라는 개념을 내밀었다. 이 개념은 황태연 교수의 ‘패치워크 문명론’에서 가져온 것이다. 한번 만들어진 문명은 상호 혼합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조각보처럼 자신을 잃지 않고 서로 어울려 공존하는 방식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개신교 신자 가운데 개신교 신앙이 소멸 되리라는 걱정은 접어두길 바란다. 다만 얼마나 아름답게 서로의 조각을 배치하여 온전함을 이루어갈 것인가에 마음을 쓰자는 것이다. 그 길은 교리나 율법의 차원이 아니라 심미적인 지평에서 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현진 마지아카데미 대표는 “종교는 때론 어둠의 질곡에서 등대가 되고, 먼 길을 동행하는 수레가 되어주기도 하였지만, 때론 사회를 분열시키고 문명의 진보를 지체, 퇴행시키는 기능을 하기도 하였다”면서 “새로운 영성으로 한국 종교의 미래를 여는 자리에 함께 해 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경동교회 원로인 박종화 목사는 “오늘날 한국 땅의 종교가 본래의 자기 모습을 찾기를 원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믿는다. 다원종교 사회에서 종교간의 상호 인정과 평화적 공존이 필수적이지만, 종교인 상호간에는 이 땅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자유, 정의, 평화라는 공동의 생존과제를 위해서 긴밀한 소통과 합심과 협력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자고 제언하고 싶다. 종교라는 틀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종교를 만들고 신앙을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며 아마도 이것이 ‘조각보 같은 공존의 세상 만들기’의 중심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손원영 서울기독대학교 해직교수는 “올해는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임과 동시에 한국불교의 큰 스승인 원효대사 탄생 14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두 분은 비록 시대와 종교를 달리하지만, 모두 자신이 속한 종교의 개혁을 통해 사랑과 평화라는 종교의 본질을 멋지게 추구한 공통점이 있다”면서 “예기치 않은 마주침으로 시작된 종교 갈등의 사유를 통해 이제 기독교와 불교 사이의 불화를 끝내고, 오히려 더욱 끈끈한 우정의 공동체로 씩씩하게 앞으로 나가기를 간절히 빌어마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종교평화예술제 세미나 ‘종교개혁을 함께 생각한다’
종교평화예술제 세미나 ‘종교개혁을 함께 생각한다’ⓒ손원영 교수 페이스북

이들의 바람처럼 개신교, 천주교, 불교의 개혁을 통해 각 종교가 조각보처럼 어울리는 세상은 가능할까? 이번 세미나의 주요 내용을 발제문을 중심으로 이곳에 소개한다. 세미나 1부는 ‘개혁자 루터와 그리스도교개혁’이었다. 이정배 박사(현장아카데미원장)가 ‘종교개혁의 세 오직 교리에 대한 메타크리틱을 통한 이후신학 모색’을, 백소영 박사(이화여대교수)가 ‘두 명의 카타리나:만들어진 소명의 폭력’을, 황경훈 박사(가톨릭 우리신학연구소장)가 ‘교황청 개혁과 한국 천주교회 개혁’을 각각 발제했다.

이정배 원장
“자기 종교의 수련인 ‘명상’이
세상을 바꾸는(참여) 힘이 되지 못한다면
그 종교는 세상에 존재할 이유를 잃을 것”

이정배 원장은 종교개혁을 위해 오늘의 기독교에게 고독, 저항, 상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좋은 개인이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개인과 사회를 아우르는 사회적 영성의 차원에서 종교개혁이 중요하다. 단지 개신교 내부의 종교개혁 500년 역사를 논(論)하는 것이 아니라, 천주교, 불교, 유교 등을 막론하고 시대가 요청하는 종교개혁의 과제를 인문학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것”이라며 “‘참여와 명상’이란 것도 실상 사람을 달리 만들기 위한 방편이라 해도 좋다. 사람이 달라져야 제도도 달라지며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이런 과정 전체를 일컬어 사회적 영성이라 일컬을 수 있다. 자기 종교의 수련인 ‘명상’이 세상을 바꾸는(참여) 힘이 되지 못한다면 그 종교는 세상에 존재할 이유를 잃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이어 ‘고독하라, 저항하라, 그리고 상상하라’를 강조하면서 “이 세 개념이 기독교를 비롯한 일체 종교를 개혁하는 동력이라 믿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들 세 개념이 종교개혁자들이 사용했던 3개의 오직(sola) 교리, 즉 믿음, 은총, 성서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고독, 저항, 상상은 이 시대를 위한 중요한 개념이다. 고독은 자기 자신으로 깊게 들어가는 일로서 하느님 앞에 단독자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독, 곧 신앙은 주관적 상태에 머무는 게 아니라 하느님처럼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신비적 사건이다. 저항은 세상의 틀에 안주하지 않고 체제 밖을 지향하는 삶이 것이다. 자본주의, 천민자본주의가 모든 것 중 모든 것이 된 현실에서 이것은 더욱 요청된다”고 강조했다.

백소영 교수
“종교개혁의 핵심 정신은 ‘본래로 돌아가자!’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동등하게 옆으로 서서 마주보며
각자 가진 재능으로 서로를 건설하라고 짝 지워주신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야 말로
그 정신에 부합되는 것이 아닐까?”

백소영 교수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시각에 머물러있는 개신교의 여성인식을 지적하면서 성평등 시대에 걸맞는 교회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백 교수는 “개신교도들은 세속 사회에서의 일상을 통해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부여하신 특별한 부르심대로 ‘살아내려’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그 열심 때문에 경제, 정치, 교육, 소위 사회 제도 안에서 역할도 컸다. 무엇보다 여성 응시에 있어서도 전근대적 가톨릭의 여성관과는 사뭇 다른 ‘개혁적’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딱 ‘저기까지’였던 거다. 여성의 ‘부르심(소명)’은 조신한 여성, 사랑받는 아내/현명한 엄마, 돕는 2인자의 역할이라고. ‘적어도’ 16세기 이래 몇 백년간은 ‘다수’의 개신교 여성들에게 ‘나름’의 의미가 있었을 이 여성 응시는, ‘분명히’ 21세기 후기-근대적 상황에서는 ‘어림없는’ 시선”이라고 꼬집었다.

백 교수는 한국 교회에서 여성은 남성 또는 남성 지도자를 돕는 존재로 취급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언제 하나님께서 여성의 자리를 본질적으로 제한하셨나? ‘돕는 배필’의 히브리어는 ezer kenegdo의 뜻만 제대로 묵상해도 답이 나온다. 직역하면 ‘그의 마주봄과 같은 도움’이라는 뜻이다. 그 도움은 서로 마주보기 전까지는 정해질 수 없다. 각자의 재능이 다르고, 각자의 약점이 다른데 ‘마주 본 두 사람’이 서로에게 주는 도움이 어찌 획일적일 수 있을까? 무엇보다 종교개혁의 핵심 정신은 ‘본래로 돌아가자!’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동등하게 옆으로 서서 마주보며 각자 가진 재능으로 서로를 건설하라고 짝 지워주신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야 말로 그 정신에 부합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백 교수는 “기독교 개혁 500주년, 그 개혁 정신을 이어 받아 바통을 꼭 쥐고 달리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신앙고백 안에는,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 고정되고 닫힌 응시로 ‘너의 재능’을 제한하거나, 핵가족만을 정상가족으로 신성화하면서 결혼하지 않는 선택을 하였으나 의미 있고 헌신적인 공동체적 실험을 추구하는 ‘소명’을 가진 신앙인들을 억압하는 언어는 담길 수 없다. 기독교 전통의 여성 응시에 또 다시 새로움을 담아낼 과제가 우리 앞에 주어져 있다. 인간의 창조성과 더불어 유한성에 대한 고백 역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일진대, 기독교적 여성 응시의 개혁적 시도는 계속되어져야하고,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황경훈 소장
“한국천주교회의 개혁은 무엇보다도
리더십의 부재에서 찾아져야 하며 따라서
청렴하고 능력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데서
‘하느님의 백성’ 전체가 참여하는
민주적 제도의 확립이야말로
오늘 천주교회 개혁의 핵심과제”

황경훈 우리신학연구 소장은 교황청 개혁과 한국 천주교회의 개혁에 대해 역설했다. 황 소장은 “‘본당에서부터 바티칸까지 쇄신되어야 한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말이다. 교회쇄신을 바라고 이의 실현을 위해 활동해 온 모든 이들에게는 복음과도 같은 희망의 언어다. 누구도 교황의 입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이하 공의회)의 기본 정신인 ‘교회쇄신’을 더 철저화한 ‘교회개혁’이라는 말이 나오리라 생각했으랴. 그러나 이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고 이 순간에도 교황 프란치스코는 교회개혁의 시나리오를 하나하나 실천해가고 있다”면서 “한국 그리스도교와 불교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이 자리에서 교황청과 한국 천주교회의 개혁을 말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슴 벅차고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종교개혁이 있은 뒤 ‘반개혁’으로 대응해 오던 가톨릭이 50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마르틴 루터의 정신을 제대로 기리고 그 뜻을 실천적으로 계승하는 은총과 기회를 맞고 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황 소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는 교회는 세상에 봉사하는 교회, 중산층의 교회가 아니고 폐쇄적이지 않으며 성직자 중심(a clerical church)의 교회가 아니다. 이와는 다르게 그가 말하는 교회는 대화와 다양성을 위한 열린 공간이기에 누구나에게 개방되어 있고 서로를 알아보고 반기는 그런 곳이다. 이 ‘새로운 교회’가 사목의 핵심 내지는 우선으로 삼고 있는 것은 가난한 이를 위해 일하는 것이고 폭력 및 환경파괴에 분연히 일어서는 것이며 다른 종교들, 특히 이슬람과 대화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교회론을 바탕으로 그는 교황청의 ‘구조’를 개혁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 구조개혁의 과정에 있으며, 지속적이며 인내를 갖고 꾸준히 해내야 할 과제로 보인다”고 말했다.

종교평화예술제 세미나 ‘종교개혁을 함께 생각한다’
종교평화예술제 세미나 ‘종교개혁을 함께 생각한다’ⓒ손원영 교수 페이스북

황 소장은 이어 한국천주교회 쇄신과 관련해 성직자중심주의와 한국의 독특한 권위주의 문화 등을 비판했다. 아울러 황 소장은 부패, 타락, 물신주의에 대해 지적했다. 2014년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방한 첫날 한국 주교들에게 이런 비판을 한 바 있다.

“한국 교회가 번영되었으나 또한 매우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살고 일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목자들은 기업 사회에서 비롯된 능률적인 운영, 기획, 조직의 모델들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성공과 권력이라는 세속적 기준을 따르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까지도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준보다 우선하여 취하려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십자가가 이 세상의 지혜를 판단할 힘을 잃어 헛되게 된다면 우리는 불행할 것입니다.”

황 소장은 “한국천주교회의 개혁은 무엇보다도 리더십의 부재에서 찾아져야 하며 따라서 청렴하고 능력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데서 ‘하느님의 백성’ 전체가 참여하는 민주적 제도의 확립이야말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천주교회 개혁의 핵심과제라고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도흠 교수
“탈근대에 들어 종교가 3차 서비스 산업화하고
근대 자본이 미치지 못하던 마음의 영역까지
상품화하여 개인의 소외와 불안, 피로에 대해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평온, 위로와 치유,
스트레스 해소, 행복을 보장해 주는
재주술화가 진행되고 있다”

세미나 2부는 ‘개혁자 원효와 불교 개혁’을 주제로 진행됐다. 이도흠 박사(한양대 교수)가 ‘포스트세속화/탈종교시대에서 화쟁적 불교개혁의 길’을, 이찬훈 박사(인제대 교수)가 ‘입전수수, 요익중생의 길-원효의 계승과 불교 혁신의 길’을, 박병기 박사(한국교원대 교수)가 ‘화쟁의 윤리와 평화의 길’을 각각 발제했다.

이도흠 교수는 불교의 현실에 대해 “재가불자는 만인 사이의 투쟁에 의한 경쟁 확대로 인한 불안을 기도에 의존하여 치유하려 하고, 승려들은 이것이 교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사찰재정 증대를 위해 포기하지 못한다. 탈근대에 들어 종교가 3차 서비스 산업화하고 근대 자본이 미치지 못하던 마음의 영역까지 상품화하여 개인의 소외와 불안, 피로에 대해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평온, 위로와 치유, 스트레스 해소, 행복을 보장해 주는 재주술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포스트세속화/탈종교 시대를 맞아 종교는 전 시대와 분명히 구분되는 변화를 요청받고 있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권위주의, 가부장주의, 기복성 등 봉건 잔재가 청산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생적 근대성이 없지는 않았지만 미약하였고 일본을 매개로 한 서구적 근대화/기독교화를 추구하고 이에 대한 모순이 산재한 상황에서 탈근대로 나아가고 있어 모순은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다. 모순과 문제가 많다면 원인을 분석한 후 성찰과 개혁을 하여야 함은 당연하다”면서 “종교, 신, 진리, 신자, 구원의 개념과 본질에서 시작하여 의례, 전도/포교, 일상에 이르기까지 오늘의 맥락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진정한 구원의 길을 찾는 작업 또한 행해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박사는 “화쟁의 방식으로 개혁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교수는 “우리는 근대의 종점에 서서 이를 성찰하며 탈근대의 길찾기를 행하고 있다.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길이 있다. 중세, 근대, 탈근대의 실타래들은 서로 얽혀 있다. 그럼에도 그 주체가 각성한 시민이어야 함은 명확하다. 어느 한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대립과 갈등을 아우르며 대대적으로 새로운 지평을 여는 화쟁의 방편이야 함도 분명하다. 과학과 대량학살이 신을 회의하게 만드는 탈종교화와 포스트세속화의 시대에서도 내재적 초월로서, 타자성과 의미의 원천과 힘으로서 종교는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찬훈 교수
“우리는 오늘날 이 땅의 중생이 고통을 해결하고
깨달음을 구현하기 위해서 어떤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할 때에
불교는 다시 한 번 민중 속에 살아있는
종교로 되살아날 수 있을 것”

이찬훈 교수는 “치열한 공부와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중생 속으로 들어가 중생과 더불어 울고 웃으며 중생교화를 통해 깨달음을 구현하려 했던 원효의 삶은 바로 그러한 입전수수와 요익중생의 삶이었다. 중생구제라는 대승불교의 이념을 표방하면서도 정작 현실적인 중생의 삶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오늘날의 한국 불교에 대해 원효의 삶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어 “그동안 한국에서 불교의 승려들은 다분히 간화선을 통한 개인적인 단박의 깨침만을 추구하는 간화선 절대주의, 간화선 유일주의라는 틀에 박힌 전통적인 수행법에 매달리면서 절실한 중생의 삶과 고통의 해결이라는 현실을 도외시하는 산중불교에 매몰되어 있었다. 또한 불교를 신봉하는 대중들은 그런 이데올로기를 맹목적으로 답습하거나, 그러한 깨달음을 이루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민중들이 겪는 어려움을 함께 해결해 나가려 하기 보다는 여러 불보살들에게 매달려 개인의 복만을 기원하는 기복불교에 빠져들어 있었다”면서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이제 한국 불교를 민중의 삶 속에서 살아있는 종교로 소생시키기 위해서, 원효의 정신을 계승하고 그 바탕 위에서 한국 불교를 다시 한 번 혁신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 민중과 더불어 살면서 민중을 구제하고 교화하려 했던 입전수수와 요익중생이라는 원효의 보살행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를 우리는 잘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당시의 민중들이 겪고 있는 많은 고통에 공감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당시의 시대적 제약 속에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 여겨진다”며 “오늘날 이 땅의 민중들이 겪고 있는 문제와 아픔은 원효 당시의 그것들과 어떤 면에서는 중첩되고 또 어떤 면에서는 서로 다른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불교계가 원효를 계승하여 입전수수 요익중생할 수 있는 길, 중생 속에 살아있는 종교로 다시 한 번 혁신할 수 있는 길의 출발점은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 민중들의 생존과 인간다운 삶을 위협하는 절박한 문제들이 무엇인가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역사적 실천이 무엇인가를 깊이 숙고하는 일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오늘날 우리 불교계가 원효를 계승하여 입전수수 요익중생할 수 있는 길, 중생 속에 살아있는 종교로 다시 한 번 혁신할 수 있는 길의 출발점은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 민중들의 생존과 인간다운 삶을 위협하는 절박한 문제들이 무엇인가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역사적 실천이 무엇인가를 깊이 숙고하는 일일 것이다. 불교의 연기적·불이적 세계관은 ‘생태계의 총체적 파괴 문제, 빈곤·기아·실업 문제, 인간의 소외 문제, 공동체의 총체적인 붕괴 문제, 인간의 욕망·감성·주체성·삶의 양식의 왜곡 문제 등과 같이 현대 사회 속에서 중생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의 기초를 제공해 준다”면서 “이를 토대로 우리는 오늘날 이 땅의 중생이 고통을 해결하고 깨달음을 구현하기 위해서 어떤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할 때에 불교는 다시 한 번 민중 속에 살아있는 종교로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병기 교수
“원효의 화쟁은 본래 불교 각 교파들 사이,
또는 충돌하는 주장들 사이의 소통과 화회(和會)를
모색하는 소통이론이자 담론윤리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박병기 교수도 오늘날 불교에 필요한 가치로 화쟁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종교는 우리 사회에서 예수와 붓다의 삶과 가르침이라는 당위적 지향과 미국을 하느님의 나라라고 강변하거나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제거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목사와 승려로 상징되는, 현실적 양상을 동시에 지닌다. 이 양면성 속에서 우리는 후자를 비판적으로 극복하면서 전자를 지향해야 한다는 당위적 요청으로서의 종교윤리를 찾아볼 수 있고, 이 종교윤리의 맥락은 이해관계와 이념의 국경을 넘어서게 하는 실천력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며 “통일을 위한 윤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종교, 특히 불교에 주목하고자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화쟁에 대해 “신라시대의 승려 원효의 창작물이다. 그의 저서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을 통해 본격적으로 자리잡은 이 개념은 이 책의 전승 과정에서 생긴 상당 부분의 결락에도 우리가 재해석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성과 명료성을 확보하고 있다. 원효의 화쟁은 본래 불교 각 교파들 사이, 또는 충돌하는 주장들 사이의 소통과 화회(和會)를 모색하는 소통이론이자 담론윤리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북한이라는 타자와의 화쟁 가능성을 중심이 두고자 하는 통일윤리는 우선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존중과 수용에 근거한 만남과 대화라는 실천을 수반한다. 우리에게 북한은 1948년 각각의 정부수립과 한국동란, 상호적대와 간헐적인 교류 등으로 이어지면서 복잡한 인식의 대상이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쉽게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는 상대방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런 대상에 대한 무조건적 존중과 수용은 자칫 상대방의 의도에 말려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이상적이고 무모한 윤리적 자세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의 일차적 목표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공존하는 것이고, 그 공존의 기반 위에서만 비로소 온전한 의미의 통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맞아들임으로서의 상대방에 대한 환대의 윤리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일 수 없다. 북한 또한 우리를 그렇게 대해주기를 기대하지만, 그런 기대가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택할 수 있는 대안이 최소한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것으로만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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