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지역공공문화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무력함

(지역의) 공공문화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보려 합니다. 멋지게 발표되는 정부의 슬로건과 그럴싸하게 들리는 계량화된 데이터와 비교하면 이런 글은 극히 주관적이고 올드한 이야기입니다만, 그것만이 전부일 수 없습니다. 슬로건과 데이터만으로 우리 삶의 불가시적인 영역까지를 모두 드러낼 수 없으니까요. (지역)문화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공공문화기관의 대표란 자리

분명 기관장 1인의 문제는 아닙니다. 기관장 임기는 대개 3년이고 연임가능하지만 기관장에 대한 인사권자는 해당 지자체장입니다. 기관장 임명을 둘러싼 지역문화계의 민감한 반응들.
“지역문화는 우리가 일구어 왔는데 왜 외지 사람이 기관장을 하느냐?”
또는,
”고생은 우리가 다 했는데 선거캠프용 낙하산이다”
이런 진통과 소음의 고비를 넘기더라도, 조직 장악을 하는데 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필요합니다.

기관 내부 전문가 집단에게 자기 비전을 설득하고 관철시키기 위한 노력, 행정집단과 행정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와 제한 사항에 대한 검토가 만만치가 않습니다. 공공기관에 대한 관리 감시는 통상 2년마다의 감사와 매년 경영평가가 가장 큰 제한사항입니다. 일부 지자체에선 인사검증 청문회도 있구요.

그리고 관련위원회 소속 지역 의원들과의 관계도 기관장이 풀어야지요. 예전엔 인사청탁이 대부분 해결책이었지만, 요샌 지역 이기주의성 민원들이 한 몫하고 있습니다. 안 그러면 예산심의와 감사기간에 녹다운 되는 것은 기관이니 말입니다. 지역마다 예총과 민예총 등 이익단체와의 관계도 기관장이 나서야 됩니다. 이러고 보면 기관장 자리가 만만치 않은 자리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렇게 만만치 않은 자리임에도 기관장은 좋은 사람이 와야 됩니다. 좋은 사람의 기준은 기관의 설립조례와 목적을 충실히 이행하려는 의지를 갖추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대내외 관계를 원만히 해결하고 끌고 갈 수 있는 덕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기관장에 대한 제한 사항들은 막상 좋은 의지를 가지고 왔더라도 능력과 덕이 부족해서 제풀에 놓아버려 “그냥 될대로 되라, 나는 내 임기만 채우다 갈련다” 라며 소극적으로 변해버리거나, 아예 처음부터 독선적으로 “연임할테니 하잖은 것들이랑 말도 섞기 싫으니 내가 하란대로 해” 라며 무조건 실적 위주의 사업만 챙기면서 수상한 적극성을 띄어 기관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합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15동 문체부 소회의실에서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임원진과 면담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15동 문체부 소회의실에서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임원진과 면담을 하고 있다.(자료사진)ⓒ뉴시스

시스템을 잘 만들자?

그럼 매번 바뀌는 기관장에 좌지우지 되지 않게 구성원들이 시스템을 잘 만들면 되지 않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요것도 만만치가 않지요. 시스템이라면 먼저 조례, 규정, 규칙 들일 것인데 이를 제정하는 사람들은 지자체 공무원입니다. 공무원은 2년 또는 6개월에 한 번씩 인사이동이 있어 업무의 연속성이 당연히 없습니다.

초기 기관 설립에 지역의 예술가들이 일부 참여했다고 하더라도 막상 조례니, 규정이니 이런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개입할 권한도 없고-자문회의 정도- 잘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왜냐 본업이 아니니깐요, 당연한 것이죠.

기관 이사회 안건을 상정할 때에도 담당 공무원이 사전에 체크를 합니다. 왜냐면 대부분 공공기관 이사회의 대표는 시장이나 부시장이다 보니 공무원 입장에서는 사전에 안건을 보고해야 되니깐요. 보고라지만 실상 보고 단계에서 반려 당하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일정 잡기는 또 얼마나 힘든데요? 이사회 개최하는 것이 보통일이 아닌 이유도 시장이나 부시장 일정 잡기가 힘들다보니 그렇습니다.

그럼 직원들이 노조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여기서부턴 이제 정규직과 계약직의 갈등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노사갈등이 아니라 노노갈등이죠. 자칫 더 조직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사측의 어용이 아니라 철저하게 정규직을 위한 이익집단의 탄생을 지켜봐야 되는 씁쓸함을 낳을 수 있습니다. 기관 내 계약직들의 인사권은 기관장이고 보직자(팀장, 본부장 등 중간관리자)는 정규직이 대부분 맡고 있습니다. 그럼 노조의 주도권도 정규직이 갖을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갈수록 지워지는 전문성

대부분의 공공문화기관들이 행정집단과는 다른 전문성을 추구하며 출범을 하지만 이들을 관리하는 곳은 행정직 공무원들입니다. 그러니 기관내에서도 공무원들과 말이 통하는 행정집단들이 힘이 세지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때론 기관장 응모에 문화예술관련 분야에서 퇴직한 공무원이 응시를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공공문화기관에서 가장 많이 요구받는 부분이 세금집행, 지원사업의 공정성과 형평성에 대한 논란입니다. 공공문화기관이 지역의 문화를 진흥하기 위해서 지원사업 심사를 얼마나 공정하게 했느냐는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지원사업만이 지역문화를 진흥시키는 방법인가요? 아닙니다.

지원사업(예산)을 얼마나 잘 기획하여 좋은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그래서 예술적 창조의 과정과 결과이 문화계에든 지역민들에게든 공동체의 문화적 감수성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나 형평성의 문제 때문에 정량적 평가치를 개발하라는 요구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정량적 평가체계만으로 문화예술을 심사할 수 있을까요? 그럼 공정성과 형평성이 충족되는 것일까요? 당연히 심사의 공정성은 최우선으로 지켜야 할 기본입니다. 그러나 심사와 평가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고립되는 방식의 지원사업의 틀을 바꾸어야 합니다. 지원사업은 심사가 목적이 아니며 예산 나눠주기가 전부도 아닙니다.

이처럼 공공기관의 공공성이란 타이틀은 갈수록 기관을 수동적이고 움츠러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업무를 문서로만 답하고 문서로만 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e나라도움시스템은 이 비극의 막장종결판과 같은 것이구요.

문화예술인의 60%가 국고보조금의 투명한 관리를 위해 만든 'e나라도움시스템'이 사용하기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문화예술인의 60%가 국고보조금의 투명한 관리를 위해 만든 'e나라도움시스템'이 사용하기 불편하다고 지적했다.ⓒe나라도움 캡쳐

우린 “분명히 세금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라는 공무원들의 대담한 발상이죠. 명확히는 기재부, 나라의 곳간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마인드, 물론 창고지기로써 세금 한 푼 허투루 나가는지 감시해야 되는 것은 높이 사야 할 직업정신이긴 합니다만. 이미 지원이 결정된 사람들의 1원 한 장까지 감시하고 의심한다는 것은 기존의 결정과정에 대한 신뢰도 없다는, 무조건 못 믿겠다는 것 아닌가요?

더군다나 공공기관에 대한 경영평가는 행자부 공무원의 탁상공론의 상상력이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입니다. 경영평가를 잘 받기 위해 업무를 한다는, 평가자료 제출기간에는 전 부서의 업무가 마비되어 버리는, 왜냐 지역마다 다르지만 기관장의 연봉과 연임문제에, 종종 벌어지는 기관의 통폐합 논의가 불거질 때 순위가 낮은 기관일수록 좋지 않은 결과로 가니 사활을 걸 수밖에요.

공공기관에 대한 공공성에 대한 과도한 주문은 기관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고 기계적인 업무만을 수행하는 기형적인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거의 대부분의 공공문화기관은 페이퍼기관입니다. 페이퍼 공화국 페이퍼 기관, 페이퍼로만 일을 하는 곳이지요. 세금을 쓰는 곳이라면 첫 출근날 상사에게 누구나 들어봤을, “우린 문서로 말하고 문서로 답하는 곳이다” 라는, 맞는 말이죠. 그런데 그것은 최소한의 기준선이지 최대의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업무의 전부가 아닌데 말입니다. 공공문화기관의 공공성은 단지 세금을 공평하게 나누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요? 심사과정에서 절차대로, 규정대로, 서류대로만 진행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조가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간부결의대회를 열고 정부에게 경영평가 제도 개선, 단체협약 개악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조가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간부결의대회를 열고 정부에게 경영평가 제도 개선, 단체협약 개악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트로이의 목마를 구하자

이게 답은 아니겠으나, 공공문화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트로이의 목마’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적진(?)에 잠입해있는 아직은 공격도 들통도 나지 않는 사람들이죠. 각양각색이겠지만 호시탐탐 외부와 연대를 하려는 사람들. 지금 처지가 공공기관의 생리구조상 적극 나설 수도 개인의 입장에서 뭘 해볼 수 도 없는 한계가 극명한 사람들. 물론 실적과 승진과 경력 쌓기의 문화 권력에 취해있지 않은 사람이어야겠지만요.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 내부 개혁을 할 수 없고 맡겨만 둘 수 없다면 외부와 자꾸 연대할 수 있은 지점을 만드는 시도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처럼 외부에 있는 사람들도 그들과의 관계에 벽을 치지 않고 서로의 처지에 공감하고 지금과는 다른 꿈을 꿀 수 있는 자극들이 오가는 노력이 있어야 됩니다. ‘트로이의 목마’는 루시 리파드가 액티비즘 예술을 분석하며 사용한 개념입니다. 갈수록 슬로건과 데이터에 함몰되어가는 공공문화기관을 구하기 위해선 억눌리고 잠재된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는 돌발적인 교류들이 이뤄져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서로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트로이의 목마’에 있는 사람들의 무력함은 사라질 것이고 공공기관들의 공공성은 한 층 더 두터워질 것입니다.

한재섭(미술사)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