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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정밀아의 노래를 들으면 힘이 난다
포크 뮤지션 정밀아
포크 뮤지션 정밀아ⓒ정밀아

뮤지션과 음악은 서로 얼마나 닮을까. 신나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은 실제로도 밝고 쾌활하고, 우울하고 쓸쓸한 음악을 하는 뮤지션은 실제로도 센치멘탈할까. 많은 사람들은 뮤지션이 자신의 성격을 음악으로 고스란히 드러낸다 믿는다. 하지만 예술작품이 예술가의 전부는 아니다. 예술가의 자아는 작품 안팎을 넘나든다. 예술은 그저 재능이거나 기술일 수도 있다. 인간의 선한 모습을 표현하는 예술가가 반드시 착하리라 믿는 것은 단지 희망사항일 수 있다. 선한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을 기술적으로 잘 연마하는 일이지, 실제로 선한 삶을 사는 일은 아니다. 삶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어떤 예술은 삶과 매우 가까워보인다. 특히 포크 음악이 그렇다. 민요에서 출발한 포크 음악은 음악으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반드시 회귀하는 연어처럼 삶 자체와 일치하려는 열망을 포기한 적이 없어 보인다. 포크 음악에서 유독 ‘진정성’이라는 기준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이며, 현실을 비판하는 음악이 유독 많이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포크 음악은 싱어송라이터 자신의 삶과 꿈과 욕망을 진솔하게 드러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포크 뮤지션의 노래로 그의 마음과 생각을 짐작하고 그를 단정한다. 최근 자신의 두 번째 정규음반 [은하수]를 발표한 정밀아는 어떨까?

10곡의 노래가 담긴 이 음반 수록곡 가운데 마지막 곡 ‘꽃’을 제외한 아홉 곡의 가사는 모두 정밀아가 썼다. 정밀아가 쓴 노랫말들은 자신이 살아가고 경험하고 느끼는 삶을 그대로 옮기듯 담은 것처럼 느껴진다. 모든 생활이 예술이 되지는 못하고, 예술가의 마음을 움직인 순간들만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정밀아는 자신을 움직였던 사건과 순간을 매우 자세히 재현함으로써 직접체험에 가까운 간접체험으로 음악을 듣는 시간을 제공한다.

정밀아가 경험한 사건과 순간은 사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음직한 일상이다. “저녁 무렵 비가 내”리는데, “우산이 없”고, “지친 어깨를 지고서 버스에 몸을 싣는” 경험이 어떻게 일상이 아닐 수 있겠는가. 저기 달이 가는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는 경험, “내 맘 내가 몰라 우습다” 생각하는 경험을 비롯해 정밀아의 노래에는 아주 특별하지는 않은 순간들이 정밀아에게 붙잡혀 와 있을 때가 많다. 정밀아는 예술과 현실, 일상과 비일상을 나누고 싶지 않은 듯하고, 특별한 순간들도 호들갑스럽지 않게 표현하려는 듯 하다. 세상에 화장실에 가지 않는 사람은 없듯, 삶은 누구나 경험하는 비슷비슷한 일상으로 채워지는 것이며, 정밀아는 예술은 그 평범한 일상을 기록하고 재현하면서도 얼마든지 가치와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부러 드라마틱한 사건을 만들어내고 감정을 끌어올려 폭발시키고 분출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그래서인지 노래 속 정밀아의 목소리는 고음으로 뻗어가지 않고, 저음으로 처지지도 않는다. 많은 악기를 동원하지도 않고, 숨막힐 듯 빠른 비트를 조이지도 않는다. 그저 말하듯 속삭이듯 소근거리듯 담담하고 차분하다. 그루브를 넣거나 변형시키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 일상 생활의 목소리이다. 물론 포크 싱어송라이터의 보컬 스타일이 대부분 그렇다고 할 수 있으나 정밀아는 자신이 말하듯 쓴 가사를 통해 노래함으로써 노래와 뮤지션의 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든다. 이렇게 뮤지션과 노래가 가까운 노래는 듣는 이들에게도 가깝다. 이것은 정밀아의 노래이자 누구나의 노래가 될 수 있는 노래들이다. 자신의 노래를 하면서 다른 이들의 노래로 듣게 만들어버리는 능력은 노래 한 곡 한 곡의 이야기에 각자의 삶이 겹쳐지게 만든다. 보편성을 가진 노래로 사랑받았던 민요들처럼 정밀아의 노래 역시 보편적이다.

정밀아 2집 ‘은하수’ 커버사진
정밀아 2집 ‘은하수’ 커버사진ⓒ정밀아

정밀아는 그 보편적인 삶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본다. “하늘 귀퉁이 볼 수도 없는/좁고 낮은 곳의 사람들”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그들이 “벼락 같은 구원” 대신 “찬 공기 뚫고 스며들 봄빛”을 꿈꾸고 있음을 알 수 없다. 삶의 보편성을 존중하는 마음은 흔한 삶의 통속성을 쉽게 비판하거나 바꾸려 하지 않아서 “우리 모두 별이 될 거”라며 응원한다. 작은 돌멩이와 들국화와 산딸기, 패랭이꽃, 낮은 폭포와 나이가 많은 소나무도 어여쁘다 말하는 마음은 다정하기만 하다. ‘미안하오’를 비롯한 수록곡들에 내재한 정서는 선하고 다정한 마음이다. 타인과 타자에게 다정한 만큼 자신에게 진실한 정밀아는 “숨쉬는 게 부끄러운 하루”였던 순간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태도로서의 다정함과 진실함이 이 음반의 전부일리 없다. 그 마음을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정밀아는 마음을 음악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어쿠스틱 악기 이외의 악기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악기들과 보컬을 모두 소박하게 풀어놓음으로써 어떠한 과장도 더하지 않는다. 미니멀하지만 밀도 높은 긴장감을 보여주는 포크 음악과 달리 정밀아의 포크 음악은 자신을 자제하면서도 수더분하고 수수하다. 이 소탈함이 정밀아 2집의 가장 큰 매력이다. 문턱이 낮은 음악이지만 비기가 없지는 않다. 정밀아는 ‘달 가는 밤’, ‘말의 이해’, ‘별’, ‘미안하오’ 등의 곡에서 재즈와 블루스의 질감을 어쿠스틱하게 가미함으로써 곡과 곡을 다르게 만들고, 곡의 이야기들에 리듬과 무게감을 부과하며 정갈함을 배가시킨다. 첼로와 베이스 연주로 시작하는 ‘그런 날’ 역시 편곡이 돋보인다. 반면 곡 자체의 밀도가 높은 ‘별’과 ‘심술꽃잎’은 정밀아의 목소리와 최소한의 연주만으로도 충분한 흡인력을 만들어낸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우며 따뜻하고 예쁜 음악이고, 그런 삶을 응원하는 음악이다. 이런 노래를 들으면 힘이 난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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