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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진짜 중년여자들의 매콤쌉싸름한 이야기, 추민주 연출의 신작, 연극 ‘에덴미용실’
연극 ‘에덴미용실’
연극 ‘에덴미용실’ⓒ씨에이치 수박

12년 대학로 장수 흥행작 ‘빨래’의 추민주 연출이 따끈한 신작 연극 ‘에덴미용실’을 오픈했다. 에덴 미용실는 서울 변두리의 흔해빠진 미용실이다. 20년 경력의 성원장은 에덴 미용실의 주인이다. 사실 어릴 적 동네 미용실은 다 그렇게 생겼다. 지금이야 과거의 기록처럼 몇 군데의 골목에서나 볼 수 있는 관광코스 중 하나가 되었지만. 엄마는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를 말고는 어김없이 빨간 머릿수건을 머리에 두른 채로 집으로 오셨다. 엄마는 느긋하게 우리들의 저녁을 챙겨 주시고는 다시 미용실로 가셨다. 엄마의 머리는 십수년간 똑같아 보였지만 엄마의 마음에 들게 머리를 말아주는 미용실에 대한 선택기준은 꽤 까다로우셨다. 시간이 흘러 각종 브랜드 미용실이 거리와 골목을 점령해갔다. 나는 엄마가 사랑했던 미용실대신 **헤어, ##미장 등 고급스럽고 세련된 헤어숍을 주로 다녔다. 사람이란 참 신기하다. 무대 위에 설치된 에덴 미용실의 모습은 한동안 잊혀졌던 엄마의 단골미용실을 다시 기억나게 했다.

연극 ‘에덴미용실’
연극 ‘에덴미용실’ⓒ씨에이치 수박

미용실은 여자들에게 특별하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슬플 땐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하고 싶어진다. 순간 감정에 취해 파마를 했다가 다음날 바로 후회를 하기도 한다. 똑같아 보이는 머리지만 유난히 마음에 들게 커트가 된 날이면 만사 고민도 잊고 여자가 되어 설레는 밤을 보내기도 한다. 미용실에서 여자들은 더 많이 수다스럽다. 좁게 붙어 앉아 머리를 해야 하는 미용실에서 비밀스런 얘기란 없다. 일면식도 없는 아주머니의 속궁합 얘기를 생생하게 듣게 되는 것쯤은 놀랄 일도 아니다. 남편의 험담쯤이야 미용실의 흔한 이야깃거리다. 미용실에 있지도 않은 사돈의 팔촌이야기에서 정치 야사까지 미용실의 이야기는 범우주적이다. 미용실 원장님도 고객인 아주머니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미용실은 단순히 머리를 하는 곳만은 아니다. 여자들에게 미용실은 휴식처이자 여자로 다시 태어나는 마술같은 장소이다.

‘에덴 미용실’이 그렇다. 에덴은 성서에 나오는 지상낙원이자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마음껏 사랑하는 곳이다. 미용실 주인 성원장에게는 자신과 아이를 지켜줄 행복의 울타리이길 바라는 곳이기도 하다. 에덴 미용실에는 단골손님들이 있다. 시원한 성격의 반장아줌마와 하루종일 통닭을 튀기느라 얼굴이 빨갛게 달아있는 통닭아줌마, 그리고 부지런한 만물상 아줌마가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연으로 에덴미용실과 인연이 되었다. 성원장과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람들이다. 매일 에덴미용실을 북적거리게 만드는 것은 단골만이 아니다. 샴푸솜씨가 끝내주는 ‘이쁜이’ 때문이기도 하다. 이쁜이는 성원장의 하나뿐인 아들이다. 극의 1인칭주인공이기도 한 나, 이쁜이는 여자아이보다 더 예쁘게 생겼다. 이쁜이는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다. 이쁜이의 샴푸솜씨는 고단한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고 지친 몸을 달래준다. 이쁜이에게는 샴푸와 미용 스승인 경미누나가 있다. 경미누나는 에덴미용실의 미용보조이다. 남자들에게 특히 인기있는 경미는 그 인기(?)탓에 미용실 한 곳을 오래 있지 못한다. 성원장은 그런 경미를 가족처럼 보듬는다.

에덴미용실은 세상의 축소판같다. 행복을 위해 고단한 하루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있고 편견으로 가득찬 시선도 있다. 기성세대의 질서와 무관한 아이들이 있고 타인의 삶을 좀먹는 이도 공존한다. 하루가 행복한 듯하면 어느새 먹구름같은 불행이 몰려온다. 따뜻한 햇살같은 평화가 내려앉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소나기같은 좌절이 쏟아지기도 한다.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중년여자들의 19금 이야기가 무르익어갈수록 중년여성의 무력감과 상실감도 무게가 더해간다. 씩씩한 남자이길 거부하는 이쁜이의 갈등이 깊어갈수록 세상이 던지는 편견의 화살도 개수를 더해간다.

연극 ‘에덴미용실’
연극 ‘에덴미용실’ⓒ씨에이치 수박

추민주 연출의 작품에서는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다. 상처를 준 세상마저도 품어 안고 사랑하려는 따스함은 추민주 연출의 힘이다. 전작 ‘빨래’에서 보여준 사람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힘을 얻어가게 했다. 연극 ‘에덴미용실’에서도 그렇다. 미용실 ‘셔터’를 내려주던 그 남자의 듬직함 때문에 바람을 피우며 속을 썩여도 남편이 있어야 산다고 했던 성원장은 하루아침에 미용실의 ‘셔터’를 철거해 버린다. 자신만의 낙원 에덴동산을 지켜줄 거라 믿었던 ‘셔터’도, 남편도 어쩌면 두려움이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연극 ‘에덴 미용실’은 지지리도 남편복 없는 중년아줌마들의 농염하고 통쾌한 입담을 통해 여자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인생사를 보여준다.

극 전반에 걸쳐 적재적소에 흐르는 트로트는 극의 분위기를 한껏 살린다. 뮤지컬이 아님에도 트로트가 마치 뮤지컬곡처럼 극의 흐름을 이끌어간다. 멋진 여자, 사랑의 불꽃, 사랑의 영도다리 등 가수 진해성의 구성진 트로트곡들이 입과 귀에 감기며 듣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무대에 펼쳐진 에덴미용실의 모습은 어린시절의 기억 속 동네미용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사실적이면서도 정감 넘치고 촌스러우면서도 멋스럽다. 낙원이고 파라다이스가 따로 없다. 역시 여신동 무대디자이너다. 엄마이자 성원장에 배우 이정은과 김효숙이, 반장아줌마에 배우 이경미, 통닭아줌마에 배우 김가영, 만물상 아줌마에 배우 김지혜가 중년여자들의 화끈함을 연기한다. 경미와 미애역에 배우 김사울이, 나이자 이쁜이에 배우 안승균과 심상훈의 안정되고 신선한 연기를 펼친다. 좀 세상 살아본 중년이라면 더 격한 공감할 내용이지만 ‘빨래’에 이어 다양한 세대에게 힘과 위로를 줄 작품이 될 거라 기대한다.

연극 ‘에덴미용실’

공연장소:동양예술회관 2관
공연날짜:2017년 11월 7일~12월 31일
공연시간:90분분
관람연령:중학생 이상

이숙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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