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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앞두고 한국역사연구회 학술회의 ‘메타 역사로서의 3.1운동사 연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3.1독립만세운동 재현 체험' 기념 행사에서 3.1운동 재현 행사가 열리고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3.1독립만세운동 재현 체험' 기념 행사에서 3.1운동 재현 행사가 열리고 있다.ⓒ양지웅 기자

역사는 항상 새롭게 쓰여 진다. 같은 역사적 사실을 두고서도 이를 기록하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기록된다. 100년 전 벌어진 3.1도 역사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서술되어 왔다. 한국역사연구회는 내후년 3.1운동 100주년 기념 심포지움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 ‘메타역사로서의 3.1운동사 연구’라는 주제 하에 3.1운동에 대한 인식이 시기마다 기억 주체마다 달랐다는 점, 그 이유를 추적하기로 하고 이와 관련한 학술회의를 11월18일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406호(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 460)에서 연다.

최우석(성균관대 박물관)은 ‘3.1운동, 그 기억의 탄생’이란 논문에서 3.1운동 연구에서 기본 사료로 사용되어온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한일관계사료집’(1919),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1920), 김병조의 ‘한국독립운동사략 상편’(1922)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각각의 사료는 저술 목적을 각각 달리 하고 있었기에 서술 내용이 매우 달랐다는 점, 특히 박은식의 저서는 그에 앞서 간행된 ‘한일관계사료집’의 수치와도 참여인원에서 38만 명이나 차이가 나며, 일제측의 공식 발표 기록보다 참가인원이 적게 추산된 지역도 54개소에 달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해방 직후 좌익과 우익 간 투쟁에서 사회주의자들이 3.1운동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는 이후 북한 역사학의 전개 과정에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박종린(한남대 역사교육과)은 ‘해방 직후 사회주의자들의 3․1운동 인식’이란 논문에서 해방 직후 사회주의자들이 3.1운동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밝혔다. 그 결과 한국의 민족운동이 ‘갑오농민전쟁’ → 3.1운동 → ‘10월 인민항쟁’ 으로 이어졌으며 이러한 운동은 결국 ‘민주주의 조선’ 건설이라는 목표를 향한 과정이었다고 결론지었다.

홍종욱(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은 북한에서 발간된 주요한 단행본 통사책들을 검토하여 북한 역사학자들이 시기에 따라 3.1운동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어 왔음을 규명했다. 초기에는 1910년대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서 3·1 운동을 자리매김한 정도였으나, 1960년 전후에는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하여 3·1 운동이 부르주아 민족운동이라고 하여 근대적 성격을 강조했다. 주체 사관이 전면화 된 1980년대는 김일성 가문을 중심으로 3.1운동을 서술하고 역사학이 형해화되었다고 보이는 2000년 이후에는 ‘조선민족제일주의’에 입각한 서술이 이루어졌다. 홍종욱은 이와 아울러 남한 역사학자들이 한편에서는 북한 역사학을 비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 역사학을 인용하는 현상도 지적했다.

김정인(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은 최근 몇 년간 가장 뜨거운 논쟁적 주제인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관계를 다루었다. 그는 ‘3.1운동과 임시정부 법통성 인식의 정치성과 학문성’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스스로 3.1운동의 계승자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고 이러한 인식이 임시정부 해체의 위기 때마다 부각되고 해방 직후에는 한국민주당 등 우파의 ‘임시정부 법통론’으로 이어졌다고 보았다. 또한, 1980년대 이후 역사학계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강조하면서도 그 내부에는 3.1운동 → 임시정부 → 대한민국이라고 하여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강조하는 흐름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일개 독립운동 단체로 보고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별도의 흐름으로 인식하는 흐름이 함께 만들어져 왔음을 냉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지원(대림대)은 ‘3·1절 기념사를 통해본 민족정신의 구조화’라는 논문에서 역대 한국 정부가 3.1운동의 정신을 어떻게 강조하면서 ‘3.1정신’이라는 개념이 사용되어 왔는지를 검토했다. 그에 의하면, 해방 직후부터 새로운 국민 국가의 주체가 누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좌익과 우익 정치세력은 3·1운동 정신의 해석을 둘러싼 싸움을 벌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는 3·1절을 국경일로 제정하고 국가의 공적 역사로서 3·1운동을 전유·기념하면서 ‘3·1정신’을 ‘국민정신’ 고양의 전략으로 활용했다. 이후 ‘3.1정신’에 대한 해석은 국가주의라는 공통점을 지니면서도 이승만, 장면, 박정희 등 정권 핵심세력마다 강조하는 구체적 내용이 변화되어 오늘날에 이르렀음을 밝히고자 했다.

한국역사연구회는 “이 같은 3.1운동 인식의 역사, 즉 3.1운동의 메타역사 연구를 통해 3.1운동의 전과정은 아직도 밝혀야 할 수많은 면모가 있다는 점, 3.1운동에 대한 인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히려고 했다.”며 “이러한 전제 작업 이후에 3.1운동의 역사를 ‘사건과 목격자들’, ‘권력과 정치’, ‘공간과 사회·경제’, ‘사상과 문화’ 등 분야별로 서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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