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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누구도 내치지 않고,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

지난 주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거 같은데, 예술가의 삶과 작품이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루시드 폴의 새 음반 ‘모든 삶은, 작고 크다’를 놓고 제주로 가 귤 농사를 짓고 있는 루시드 폴의 일상이 담겨 있다고 말하기 쉽다. 하지만 모든 음악가의 음악에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러니 루시드 폴의 새 음반에 제주도 생활을 곧바로 연결하는 건 게으르고 안일하다. 만약 루시드 폴이 스웩 넘치는 힙합을 하다가 제주도에 가 갑자기 고요하고 평화로운 음악을 한다면 모를까. 루시드 폴의 음악은 애틋하고 위태로웠던 실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초기의 한 두 장을 제외하면 늘 다정하고 따뜻했다. 세상의 불의와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음악에서조차도 그의 음악은 어찌나 다정한지 연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루시드 폴
루시드 폴ⓒ안테나 뮤직

그렇다고 그동안 루시드 폴의 음악이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밴드 활동에서 솔로 활동으로 포맷을 바꾸고, 여러 장의 음반을 내놓는 동안 루시드 폴의 음악은 한결같이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기반으로 했지만 루시드 폴은 어쿠스틱 기타의 자리에 피아노를 놓기도 하고, 남미 음악의 어법들을 연결하면서 변화를 꾀했다. 모던 록이나 포크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 루시드 폴의 음악은 팝으로 넓어졌고, 서늘함 대신 우아함에 이르기도 했다.

그리고 루시드 폴은 지난 10월 30일 2년만에 공식 8집 ‘모든 삶은, 작고 크다’을 내놓았다. 9곡의 노래가 담긴 이 음반의 메시지와 정서는 이전 음반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루시드 폴은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나지막하게 들려주고, 소중한 사람들과 세상으로 눈길을 돌린다. 타이틀곡이자 첫 곡인 ‘안녕’에서 루시드 폴은 구체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잘 지내고 있”다고, “얼굴이 조금 더 탔”다고, “나무들과도 벌레들과도 더 친해진 것 같”다고, “그렇게 살아온 2년의 시간에/키우고 가꾼 노래를 거두”었다고. 새 음반 속 9곡의 노래는 바로 그런 노래들이다. 엄청난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고, 어찌 보면 늘 듣던 노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전히 루시드 폴의 삶이 담겨 있는 노래다. 루시드 폴이 바다 건너 그 섬에서 여전히 노래하고 있으며, 그의 삶 한 켠에 노래가 깃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노래들이다.

루시드 폴 8집 커버 이미지
루시드 폴 8집 커버 이미지ⓒ안테나 뮤직

루시드 폴의 2년만에 공식 8집 ‘모든 삶은, 작고 크다’

그는 손을 흔들어 담담하게 인사를 전하고, “은하수를 건너온 열차”를 타고 떠나는 이야기, “온통 비바람 몰아”치는 날 “작은 오두막 속”에 숨은 이야기, “가을 숲에서” “눈 감은 새 한 마리 날려 보내고 돌아오는 길”을 이야기 한다. 루시드 폴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어릴 적 내 모습”과 “갯바람 부는 여기 마을에 살고 있”는 이야기, “바다처럼 그렇게 사랑”하는 이야기, “내 손을 놓지는 말”라는 이야기, “비를 맞고 싶”고, “끝없이 춤을 추고 싶”다는 이야기, “우리가 그렇게 기다린 아침”을 맞는 이야기까지 루시드 폴의 이야기는 진솔하고 따뜻하다. 그는 자신의 삶에 스며들어온 이야기들 가운데 달라진 삶의 모습과 자신을 가장 깊게 움직이는 사랑과 평화에 대해 노래한다. 지키고 싶은 사랑과 평화에 대해 노래하고,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옮기면서 세월호를 노래하는 루시드 폴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편안하지만 루시드 폴의 편안함이 나른하고 상투적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루시드 폴은 그 곳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부지런히 살아가면서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키고 싶은 의미를 값지고 가치 있게 대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원하고 누구나 지키고 싶지만 쉽게 얻을 수 없고 쉽게 지킬 수 없는 가치 앞에서 루시드 폴은 기도하듯 노래한다. 그 기도는 오직 주어지기를 바라는 희구의 기도가 아니라, 그 가치를 위해 스스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의 기도이며, 항상 한결같이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겠다는 약속의 기도이다. 통곡에 귀 막지 않고, 두려움과 쓸쓸함에 잡아먹히지 않고, 죽어가는 생명들을 기꺼이 보내주는 일까지 감당하겠다는 이의 내면은 성숙한 인간이라는 말로만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루시드 폴의 음악에는 언제 어디서건 스스로의 삶을 감당하면서 삶으로부터 배우고 인간으로 완성되어 가려는 이의 정직한 고투가 있다. 루시드 폴이 머물고 있는 지역과 하고 있는 일보다 더 본질적인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루시드 폴 자신이 음악 속에 담겨 있다고 해석한다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루시드 폴
루시드 폴ⓒ안테나 뮤직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담아낸 사운드 메이킹

스스로 노랫말을 쓰고, 곡을 붙이고, 편곡을 했을 뿐만 아니라, 작업 공간을 직접 만든 루시드 폴은 그 공간에서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녹음과 믹싱을 했다 한다.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가장 잘 만들어내기 위해 스스로 애쓴 노력한 결과물인 이번 음반은 그래서인지 정교하거나 화려하거나 섬세하다는 느낌보다 그저 편안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노래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정서를 표현하든 악기 연주와 루시드 폴의 노래가 섞여 한 곡의 노래가 된 곡들이 9곡 이어지는 동안 자연스럽지 않은 순간이 한 순간도 없다. 어쿠스틱 악기를 쓰고, 조곤조곤 노래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루시드 폴이 그 편안함을 전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리 진지하고, 간절한 노래일지라도 한결같이 편안하게 다가오는 노래들은 이 편안함의 에너지야말로 루시드 폴이 노래보다 더 만들고 싶고 전해주고 싶은 것임을 가늠케 한다. 너무 많은 정보, 너무 풀리지 않는 문제, 너무 다른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루시드 폴은 누구도 내치지 않고,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자신의 사운드 메이킹으로 공들여 담아낸 것이다.

그리하여 루시드 폴의 음악을 듣는 순간은 루시드 폴의 이야기와 정서와 사운드에 젖어드는 시간인 동시에 음악으로 평화로워지는 시간이다. 세상의 어떤 음악은 설레게 하고, 어떤 음악은 들뜨게 하며, 어떤 음악은 뜨겁게 한다. 그 가운데 루시드 폴의 음악은 멈추게 하고, 돌아보게 하고, 숨쉬게 한다. 이 음반이 명반이 아니면 또 어떤가. 모든 삶이 작고 크듯, 어떤 음악 역시 작고 크다. 사실 작지만 비좁지 않고, 여유롭고 편안하게 거닐게 되는 음악이면 족하다. 루시드 폴이 어디에서 머물건 계속 이런 음반을 내주면 좋겠다. 우리가 그 음반과 함께 늙어가면 좋겠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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