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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창욱 칼럼] 루터의 대개혁 500년과 명성교회 세습 : “칼아 너 갈 데로 가라”
명성교회
명성교회ⓒ온라인 커뮤니티

“이 교회를 섬길 김하나 목사도 많이 힘든 길을 주님이 십자가를 지어주셨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맡겨주신 주님이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지 않겠나...(아멘)”

11월 12일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가 아들 목사에게 교회를 물려주면서 한 말이다.

문장이 비문인 것은 논외로 하자. “교회, 섬기다, 주님, 십자가, 감당하다, 은혜” 김삼환 목사가 사용한 중요단어이다. 주옥같은 신앙언어이다. 김삼환 목사의 이 말에 한국교회의 현실과 모순이 그대로 담겨 있다. 자기가 물려주고서는 주님이 십자가를 지어주셨다고 정당화한다.

문제가 뭔가? 신실한 목자도 거짓 목자도 쓰는 언어가 같다. 양자 다 똑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찾고 같은 신앙언어를 쓰고 같은 찬송을 부른다. 이렇게 참과 거짓이 섞여 있는 판국이니 명성교회 교인들이 열렬히 세습에 동참하는 것은 한숨 나오지만,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점은 있다. 예수가 말한 십자가는 이런 비단길 십자가가 아니다. 십자가를 지겠다는 말은 죽겠다는 뜻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고난과 희생이 분명한 길을 갈 때 쓰는 말이다. 죽음을 각오한 사람이 자기 운명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고백이다.

멋모르고 따르겠다는 제자에게 예수는 ‘네가 이 길을 갈 수 있겠느냐’고 저어하는 길이다. 또 루터보다 백년 앞서 개혁운동을 편 체코의 얀 후스가 화형당한 길이기도 하다.

그런데 신도 십만이라는 굴지의 교회를 단지 아들이라는 이유로 물려주면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었다고 하는 것은 냉정하게 말하면 예수의 십자가를 모독하는 일이다. 예수는 로마제국의 정치범으로 십자가처형을 당했다. 그런데 소위 예수 이름으로 산다는 사람이 전혀 다른 길을 가면서도 십자가 운운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어째서 이렇게 생뚱맞은 십자가가 통하는 것일까? 성공주의신학이 그 결정체다. 십만 교회라는 혁혁한 성공열매가 있으므로 해서 무슨 말을 해도 다 받아주는 풍토가 만들어졌다.

명성교회에서 이런 예는 차고 넘친다. 매체를 통해 세습식 장면을 보니, 강대상 뒤에 성구가 적힌 큰 현수막이 좌우에 걸려 있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5)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마가 11:17) 이다. 무수한 신자가 사랑하는 성경말씀이다. 그런데 명성사람들은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지 않는 일을, 또 만민이 기도하는 집에서, 거룩한 말씀과 의식으로 포장하여 세습을 일사분란하게 치렀다.

“브루투스 너 마저”를 흉내 내자면, “명성교회 너 마저”가 됐다. 다른 교단의 대형교회들이 의례히 세습하지만, 명성교회는 후임자를 건강하게 이어갈 것으로 기대했다. 그래서 예장통합의 명예를 지켜줄 거라 믿었다. 게다가 김삼환 목사도, 아들 목사도 세습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러 차례 공언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두 사람 다 자기 말을 뒤집었다. 믿었던 사람들 뒤통수를 세게 쳤다. ‘루터의 대개혁’ 500년 되는 해를 낯부끄럽게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3월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46회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대표, 김삼환 명성교회 목사와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3월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46회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대표, 김삼환 명성교회 목사와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뉴시스

사심을 신앙으로 위장한 ‘교회 세습’

왜 세습이 문제인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몸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다. 이 말씀은 관념이 아니다. 초기교회 목숨을 빼앗기는 박해 속에서 교회를 지킨 선조들의 신앙고백이다. 이 말씀은 김삼환 목사가 전국 교회와 신학교, 온갖 집회를 떠돌면서 입만 열면 하던 소리이기도 하다. 명성교회 장로는 모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세습이 아니고 정당한 민주절차를 거친 승계라고 했다. 말장난이다. 유신헌법도 선거라는 민주절차를 거쳤고, 희대의 사기꾼 이명박도 선거라는 민주절차로 대통령이 됐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는 말은 사람이 교회의 주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심을 신앙으로 위장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기독신자는 기본적으로 교회는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신앙고백을 한다. 가난한 개척교회를 목회하는 필자도 현실의 어려움과 애타는 심정을 넘어서 교회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신비에 감탄할 때가 많다. 그래서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더욱 깨우친다. 그러나 세습은 이런 가상한 고백을 모두 무위로 돌리는 독신(瀆神)이다.

명성교회는 교회의 안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어찌하여 세습하는 교회마다 변명하는 수사도 같은지. 교회의 안정도 하나님께 맡길 일이다. 그게 불안하다고해서 아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주장은 세습교회에서만 하는 말이다. 우리가 북한의 권력세습과 재벌들의 경영권 세습을 비판하듯이, 교회도 세습하면 안 된다. 교회는 민주공화국 이상으로 100%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김삼환 목사의 순수함을 믿었었다. 신학교 사경회 때 기억 때문이다. 김삼환 목사가 사경회를 인도했는데, 옛날 극히 어려웠던 목회시절을 회상하면서 너무 가난해서 병원에 갈 수 없어서 아픈 아이를 잃었던 뼈아팠던 과거를 고백했다. 그 눈물의 고백을 들으면서(필자도 울었다) ‘아, 저 분이 그래도 초심을 잃지 않고 있구나’ 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그런 고백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필자가 순진한 건가, 김삼환 목사가 위악한 건가.

필자는 교계뿐만 아니라 세상의 지대한 관심과 기대를 외면한 채, 기어이 ‘패밀리 비즈니스’를 감행한 이유를 김삼환 목사 개인에게만 돌리고 싶지 않다. 어느 기업인이 검찰조사를 받으면서 “내 돈 받지 않은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고 호기롭게 말했듯이, 한국교회 특히 예장통합에서 명성교회 돈을 받지 않은 곳은 별로 없다. 총회는 물론이고, 7개 신학교, 명성출신 교회, 선교사들, 각종 기독단체들은 명성교회 재정후원에 상당한 덕을 보고 있다. 오죽하면 명성교회 장로가 매체 인터뷰에서 “38년 동안 명성교회가 어떠한 일을 해 왔냐를 파악하면 좋겠다. 직접 와 보면, (세습한다는) 밖의 말이 기우고 우려인 것을 알 것”이라고 했을까.

게다가 최근 법원 재판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김삼환 목사의 비자금이 800억 원이라고 하니, 그 돈으로 무엇을 해 왔을지는 뻔하다. 마치 삼성이 세금 낼 돈의 1/100로 정관, 사법, 언론 등 우리 사회 요소요소를 주물렀듯이, 김삼환 목사는 십만 교인들의 피 같은 헌금을 비자금으로 빼돌려서 열심히 수하관리를 해 왔을 것이다. 그러니 총회는 침묵하고, 총회장을 했던 목사들이 세습방지법을 정한 총회 결정을 무시하고 세습식에서 설교와 권면과 축도를 하는 것이다. 무수한 교계 사람들이 김삼환 목사와 연줄 맺기와 재정후원을 원했다. 그러므로 김삼환 목사가 주범이면, 그 카르텔에 속한 무수한 사람들도 공범쯤에 들어간다.

그러니 거꾸로 생각하면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내부비밀이 있는 게 아닌가하는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당장 다른 사람이 담임목사가 되면 비자금 800억 원의 비리가 드러나고 말텐데,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는가? 이다. 또 세습을 해야 누이 좋고 매부 좋게 기득권 이익을 독점한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명성교회 세습의 주범과 공범들, 김삼환 목사와 그 카르텔

김삼환 목사(자료사진)
김삼환 목사(자료사진)ⓒ뉴시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도 잘 모르겠다. 이미 맘몬(mammon, 재물)이 교회를 점령해 버린 시대에 무슨 신묘한 처방이 나오겠는가. 그저 최소한의 조치를 취한다면 예장통합 총회는 세습방지법에 따라 법을 어긴 명성교회를 제대로 치리해야 한다. 치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명 결단까지 해야 한다. 명성교회 십만 교인과 돈을 계속 교단에 묶어두겠다는 미련에 우유부단 한다면, 교단 자체가 지리멸렬해 질 것은 분명하다. 실제 지역의 건강한 교회들은 작고 이름 없는 자리에서 묵묵히 예수의 십자가를 전하지만 맘몬교회가 안 좋은 일 한 방 터뜨리면, 전도의 수고가 수포로 돌아간다. 따가운 냉소와 항의를 받을 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뇌리에는 계속해서 이현주 목사의 글, ‘칼아, 너 갈 데로 가라’가 떠올랐다. 이 목사는 1990년 일어난 걸프전쟁에서 제국 미국이 이라크를 짓뭉개놓은 데서, 형 카인이 아우 아벨을 살해하는 게 떠올랐다는데, 명성교회의 세습이 자기만의 유지확장을 위해 작은 교회들의 분투를 파멸시키는 것 같다. 그러나 하늘역사는 숭고하고 생명기운도 굳세다. 명성교회는 자기 갈 데로 가지만, 이 땅 예수의 십자가를 품은 교회들도 묵묵히 자기 길을 갈 것이다. 그리고 둘 다 심판대에 오를 것이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대구새민족교회 백창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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