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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대한민국’이란 이름에 가린 학살의 역사, 영화 ‘해원’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다룬 다큐 ‘해원’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다룬 다큐 ‘해원’ⓒ스틸컷

젊어서 죽은 사람의
울음이다 저것은
이유도 없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통곡이다
산비둘기 가슴은 볼록하다

그날 저녁 아무 것도 모르고 끌려간 그 사람의 가슴이 그랬다

저 작은 날짐승의 가슴에서
저렇게 커다란 울음소리가 울려나오는 것은
꼭 해야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 유홍준 시인 ‘저 산비둘기 울음’ 중에서

1950년 한국전쟁을 전후해 수많은 민간인이 ‘좌익’과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했다. 제주에서부터 호남, 영남, 강원, 경기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적게는 10여명부터 수천 명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렇게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민간인들이 100만 명을 훌쩍 넘는다는 정부 통계도 있다. 수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아무도 그들의 죽음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유족들은 남들이 볼까 숨죽이며 떠나간 가족을 기리는 것조차 맘껏하지 못했다. 1960년 4.19혁명 직후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유해를 발굴하려는 유족들의 시도가 있었지만 196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전국유족회 회장과 간부들을 군사법정에 세우고, 용공 분자로 몰아 사형을 선고하며 그들의 입을 막았다.

그렇게 침묵을 강요당한 채 100만 명이 넘는 억울한 영혼들은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말’을 가슴에 품고 아직도 이 산하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 이들의 억울한 죽음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과 안보라는 허울에 가려져 덮어야만 하는 지난 이야기로 사라지고 있다. 잘못을 저지른 권력은 덮으려하고, 유족들은 아직도 두려움에 떨며 입을 떼기조차 어려워하는 학살의 진실을 13년 넘게 추적하며 영상에 담아온 감독이 있다. 바로 구자환 감독이다. 구 감독은 지난 2004년 경남 마산 진전면 여양리에서 발굴된 국민보도연맹 학살 피해자들의 유골을 취재했다. 이 유골들은 2002년 9월 태풍 루사로 인해 흙이 무너지며 밖으로 드러나기 전까지 50여 년 동안 땅 속에 묻혀 있었다. 유족들을 취재하며 수십년 동안 숨죽이며 살아온 세월을 처음으로 알게 된 구 감독은 이때부터 <민중의소리> 기자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학살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그리고 지난 2015년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는 영화 ‘레드툼’을 공개했다. 2년이 흘러 구 감독은 또 다시 민간인 학살을 고발하는 영화 ‘해원’(解寃)으로 돌아왔다. 이번 작품은 전작 ‘레드툼’의 확장판 성격이다. 전작이 경남 지역에서 자행된 국민보도연맹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데 비해 이번엔 제주를 비롯한 전국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다룬 다큐 ‘해원’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다룬 다큐 ‘해원’ⓒ스틸컷

이 영화는 학살의 피해뿐 아니라 그 이유와 근원도 밝히고 있다. 해방 이후 이 땅에 마치 점령군처럼 주둔한 미국과 배고픔을 하소연하며 저항에 나섰던 민중들. 그리고 청산되지 못한 채 다시 권력을 잡은 친일파. 해방 이후 한국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의 시간들은 학살을 예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1948년 제주에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학살은 대규모 학살의 예고였고,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학살은 전국에서 자행됐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승만 정부는 국민보도연맹원을 집단학살했다. 희생자 대다수는 이승만 정권이 좌익세력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반공단체인 ‘국민보도연맹’에 영문도 모른 채 가입했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전투와는 상관없는 지역에서 학살됐다. 이승만 정권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전향한 사회주의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시국대응전선 사상보국연맹’이란 단체를 모방해 ‘국민보도연맹’을 만들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에 부역하거나 동조할 수 있다면서 이들을 학살한 것이다. 학살당한 이들의 대부분은 순박한 농민들이었다. 이들 가운데는 청소년은 물론 항일독립운동가도 상당수 있었다.

구 감독의 영상을 따라가다 보면 학살은 결국 친일파들이 권력을 잡고 자신들이 부역했던 일제의 방식을 활용해 민간인들과 항일독립운동가들에게 자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직도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그들은 이 학살의 과정을 치열한 좌우대결에서 이기고 대한민국을 수립한 과정으로 미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왜곡을 바로잡는 건 학살의 비극을 우리의 이야기로 만날 때 가능하다. 구 감독의 영화는 교과서에서 잘 다루지 않고, 언론에 보도조차 되지 않던 학살의 비극을 우리의 이야기로 만나게 한다. 그가 전하는 영상은 학살을 어느 이름 모를 청년의 죽음이 아니라 내 할아버지 또는 내 친구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만나게 한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된다. 글자와 숫자가 아닌 죽어간 이들의 얼굴과 그를 그리워하는 가족들의 얼굴이 보인다. 그 얼굴과 함께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해원은 그들이 아닌 우리 모두의 숙제가 된다.

영화 ‘해원’은 오는 11월30일 개막하는 2017 서울독립영화제를 통해 공개되며 상영작 예매는 11월20일 오후 2시부터 시작된다. CGV 홈페이지(http://www.cgv.co.kr),
맥스무비(http://www.maxmovie.com), YES24(http://www.yes24.com)를 통해 예매하면 된다.

영화 ‘해원’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일정

1차:12월 2일(토) 저녁 8시20분 (CGV 아트하우스 압구정 2관. GV)
2차:12월 4일(월) 오후 1시 (CGV 아트하우스 압구정 1관. GV)
3차:12월 6일(수) 오후 3시 (서울극장-인디스페이스 1관)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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