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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노조기] 세월호·박근혜 퇴진 집회에 참여한 뒤 우리는 성장했다
'세월호 진상규명' 요구 집회에 참여한 김지윤 작업치료사.
'세월호 진상규명' 요구 집회에 참여한 김지윤 작업치료사.ⓒ민중의소리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하던 언니와 몇몇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늘 시큰둥했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남들처럼 스무살에 맞춰 대학가면 된다 정도, 그렇게 학교 생활을 보냈다.

병원실습 때 혹은 간혹 언니를 보러 서울에 놀러 가면 언니는 재밌는 곳을 같이가자면서 시청에서 열린 한미FTA반대 집회를 데려 갔다. 속으로 '무슨 축구경기 인가? F..뭐라고?' 용어는 낯설고 또 어색했다. 더군다나 집회 하면 '데모, 북한' 이런 것들이 생각나서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언니, 엄마가 언니 서울에서 이런데 가는거 알아? 하이고, 서울에 대학 보냈더니 이상한 곳이나 가고" 입을 샐쭉내밀고 혼자 이태원으로 놀러간다며 도망 가버리곤 했다.

그러고 보면 그런 일도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학교에서는 학년 체육 대회가 열렸다. 수능을 앞두고 있던 우리는 체육대회가 있던 날, "오랜만에 햇빛구경이나 하는 날 이겠거니"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운동장을 나갔다. 시큰둥하게 체육대회를 지켜보던 우리는, 종목마다 지속되는 편파판정이 일어나는 걸 보며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고, 이곳저곳에서 '저건 좀 아니지 않아? 아 뭐야..' 라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정하게 하세요~ 공정하게, 저거 반칙이잖아요!" 라고 소리치는 친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된 편파판정으로 다른 학년이 1등을 하는 상황이 일어났는데, 순간 교실로 돌아가던 3학년 친구들이 '아 이건 아니지 않아 라며, 조회대 앞에서 작은 농성(?)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공정하게 판정하라, 편파판정이였다"라며 같이 외쳤다. 다들 하교를 할 때 편파판정했던 체육 선생님 책상위로 3등으로 받은 상품을 모두 쌓아놓고 가버렸다. 우리가 요구했던 건 1등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게 판단해 달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위의 집회나 우리가 한 작은농성은 같은 맥락인데 왜 그것이 통합되지 않았던 걸까.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을 취업했다. 정신없이 병원에 적응하고 동료들과 지내다 보니 어느새 3년차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건 부당한 근로조건들이었다. 그리고 결정타, '나가라'는 말을 들으며 누군가 우리들의 고용을 함부러 흔들 수 있다는 생각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다시 역사를 배우며 참여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때 '쉬운해고' 저지 싸움에 함께 했던 서울 K요양병원 노조 조합원들.
박근혜 정부 때 '쉬운해고' 저지 싸움에 함께 했던 서울 K요양병원 노조 조합원들.ⓒ민중의소리

처음으로 집회라는 곳을 가게 된 아니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세월호 집회였다. 배가 가라앉는 것을, 소리 없는 비명을 하루종일 생중계로 지켜 보았다. 그때 우리도 함께 가라 앉았는지 모른다. 국민들은 아무도 구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광화문에서 우린 함께 슬퍼했고 함께 분노했다. 그리고 세월호 진상 규명하라는 피켓을 들고 함께 외쳤다. 외치던 그 순간 나는 오묘하기도 하고 목에 걸렸던 솜뭉치가 입밖으로 빠져나가는 시원함도 느꼈다.

집회의 마무리, 행진이라는 것을 처음해보았다. 그날 걸으며 깨달았다. "아 내가 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였구나!" 사회의 한 구성원이며 참여한다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그날은 보이지 않던 숨은 키가 10센치는 훌쩍 커버린거 같았다. 숨었던 자존감이 회복된 순간이였다.

그렇게 세월호 집회를 지나 겨울이 지나, 박근혜 퇴진을 외치던 그날까지, 정치가 우리들의 삶 속에 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먹는 밥 한숟가락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비상식적인 일에 저항하고,버티기도 하고, 그리고 그 자리에 머물기도, 혹은 한발 한발 나아가며 우리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하면서 성장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때의 작은 농성, 이질감이 느껴졌던 한미 FTA반대 집회, 세월호,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던 추운 겨울, 그리고 지금 임상에서 외치고 있는 있는 요구들 이 모든 것들이 같은 선상에 있는, 한 맥락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서울 K요양병원 노조 조합원들은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칩회에 참여했다.
서울 K요양병원 노조 조합원들은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칩회에 참여했다.ⓒ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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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작업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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