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새책]세상이 아프면 의사도 같이 아파야 한다
책 ‘광장에 선 의사들’
책 ‘광장에 선 의사들’ⓒ이데아

“이런 상황에 직면하여 우리는 우리의 의사됨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 지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양심의 보루가 되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소명이며 존재이유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회적 책임을 저버릴 수 없다는 소박한 믿음은 어느 한둘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의사들의 마음 속 깊이 나누어가지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뜨겁던 지난 1987년 11월1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여전도회관에서 열린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창립대회에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양심의 보루’가 되겠다고 다짐이 있었다. 앞서 ‘6월 항쟁’ 직전 이던 그해 6월8일 서울대, 연세대 의대를 주축으로 ‘서울-경기-전북 의사 137명 시국선언’을 한 것이 계기가 돼 인의협이 출범하게 된 것이다.

이후 인희협은 30년 동안 1988년 상봉동 연탄공장 주민 진폐증 조사, 수은중독 문송면군 사건 이슈화, 1989년 조선대생 이철규 씨 의문사 부검 참여, 1999년 원진레이온 직업병 치료 병원 설립 등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양심의 보루’가 되어왔다. “세상이 아프면 의사도 같이 아파야 한다”는 사명으로 세상을 고치기 위해 싸워온 의사들의 지난 역사를 담은 책 ‘광장에 선 의사들’이 출간됐다.

‘광장에 선 의사들’은 1987년 탄생해 올해로 꼭 30주년을 맞는 의사 단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의 역사를 정리한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은 인의협 탄생 이전에 존재했던,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의사들이 주도한 진보적 보건의료 운동’을 살펴보았다. 또 이승만 정권부터 시작해서 대체로 각 정권을 기준으로 활동을 정리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노숙농성 중인 22일 오후 농성장을 찾은 인의협 의사들이 가족들의 건강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노숙농성 중인 22일 오후 농성장을 찾은 인의협 의사들이 가족들의 건강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양지웅 기자
고공농성중인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찾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료진이 9일 오전 이들이 농성중인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 건물 옥상 광고탑에 올라 이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부상을 입은 한규협씨에게 항생제, 파상풍 주사 등을 놓고 있다.
고공농성중인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찾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료진이 9일 오전 이들이 농성중인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 건물 옥상 광고탑에 올라 이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부상을 입은 한규협씨에게 항생제, 파상풍 주사 등을 놓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인의협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지만 인의협이 1987년 이후 벌어진 한국 보건의료 운동 대부분의 사안에 관여했고 그중 적지 않은 부분을 앞장서 이끌었던 만큼, 이 책은 한국 현대 보건의료 운동의 주요 궤적을 짚어 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인의협은 1987년 이후 쏟아져 나온 산업재해와 같은 노동자 건강권 문제, 의문사·국가 폭력 진상규명과 같은 민주주의 문제를 비롯하여 반핵과 같은 환경문제, 건강보험 일원화·의약분업과 같은 의료 제도 문제, 공공의료·보장성 강화·의료 민영화 저지와 같은 국민 건강권 문제, 반전·미군 기지·사드와 같은 제국주의 문제, 노숙인 진료·북한 어린이 의약품 보내기 운동과 같은 인도주의 문제 등 의학이라는 수단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안에 개입했고 나름대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그리고, 그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인의협은 박근혜 정권 내내 바삐 움직여야 했다. 의료 민영화도 큰문제였지만 인의협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인의협은 진주의료원 폐원, 의료 민영화 정책, 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태,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국정농단 사태 속 의료 게이트 등 각종 사안에 적극적으로 결합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1987년 이후 가장 거대한 변화의 동력이라고 하는 탄핵촛불을 일으키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우리는 우리의 의술이 사회의 모든 불의와 부정의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한국이 민주주의와 민중의 사회적 권리를 위한 투쟁의 현장에 항상 함께하려 노력해왔습니다. 최소한 세상이 아프면 의사도 같이 아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지금까지의 다짐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자 합니다. 우리는 사려 깊게 생각하지만, 앞장서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말한 바대로 실천하기를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또 이 땅의 부정의와 비참함을 조금이라도 개혁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그곳이 어디건 달려갈 것을 다짐합니다. 권력의 탄압이나 세간의 일시적 악평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탄압과 질시는 지금까지 우리의 명예였고 훈장이었습니다. 우리는 민중과 함께하는 그 자리에 우리는 인도주의 실천의 깃발을 들고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킬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또 30년을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지난 11월18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인의협 30주년 기념식에서 광장에 선 의사들은 새로운 다짐을 전했다. “인도주의 실천의 깃발을 들고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그들의 다짐에 뜨거운 찬사를 보낸다.

reporter 권종술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