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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여전히 아름다운 음악이 있다
강태구 정규 1집 ‘Bleu’
강태구 정규 1집 ‘Bleu’ⓒ강태구

강태구의 새 음반은 좋을 거라 생각했다. 오랜만에 내놓은 음반이라는 사실이 중요하지는 않았다. 2013년 뮤지션 아를과 함께 자체제작한 스플릿 앨범 ‘들’을 내놓았을 때, 강태구는 몇 곡의 노래만으로도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로부터 4년 뒤 활동이 드물었던 그가 바이올린 연주자 강혜인과 함께 올해 인천평화창작가요제에 ‘둘’로 참여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노래는 단연 돋보였고, 결국 예선과 본선과 결선을 거쳐 최고상을 거머쥐었다.

강태구가 하는 음악은 포크. 포크 음악에 딱히 많은 악기와 연출이 동원되지는 않는다. 어쿠스틱 기타와 보컬에 몇 가지 악기가 돕는 정도이다. 노래의 멜로디가 있고, 노랫말이 있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톤과 분위기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강태구의 노래를 들으면 그의 노래에 빠져들게 된다. 노래가 담고 있는 어떤 정서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강태구의 노래는 경쾌하거나 유쾌한 정서와는 거리가 있다. 댄서블한 음악처럼 신나지 않고 듣는 이들을 몰아붙이며 불타오르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의 노래는 조용히 고백하는 노래이고, 응시하는 노래이다. 그가 고백하고 응시하는 대상은 누구나 경험하는 갈라섬과 교감, 그리움과 좌절 같은 보편적이며 특별한 순간과 감정인데 그 모든 것들을 단어 한 두 개로 압축할 수 있다 해도 각각의 단어에 담긴 이야기와 감정의 파장은 무수히 넓고 깊다. 각각의 단어들은 그 이야기와 감정을 요약할 수 있을 뿐, “다른 무엇도 대신할 수 없”고, 누군가에게는 “평생처럼” 남을 울림을 재현하지 못한다.

강태구 정규 1집 ‘Bleu’
강태구 정규 1집 ‘Bleu’ⓒ강태구

간절함을 재현하는 강태규의 ‘Bleu'

강태구가 음악으로 해내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강태구는 자신의 첫 정규음반 ‘Bleu’에 담긴 일곱 곡의 노래로 어떤 순간과, 그 순간 흔들린 마음에 대해, 할퀴어진 마음, 다짐하는 마음에 대해 말하고 노래한다. 그 순간의 공기와, 그 공기를 흡입하며 버티는 사람과, 그 사람의 마음이 마음 가는대로 흘러가면서 드러내는 간절함을 밀도 높게 재현한다. 그 간절함에 합리적인 이유나 논리적인 근거는 없다. 사실 간절함에 합리적인 이유나 논리적인 근거는 필요가 없다. 예술은 합리적인 이유와 근거를 따지고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상황과 마음을 재현함으로써 되새기고 곱씹을 수 있게 해 증폭하고 반추하기 위해 예술이 존재한다. 인간은 다 알 수 없는 존재이고, 자신의 마음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을 통해 꺼내보지 않으면 더더욱 알 수 없다. 예술은 그렇게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을 알게 하고, 드러난 누군가의 자신이 나와 다르지 않음을 확인시켜 주면서 인간에 대해 알게 한다. 예술가는 바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한 작가와 작품이 얼마나 그 상황과 감정에 가깝게 다가가는가이다. 창작자 자신의 상황과 감정이든, 창작자가 대신하는 주체의 상황과 감정이든 상관없다. 음과 리듬과 악기의 울림과 보컬의 울림, 그리고 가사로 핍진하게 상황과 감정을 담아낼 때 듣는 이들이 비로소 공감하게 된다. 창작자가 표현한 이야기가 듣는 이의 상황과 감정과 맞닿거나, 전이되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멜로디가 필요하고 멜로디를 제대로 살려주는 리듬이 필요하다. 악기와 보컬의 톤과 색이 노래 속 상황과 감정과 조응해야 함은 물론이다.

여기에서 강태구의 강점들이 빛을 발한다. 우선 강태구의 보컬부터 이야기 해야 한다. 강태구의 보컬은 감미롭고 따뜻하지만 매끈하고 따뜻하지만은 않다. 그의 보컬에는 오래 방황하고 떠돈 이의 쓸쓸함과 헛헛함이 묻어있다. 단지 발성 때문일 수 있지만 한 음 한 음을 뱉을 때마다 그의 노래에는 한숨소리 같은 바람소리가 묻어난다. 그 비어 퍼지는 소리는 강태구의 노래를 확신과 단정보다는 상실과 갈증과 희구 쪽으로 기울어지게 만든다. 많은 강태구 노래에 깃들어 있는 애틋함을 만들어내는데 강태구 보컬의 호흡과 톤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떤 노래를 부르더라도 애잔함을 잃지 않는 목소리는 반짝이거나 힘이 넘치지 않고 압도하지 않는 정서와 태도를 유지한다.

어떤 분석이나 비평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게 한 엘범

그렇게 개성 있는 보컬로 강태구는 음반의 첫 곡 ‘Passenger’에서부터 이 세계와 생의 승객으로 실려가는 이의 막막함과 바다 같은 위로를 함께 표현한다. 강태구는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의 단순한 편곡에만 그치지 않는다. 공간감을 불어넣은 보컬 코러스를 통해 곡에 변화를 주고, 가사가 표현하는 서사에 근접해간다.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멜로디는 물론이다. 두 번째 곡 ‘그랑블루’에서는 어쿠스틱 기타와 보컬에 강혜인의 바이올린을 결합시킴으로써 ‘다시 오지 않을 오늘’과 ‘사라지고 없을 마음’의 덧없음과 안타까움을 배가시켰다. 또한 첫 곡과 유사한 공간감은 포크 곡에서 느낄 수 있는 단조로움을 넘어 곡 자체의 울림을 확장하며 소리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이르고 있다. 덕분에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그 안에서 발견한 깊고 푸른 바다는 소리로 온전히 되살아났다. 소리로 순간과 감정을 되살리기 위해 강태구는 소리를 넣고 빼고 낮추고 높이고 키우고 넓히면서 섬세하게 연출해 그 특별했던 순간과 감정을 아득하게 복원하고 있다. 그 결과 듣는 이들의 마음 역시 아득해진다. 결국 이 노래는 이 아찔함과 아득함에 도달하기 위한 장치이자 신호일지 모른다.

강태구의 보컬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소리’에서도 빛을 발한다. 그 자신이 바람 같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까닭에 노래는 바람이 되어 나무처럼 듣는 이들을 흔들고, 자신으로부터 나온 바람으로 인한 흔들림이 아름다운 노래가 되게 한다. 내가 흔들렸다고 짧게 요약할 수 있는 문장이 강태구의 노래로는 동일한 무게와 파장으로 되살아난다. 크거나 작거나 누군가에게 진실인 마음은 강태구의 다른 노래에서 계속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사랑한다고, 사랑하기 때문에 너는 나의 전부라고 말하는 것보다 “너는 나의 전부는 아니지만/니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의 간절함을 더욱 애타게 드러낸다. 담담하게 노래하는 보컬과 바이올린의 이중주만으로도 일상을 함께 하는 두 사람의 평범함과 평범해서 더욱 소중한 마음은 큰 울림을 낳는다. 강태구는 이렇게 계속 자신의 노래와 강혜인의 연주로 노랫말에서 구현한 각각의 간절함을 선연하게 되살리고 있다. 꿈처럼 자신만 알고 있고, 돌아갈 수 없으며, 한없이 그리운 순간마저도 적확한 멜로디와 보컬, 연주 등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음반의 마지막 곡 ‘내 방 가을’에서도 그저 아름다운 가을, 가을이 오면 어떤 표현으로도 전할 수 없는 기분을 강태구는 건반과 보컬만으로 충분히 들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시종일관 아름다운 곡들이 이어지는 음반은 강태구가 탐미적인 싱어송라이터이며, 탁월한 보컬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좋은 작품은 보이지 않은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한다. 그리고 그 모두가 나에게 이미 있었던 것임을 깨닫게 한다.

한 가지만 더 덧붙이자. 한 해가 저물 무렵 비로소 도착한 이 음반은 올해 발표된 국내 음반에 대한 마음 속 최상위권 순위를 뒤흔들어 놓았다. 어떤 분석이나 비평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였고, 움직인 마음을 속절없이 바라보기만 해도 충분했다. 세상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는데 왜 이리 어떤 음악은 여전히 아름다운지. 이런 음악을 구원이나 축복이라고 부르지 않을 도리가 있는지.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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