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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고프고, 아프고, 서럽던 10년 농성의 기억…음악으로 만든 ‘콜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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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콜밴은 서울 마포 서교동 '클럽 빵'에서 투쟁10주년 기념음반 발매 쇼케이스를 열었다.
지난 9일 콜밴은 서울 마포 서교동 '클럽 빵'에서 투쟁10주년 기념음반 발매 쇼케이스를 열었다.ⓒ민중의소리

“♪열네 명의 검은 망토 점쟁이가 요상하게 점을 치네♬”

9일 서울 마포 서교동 한 지하 ‘클럽 빵’이란 곳에서 경쾌한 4/4박자 리듬의 밴드음악이 흘러나왔다. 수많은 사람들의 박수소리와 웃음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팬들을 대거 끌고 다니는 프로라기엔 2% 부족한 보컬 목소리였다. 누구의 공연이기에 사람들이 이토록 즐거워하는 걸까? 목소리의 주인을 보기 위해 클럽 빵으로 들어갔다. 가파른 계단을 타고 내려간 곳에는 40평 정도의 좁은 공간에 가득 찬 사람들의 열기로 공기가 후덥지근했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겹겹이 입었던 외투를 벗어재낀 상태였다.

무대 위에는 웬 아저씨 3명이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깜찍한 리듬의 노래(서초동 점집)를 부르고 있었다. 뿔테 안경의 흰머리 아저씨는 굳은 표정으로 남아메리카 흑인 노예들이 연주했다는 육면체 모양의 타악기 ‘카혼’에 걸터앉아 신나게 두드리고 있었고, 그 옆에 기타를 잡은 체크남방 아저씨는 흡사 안치환의 목소리로 노래를 리드하고 있었다. 베이스를 멋스럽게 걸친 아저씨는 ‘금속노조’ 조끼를 입고 코러스를 깔았다. 이들의 모습이 뭐가 그리 좋은지, 관객들은 모두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밴드를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밴드의 이름은 ‘콜밴’으로 불렸다. 콜밴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밴드’의 줄임말이다. 창문도 없는 공장에서 짧게는 7년, 길게는 30년 동안 기타를 만드는 장인으로 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공장 밖으로 쫓겨난 콜트·콜텍공장 기타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밴드다. 콜밴은 이날 클럽 빵에서 콜트콜텍 투쟁10주년 기념음반 발매 ‘쇼케이스’를 열었다. 2011년 콜밴 결성 이후 처음으로 발매하는 1집 음반이었다. 클럽을 찾은 관객들은 그동안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부당해고에 연대해온 활동가와 예술가, 시민들이었다.

농성장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밴드'
농성장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밴드'ⓒ민중의소리

“♬서초구 서초대로 216번지 그곳은 점집본점♪”

쇼케이스에 앞서 지난 7일 콜밴 멤버들을 서울 광화문 세종로소공원 콜트콜텍 천막농성장에서 만났다. 텐트 문을 두드리니 파카와 조끼를 두 겹이나 껴입은 이인근(콜밴, 기타·보컬 담당) 콜텍노조 지회장이 기자를 맞이했다. 천막농성장 안은 수 겹의 비닐 천막으로 외부의 차가운 공기를 차단하고 있었지만, 텐트 틈새와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왔다. 멤버들은 이곳에서 숙식을 모두 해결하고 있었다. “굉장히 춥다”는 기자의 말에 이 지회장은 “추워야 겨울이죠”라며 서글서글한 눈웃음을 지었다.

콜밴의 노숙농성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 2007년 4월부터 시작됐다. 콜밴 멤버인 이인근 지회장과 임재춘·김경봉 조합원은 여느 때와 같이 공장에 출근했다. 그런데 공장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옆에 공고문이 하 나 붙어 있었다. 공장폐업과 노동자 전원 정리해고를 알리는 공고문이었다. 회사는 주말을 틈타 사무실에서 중요한 자료들을 모두 빼낸 상태였다. 아침 통금버스 기사도 이 사실을 모르고 버스를 운행했다. 관리자 외 아무도 모르게 공장폐업이 진행된 것이다. 그날부터 농성은 시작됐다. 그렇게 겨울을 맞이한 게 벌써 10번째였다. 초등학생, 중학생이던 자식들은 아버지 없이 성인이 되어버린 긴 시간이었다.

1억 원 이상의 법률비용이 든 법정싸움의 시작이기도 했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를 거쳐 지방법원 민사소송, 고등법원 항소, 대법원 판결까지 법정싸움이 끝나는데도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재판에서 이겨도 또 다시 정리해고와 재판이 반복됐다. 이들은 재판을 겪으면서 희로애락을 모두 맛봤다. “단순히 장래의 막연한 경영상의 위기라는 이유로 기업을 폐지하고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은 기업의 책임 방기”라는 지방법원의 판결에 희망을 꿈꾸기도 했지만, 동일한 사항으로 진행된 대법원 판결에는 분노했다. 대법원은 “장래의 경영위기를 고려해 해당사업을 폐지하는 것을 불합리하다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법원의 판결과정을 지켜본 임재춘(콜밴, 카혼 담당) 콜텍노조 조합원은 법원을 풍자하는 곡을 썼다.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 이백십육 그곳에는
장미넝쿨로 둘러싸인 점집이 하나있네
그곳의 간판엔 자유평등 정의가 새겨있네
열네 명의 검은 망토 점쟁이가 요상하게 점을 치네

-노래 <서초동 점집> 중에서…

이들은 더 이상 법원을 법원이라 부르지 않았다.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 216번지에 위치한 그곳은 이들에게 ‘점집본점’이나 다름없었다.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던 임재춘 조합원은 당시를 회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5월인가 1인 시위를 하는데, 그곳 울타리를 따라 장미꽃이 활짝 폈죠. 간판에는 자유, 평등, 정의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대로 믿었죠. 그런데 웬걸? 판사 14명이 모두 점쟁이였어요.”

“날지 못하는 새가 되었다♬”
“♬나는야 주문을 걸어본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고”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와 직장폐쇄에 맞서 그동안 안 해본 일이 없었다. 2007년 12월 복직을 요구하던 이동호 콜트노조 조합원은 분신을 시도해 중상을 입었다. 파업이라곤 한 번 해보지도 않은 노조를 두고 강성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했다는 말을 내뱉은 새누리당 대표의 사과를 촉구며 릴레이 단식농성을 펼쳤다. 부당한 해고를 알리기 위해 두 차례의 고공단식농성을 단행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콜밴의 노래로 승화됐다.

어둠과 밝음이 만날 즈음
등짐 한보따리 짊어지고
쇠기둥 가지를 붙잡고
허공으로 올랐다

한참 후에 당도한
땅과 하늘 사이
텅 빈 공간 그곳에
둥지를 틀었다

한쪽 가슴에 아픔을 묻고
다른 가슴에 그리움 품고
날지 못하는 새가 되었다

고프다 고프다 배가 고프다
아프다 아프다 맘이 아프다
서럽다 서럽다 삶이 서럽다

-노래 <고공>에서…

이인근 지회장은 2008년 10월 양화대교 남단에 위치한 송전탑에서 처음 고공단식농성을 했을 때를 떠올리며 노래 <고공>을 썼다. 이 지회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말했다. “김혜진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지회장과 함께 고공농성을 했던 생각을 하면서 가사를 썼어요. 송전탑에 보니까 전봇대 손잡이 같은 게 있더라고요. 그걸 잡고 한 45m 정도였나?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올라가다가 다시 내려갈까 생각도 했어요. 밑을 내려다 봤는데, 까마득하더라고요. 그대로 그곳에서 30일 동안 둥지를 틀었죠.”

단식을 하니, 배가 등가죽에 붙은 것처럼 고팠다. 고공단식농성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한쪽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노래 후렴구에 반복되는 ‘고프다’, ‘아프다’, ‘서럽다’는 외침은 당시 그런 그의 마음과 몸 상태였다. “KBS 시사프로그램 중 하나가 저희를 취재하고 갔었어요. 제 얼굴이 방송을 탄 거죠. 처남이 그걸 보고 집에서 알게 됐어요.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죠. 어머니, 아버지를 비롯해 온 가족이 상경했어요. 철탑 아래에서 어머니가 울부짖는데, 그렇다고 내려갈 수도 없고…부모와 가족의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하면서까지 해야 하는 걸까 생각도 했어요. 이렇게 살아가야 할 노동자의 삶이 참 서럽더라고요.”

김경봉(콜밴, 베이스 담당) 콜텍노조 조합원은 지난 10년 동안 쌓인 울분을 가사로 적었다.

동하면 통한다 했던가 노조 싫어 공장 닫는 톨게이트 박
나는야 주문을 걸어본다. 불매불량 지옥 불에 망해 가라고
동하면 통한다 했던가 빨대를 꽃아 피를 뽑는 자본가에
나는야 주문을 걸어본다 벽에 똥칠하며 살아가라고

노동자의 삶 보다 수백 수 천 배의 고통 속에 신음하면서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처절하게 살아야 한다고~~
동하면 통한다 했던가 ○천○백○십○일 거리의 인생
나는야 주문을 걸어본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고
나는야 주문을 걸어본다 우리에겐 희망을 달라고

-노래 <주문>에서…

“가사를 쓰려니, 쓸 게 없었다”는 김경봉 조합원은 집회 때마다 쏟아냈던 울분에 찬 말을 가사로 옮겼다. “제가 만들면 다 투쟁하는 답답한 것만 만들어요. 가사를 쓰려니 정말 쓸 게 없더라고요. 그런데 주변에서 평소에 했던 얘기를 쓰라고 해요. 그래서 가사를 이렇게 작성했어요. 오랜 시간 싸우다보니 악만 남았네요.”

노래가사에서처럼 콜트·콜텍의 박모 사장은 노조를 혐오했다고 전해진다. 1987년에 콜트공장에 노조가 결성되자 박 사장은 “노조가 점령한 공장”이라며 공장에 발도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해 박 사장은 논산에 있는 ‘덕역악기’라는 통기타 공장을 인수해 콜텍공장을 만들었다. 이후 콜트의 수익구조를 콜텍으로 옮겼다. 콜텍을 통해 원자재 수입과 제품판매가 진행되면서 콜트에는 최소한의 수익만 남겨졌다. 콜트노조가 요구하는 복지향상은 이루어지기 만무했다. 2006년 콜텍에도 노조가 만들어지자 박 사장은 다음해 콜트·콜텍 공장을 모두 폐업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새로 차린 것이다.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부당해고에 맞서 싸워 온지도 3900여일이 지났다. 김경봉 조합원은 가사에 얼마나 오랫동안 싸워왔는지 적었다. ‘동하면 통한다 했던가, ○○○○일 거리의 인생’ 가사는 그래서 매번 공연을 할 때마다 바뀐다.

공연하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밴드'
공연하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밴드'ⓒ콜밴

10년 동안 거리에서 싸웠던 이유

“부당해고지만, 구제실익 없다.” 마지막 법원의 판결내용이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법정싸움은 그렇게 끝났다. 공장 문을 닫았기에 부당해고 판결이 났어도 노동자들을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국내 제조공장의 문을 닫고 해외에 새롭게 공장을 차린 콜트콜텍은 국내 악기도매업 분야에서 최대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전이나 지금이나 세계 기타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다. 회사는 노동자들을 모두 쫓아낸 대전공장을 빈 공장으로 여전히 그 자리에 남겨뒀다. 다시 한국에서 공장을 차리지 않겠다면, 더 이상 복직을 요구하지도 않겠다는 기타노동자들의 제안을 회사는 거부했다.

함께 싸우던 해고노동자들은 10년이란 세월이 지나면서 모두 떠나고 4명만 남았다. 45명이 여전히 조합원 자격을 갖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거리에서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이들은 콜밴 멤버인 이인근 콜텍지회장과 김경봉·임재춘 조합원, 그리고 방종운 콜트지회장 이렇게 4명뿐이다. 이들은 좌절하기 보단 자신이 제작했던 악기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고, 음악을 통해 아픔과 울분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콜밴 1집에 이어 2집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과거 대표시절 콜트콜텍 노조의 활동으로 회사가 망했다는 자신의 잘못된 발언을 사과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과거 대표시절 콜트콜텍 노조의 활동으로 회사가 망했다는 자신의 잘못된 발언을 사과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10년 동안 싸워야만 했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인근 콜텍지회장은 “박 사장의 정리해고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박 사장이 대법원 판결이 나면서 지인들에게 돌린 문자메시지가 있어요. 내용이 뭐냐면, 강성노조 때문에 공장을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에요. 이를 전경련이 받아서 자기들 기관지에 글을 실었어요. 그걸 또 문화일보가 받아서 기사화 했고요. 당시 새누리당 당대표였던 김무성은 이걸 보고 당 최고회의에서 그대로 말했습니다. 우리가 싸우지 않았다면, 한국사회에서 노조는 정말 그런 단체로 인식됐을 거에요. 이의제기하고 정정보도 받아내고, 김무성에게 사과를 받아내면서 왜곡된 사회적 인식을 바로잡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부당한 정리해고로 인해 고통은 콜트콜텍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겪거나 앞으로도 겪게 될 일”이라며 “많은 시민들이 이 문제가 비단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처럼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1집 앨범은 노래 <서초동 점집>, <고공>, <주문> 외에도 방종운 콜트지회장의 시에 음을 입힌 <꿈은 있던가>와 콜밴이 부르는 가수 연영석의 <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내가 다 할 줄 아냐> 등이 수록됐다. 연영석의 노래는 콜밴이 밴드 결성 후 처음으로 연습한 노래다. 앨범은 현장에서만 판매하고 있다. 콜밴의 천막은 서울 광화문 세종로소공원에 차려져 있다. 이 지회장은 “공연이 있을 때 외에는 천막을 직접 찾아오신 분들께도 앨범을 판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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