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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스스로를 넘어서는 필사의 노력으로 빚어낸 감동
‘허클베리 핀’ 옐로우 콘서트
‘허클베리 핀’ 옐로우 콘서트ⓒ허클베리 핀

지난 12월 9일 토요일 저녁 7시 허클베리 핀의 콘서트가 열렸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 공연장 웨스트 브릿지 라이브홀이었다. 허클베리 핀이 매년 겨울마다 열어온 콘서트 'Yellow Cincert'의 13번째 공연이었다. 허클베리 핀은 2005년부터 매년 겨울이면 옐로우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연말 공연을 열어왔다.

언제부터 허클베리 핀을 좋아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히 기억이 나는 것은 2005년 한 대중음악 페스티벌 사무국에서 일하면서 무대 밖의 허클베리 핀을 처음 보았던 순간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허클베리 핀의 공연을 참 많이 보았다. 내가 기획한 공연에 허클베리 핀을 세운 적도 있고, 크고 작은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 역시 숱하게 보았다. 그 사이 허클베리 핀의 음반은 정규 음반만 다섯 장으로 늘었고, 라이브 음반까지 포함해 6장의 음반을 가진 중견 밴드로 성장했다. 한국대중음악상에도 여러 번 거명되었고, 상도 받았다.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을 선정했을 때에도 여러 장의 음반이 선정될만큼 음악성 역시 인정받았다. 정규·세션 멤버가 계속 바뀌면서도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특히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허클베리 핀은 라이브 클럽보다 거리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었을 정도로 비참해진 시대를 외면하지 않았다. 허클베리 핀은 변변한 개런티를 줄 수 없었던 거리 공연을 한 번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달려와 공연을 하고 가곤 했다.

‘허클베리 핀’ 옐로우 콘서트
‘허클베리 핀’ 옐로우 콘서트ⓒ허클베리 핀

고단한 하루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일상, ‘허클베리 핀’

그러나 다들 알고 있다시피 한국에서 음악인으로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빅히트하는 곡의 주인공이 되거나, 교수가 되거나, 전문 세션으로 활동하지 않는 뮤지션이 나이를 먹고도 음악을 계속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혼자서는 버틴다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결혼을 하고 가족을 갖게 되는 경우는 더욱 버티기 어렵다. 인디 신에서 인정받고,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는다고 해도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게다가 뮤지션은 자신의 창작력을 유지하면서 계속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고, 라이브에서 진일보한 사운드를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계속 좋은 작품을 써내는 일도, 계속 라이브에서 멋진 공연을 보여주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뮤지션의 창작력은 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육체의 나이와 정신적 피로는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인 뮤지션을 지치게 한다. 창작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이어가기 위한 고민까지 이어가야 하는 상황에서는 창작력을 지켜나가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허클베리 핀의 이기용과 멤버들이 제주도로 거처를 옮긴 것 역시 뮤지션으로 삶을 이어가기 위한 고육지책 같은 안간힘이었을 것이다.

허클베리 핀의 음악을 좋아하다보니 계속 지켜보게 되었다. 계속 지켜보다보니 더 많이 보게 된 것은 무대 위에서 멋지게 불타오르는 모습만이 아니라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예술가의 일상이었다. 인디 신의 역사가 20년을 넘어가는 사이 적지 않은 뮤지션들이 음악을 중단했고, 음악의 트렌드도 바뀌었다. 이제 더 이상 록 음악은 핫하지도 힙하지도 않다. 이제 음악을 시작하는 청춘들은 록보다는 일렉트로닉과 힙합을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고 하던 음악을 갑자기 바꾸기는 어렵다. 록 음악을 하던 뮤지션이 돌연 힙합을 할 수는 없다. 하던 음악을 계속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삶을 꾸려가며 음악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 모든 삶은 개별적이고 음악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돈이 되지 않는 음악을 계속 하는 것은 수입이나 자존심 때문만이 아니다. 음악이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쉽게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악은 완성될 수 없고 끝낼 수도 없는 영원이다. 뮤지션은 시지프스처럼 음악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때로는 음악 때문에 웃고, 음악 때문에 행복해지지만, 음악으로 인해 고통스럽다 해도 그 고통마저 감당하는 것이 음악인의 숙명 같은 삶이다.

그래서 좋은 음악을 듣기만 하는 일은 미안하고 때로 죄스럽다. 이 음악을 위해 얼마나 고뇌하고 애쓰는지 아주 조금은 알기 때문이다. 돈이 되지 않는 음악, 많은 이들이 알아주지도 않은 음악의 톤과 사운드를 위해 얼마나 많은 뮤지션들이 고뇌하고 좌절하고 애쓰고 있는지. 덕분에 팬들은 행복해지지만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저 수많은 음악 가운데 하나일 뿐인 음악을 위해 뮤지션들은 피를 말리고 잠을 설친다. 그러는 사이 그들도 나이를 먹는다. 이제는 허클베리 핀의 공연을 볼 때면 팀의 리더인 이기용의 여전히 마르고 까칠한 얼굴에 깃든 세월과 피로를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보컬 이소영을 비롯한 멤버들의 모습을 찬찬히 보지 않을 수 없다.

‘허클베리 핀’ 옐로우 콘서트
‘허클베리 핀’ 옐로우 콘서트ⓒ허클베리 핀

관록과 저력, 그 이상의 치열함이 절절하게 배어나오는 공연

이번 옐로우 콘서트 2시간의 공연을 위해 허클베리 핀의 멤버들은 세 달동안이나 매일 아침 9시 반에 모여 밤까지 연습하는 강행군을 감행했다. 그밖의 선곡을 비롯한 준비는 이미 그 전부터 시작했다. 현악 파트의 첼로와 바이올린 연주자가 3명 붙고, 관악 파트에 킹스턴 루디스카의 연주자 3명이 함께 했다. 보컬 이소영은 일렉트릭 기타와 신디사이저를 함께 연주했고, 기타리스트 성장규도 신디사이저 연주를 곁들였다. 영상작업도 병행했다. 앵콜곡까지 무대에서 연주한 곡은 총 18곡. 허클베리 핀의 음반과 공연에서 숱하게 들었던 곡들이었다. 인트로만 들어도 어떤 곡인지 알 수 있는 곡이었고, 밴드 멤버들 역시 지난 20여년동안 수도 없이 부르고 연주했을 곡들이었다. 눈 감고도 부르고 연주할 수 있을 곡들이 허다했다. 그 주요 레퍼토리들을 허클베리 핀은 모조리 공들여 바꾸고 확장했다. 록킹하면서 서정적인 곡들은 현악과 관악 파트의 협연을 통해 더욱 섬세하고 서정적으로 탈바꿈했다. 그런지와 얼터너티브에서 출발한 허클베리 핀의 음악은 거칠고 흐릿하면서 탐미적으로 아름다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그 세계의 주된 정서는 우울과 불안이다. 자신의 감정을 터트리지만 끝내 다 해소하지 못하는 갈등과 우울은 허클베리 핀의 음악을 그저 즐기는 음악이 아니라 불화와 고뇌의 음악으로 사랑하게 만들곤 했다. 허클베리 핀은 이번 공연에서 자신들의 음악적 특질은 변함없이 유지하면서도 기타 리프를 비롯한 모든 연주를 매우 꼼꼼하게 다시 만들어냈다. 거의 모든 곡의 사운드가 번번히 예상을 깨고 달라졌는데 그 변화는 단순한 시도가 아니라 더욱 농염하고 아름다워지는 끝없는 도전이었다. 한 곡 아니, 한 순간도 허투로 연주하는 순간이 없었다. 계속 공연을 보았다면 알 수 있는 사운드가 번번히 달라질 때마다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 한 곡의 변화를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연습했나 싶은 고뇌와 연습의 총량이었다.

익숙한 연주를 반복하지 않고 새롭게 변화하면서 원곡의 본질을 지키고 확장하는 일이 뮤지션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해도 그 일을 잘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이미 정해진 사운드를 바꾸면 얼마나 바꿀 수 있겠는가. 록 음악의 문법 안에서, 자신이 배워온 음악의 기술 안에서 변화를 감행하는 일은 결국 자신을 쥐어짜고 괴롭히고 몰아붙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 쉽게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일이다. 혼자서만 하는 일이 아니라 다른 멤버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가면서 해야 하는 일이다. 숱하게 시도해서 만든 사운드를 다시 연습해서 몸에 붙여야만 실제 공연에서 실수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일이다. 허클베리 핀은 이번 공연에서 그 과정을 통해 예전의 어떤 공연에서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사운드로 공연을 채웠다. 개인적으로 13년동안 모든 옐로우 콘서트를 다 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내가 본 모든 허클베리 핀의 공연 가운데 최고의 공연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감동적인 공연이었다. 모든 연주자가 제 몫을 다했고, 그 결과 우리가 알고 있던 허클베리 핀을 스스로 넘어섰다. 내년이면 20년차가 되는 밴드의 고루함이나 상투성은 찾아볼 수 없는, 오직 관록과 저력 아니 그 이상의 치열함이 절절하게 배어나오는 공연이었다. 록 음악이 낡았다고, 허클베리 핀에게 더이상 기대할 수 있는 새로움이 없다고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공연이었다.

‘허클베리 핀’ 옐로우 콘서트
‘허클베리 핀’ 옐로우 콘서트ⓒ허클베리 핀

그럼에도 그만큼 노력해서 만든 공연을 보는 이들은 겨우 150여명 밖에 되지 않았다.모든 공연에 관객들이 많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2시간의 공연, 200여명의 관객을 위해 한 달 넘게 준비해야 하는 뮤지션의 숙명 앞에서 탄식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딱히 수익이 많이 남지도 않았다. 공연장의 소리와 빛과 영상은 기억 속에 남았으나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공연장에 있던 이들은 오래오래 기억할 수밖에 없는 최고의 공연이었지만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지도 않았다. 그날 세상에서 선보인 수많은 공연 가운데 하나였을 따름이다. 분명 그날 세상에는 허클베리 핀의 공연만이 아니라 또 다른 어떤 공연도 이렇게 자신들의 음악적 역량을 쏟아부어 관객들을 감동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알아주는 이는 별로 없는 일, 누군가는 겨우라거나 고작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생을 거는 사람들이 바로 뮤지션들이다. 다행히 그 공연장에 있는 허클베리 핀의 팬들은 그 모든 소리에 깃든 수고와 고통을 모르지 않았고, 그 덕분에 서로가 서로에게 한없이 고마웠다. 허클베리 핀의 공연을 함께 보는 이들이 달라졌고, 무대 위의 연주자들과 관객들도 바뀌었지만 허클베리 핀은 여전히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그래서 들을 수 있고, 감동할 수 있었다. 음악은 결국 뮤지션이 만드는 것, 우리는 그 음악과 함께 생을 완성하고 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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