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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창욱 칼럼] 나의 국가보안법 무죄 투쟁기

주문.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원심(항소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를 들어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아, 2009. 7. 14 및 2010. 1. 18 국가보안법위반(찬양.고무등)의 점을 무죄로 판단한 제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고, 나머지 각 국가보안법위반(찬양. 고무등)의 점, 일반교통방해 및 도로교통법위반의 점에 대하여 이를 유죄로 판단한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였다.

원심 판결 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고,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국가보안법위반(찬양, 고무등)죄, 일반교통방해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단한다.

대법원 판결서다. A4 용지 딱 절반 분량이다. 무려 3만 쪽에 달하는 재판서류더미에 비하면, 참으로 간단한 내용이다. 이 판결을 얻기 위하여 햇수로 6년을 견뎠다.

평범한 아침 득달같이 달려든 보안수사대
플로피 디스크 5장만 달랑 압수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평통사 지시 아니냐” 묻기도

2012년 9월 20일 아침 7시경, 집을 나서려고 아파트 현관문을 열었다. 그 순간 벽에 최대한 몸을 붙이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그 사람은 득달같이 현관문을 밀치고 들어와서는 압수영장을 내밀었다. 보안수사대였다. 그리고는 우르르 닥친 일당들이 순식간에 집안을 점령했다. 집안, 복도, 바깥에 있는 인원이 족히 삼십 명은 넘었다. 그들은 집뿐만 아니라 내 핸드폰, 또 어린이집 운행에 쓰는 노란승합차까지 뒤졌다. 그들은 내 폰을 복사하고 대학원 다닐 때 쓰던 구닥다리 노트북을 뒤졌다. 그리고 무슨 대단한 증거물이라도 되듯이, 그때는 이미 단종돼서 쓰지도 않는 3.5플로피 디스켓 5장을 압수해 갔다. 보안수사대도 무안했을 것이다. 압수물을 담아가려고 잔뜩 들고 온 수십 개 박스를 빈손으로 들고나가는 꼴이란. 태산명동에 서일필이었다. 그 후 알았다. 압수수색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대상자를 미행하면서 동선을 파악하고 준비를 마친 후에 친다는 것을. 즉 압수수색은 그전까지는 암암리에 해 오던 수사를 공식화하는 첫 단계이다.

백창욱 목사
백창욱 목사ⓒ페이스북

그리고 10월부터 11월까지 앞산 앞에 있는 보안수사대로 가서 꼬박 다섯 차례 조사를 받았다. 그들은 내가 대구에 내려온 동기부터 시작해서 날짜순으로 활동한 내용에 대해 샅샅이 캐물었다. 하루종일 질문과 묵비만 오가는 지루한 공방이었다. 보안수사대 조사 중 압권은 마지막 질문이었다. 이 사건의 내용과 공안의 시각이 모두 담겨 있어서, 길지만 옮긴다.

“피의자와 소속단체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는 북한이 신년공동사설을,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지령을 내리면 북한 주장을 여과없이 받아들여, 한반도 통일을 위해 주한미군철수, 평화협정실현,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며, 대구지역 종북좌파 인사들을 규합하여 대구 평통사를 건설, 상임대표로 활동하고 있고, 피의자는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나, 대구 평통사를 건설하라는 평통사의 지시를 하나님의 계시라고 거짓말로 자신을 미화하는 것은, 피의자를 잘 모르는 대구시민들을 기만하는 행위이고, 자신을 합리화, 정당화하는 거짓말은 양의 탈을 쓴 이리와 무엇이 다른가요?

피의자는 목사신분을 이용하여 피의자와 평통사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투쟁의식을 버리고 진정 회개하고 지금이라도 널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사회빈민층 약자의 아픔을 대신하는 목사로서 본분 다하는 참다운 목회자로서의 길을 갈 생각이 없는가요?”

나치의 선전장관인 괴벨스 식으로 사실과 허위를 교묘하게 섞은 저열한 질문이었다. 이런 더러운 질문에 시달리며 보안수사대 조사를 마쳤다. 그 후 똑같은 조사를 2013년 4월, 검찰에서 두 차례 받았다. 검사 조사는 그냥 기소로 가는 요식절차였다. 공안사건은 특히 그렇다.

“공안검사 놈들이 이겼다고 득의양양할 것을 생각하니 그냥 둘 수가 없었다”
항소에 대법원까지 6년간 법정 투쟁 끝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무죄’

그리고 2014년 2월에 첫 재판이 열렸다. 처음에는 국가보안법 혐의만 가지고 재판했다. 그러다가, 2014년 7월 21일, 한국전력(한전)이 경찰을 앞세워서 경북 청도 삼평리를 침탈하여 초고압송전탑 공사를 벌인 까닭에, 건설반대투쟁으로 생긴 여러 혐의(무려 7건이다)가 병합돼서 재판이 길어졌다. 하지만 2016년 3월에 끝난 15차례 공판동안, 검사는 국가보안법에만 올인했다. 재판과정에서도 수차례 의견서를 내면서 내 혐의를 보강했다. 단적인 예가 2016년 2월 26일, 오후 2시에 열린 14차 공판이다. 3시경에 시작한 검사심문이 밤 11시 넘어서 끝났다. 이 긴 시간동안 검사는 삼평리 건은 제쳐두고 오직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만 물고 늘어졌다. 피고와 평통사에 대한 국보법 기소가 공안기획이라는 증명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검사의 이 집요한 기소장난이 먹혔다. 두 차례 선고연기를 거쳐서 2016년 10월 28일 행한 일심선고는 모조리 유죄였다.

피고인은 국가보안법위반(찬양.고무)죄,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죄, 일반교통방해죄, 도로교통법위반죄, 상해죄, 각 업무방해죄,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상해)죄에 대하여 징역 1년 6월 및 자격정지 2년에, 건조물침입죄에 대하여 벌금 이백만원에 처한다. 다만, 3년간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일심판결내용이다. 기분이 더러웠던 것은 판사가 선심쓰듯이, 두 차례 중앙운영위 회의는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무슨 이런! 나는 다른 지역 평통사 재판에서 모두 무죄가 나오므로 내 국보법 재판도 무죄가 나올 것으로 낙관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이곳이 정권의 아성이고 시국재판에서는 지극히 불리한 대구인 것을 생각 못했다.

야적장 입구에서 청도대책위 백창욱 공동대표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야적장 입구에서 청도대책위 백창욱 공동대표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구자환 기자

더욱 가관이었던 건, 일심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은 검사도 항소를 한 것이다. 형이 가볍고, 판사가 무죄선고한 내용도 사실오인이므로 유죄를 선고해 달라는 것이다. 이유는 2009. 7. 14 및 2010. 1. 18 중앙운영위 참석사실을 숨기기 위해 허위진술을 한 정황이 뚜렷하다고 했다. 앞날은 이사 때문에, 뒷날은 장인장모 두 분이 동시에 암투병중인 때라, 병원에 모시고 다니고 치료에 경황이 없을 때였다. 그런데 검사는 이 따위 말을 하는 것이다. 정말 공안검사 놈들의 비인간성에 할 말을 잃었다. 나는 2000년부터 생활일지를 쓰고 있다. 하루를 반성하고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는 마음가짐이다. 그래서 어느 날 무슨 일을 했고 어느 곳에 갔고 어떤 책을 읽었고 하루일과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거의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사실관계 차원에서 그 날은 회의참석하지 않았다고 여러 번 말해 주었는데, 내 말은 무시하고, 저런 저열한 주장으로 나를 매도하고 항소를 한 것이다.

또 하나. 공안검사의 수준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밤 11시까지 물고 늘어지던 그 날이다. 그전에 대구교도소에 수감 중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간부를 면회한 일이 있다. 그 소감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검사는 내 페이스북 글을 심문재료로 썼다. 요지는 이적단체인 범민련 간부를 면회한 피고도 이적성이 있다는 거다. 이런 걸 심문이라고 한다. 어떡하든 재판에서 이기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거지로 하는 검사가 딱했다.

일심선고를 접했을 때는 만사가 귀찮아서 그냥 항소를 포기하고 지긋지긋한 재판을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공안검사 놈들이 이겼다고 득의양양할 것을 생각하니 도저히 그냥 둘 수가 없었다. 또 국가보안법으로 장난치는 공안에게 계속해서 정당성을 부여하는 구실을 줄 수 없었다. 수만쪽 재판서류에 파묻히는 일이 끔찍했지만, 다시 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 결과 항소심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예를 들면, 일심판사가 대학특강에서 극히 일부 학생이 부정적인 소감을 낸 것을 내가 북한에 동조했다는 근거로 인용하였기에, 70여 명이 쓴 소감문을 일일이 읽고 긍정·부정·중립을 분석하여 증거자료로 냈다. 물론 긍정소감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무죄증명을 열심히 했고, 또 항소심 과정 중에, 평통사 오혜란 씨의 대법원 무죄확정판결이 났다. 사실상 게임이 끝난 것이다. 그 결과 2017년 8월 11일, 항소심 선고에서 국가보안법 무죄판결을 받았다.(삼평리 건은 그대로 유죄 나왔고, 상고하지 않았다.) 검사가 국가보안법에 대해 상고했지만 12월 5일에 대법원에서 무죄확정판결이 났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회원들이 국가보안법 제정일인 12월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보안법 폐지와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회원들이 국가보안법 제정일인 12월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보안법 폐지와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남용 못하도록 국보법 없애야

국가보안법 재판에서 핵심쟁점은 이렇다. 공안검사는 피고가 기자회견, 집회, 기고, 강연 등의 활동이 국가의 존립,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북한을 찬양·고무·선전·선동·동조했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그러나 무죄판결을 한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주장하는 내용이 북한의 주장을 추종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그 주장 자체로는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없으며 피고인의 행동에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법원의 무죄판결로 짐을 벗었지만 이런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공안검사가 정권보위차원에서 국가보안법으로 시민을 막무가내로 괴롭힌다. 21세기 대명천지 민주공화국이라는 나라에서 말이다. 바로 이렇게 정권이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이 국가보안법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이 법을 없애는 게 우리의 과제이다.

마지막으로 국가보안법이 왜 나쁜가? 국가보안법은 양심을 침해한다. 양심은 사람의 지성소이다. 누구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고귀한 영역이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사람의 지성소를 막무가내로 침탈하고 괴롭힌다. 추궁한다. 너는 왜 그런 양심을 가졌냐고. 그러면 할 수 없이 변명해야 한다. 내 양심은 죄가 없다고. 이런 과정 하나하나가 사람을 구차하게 만든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출판, 집회결사의 자유, 이런 게 다 소용없도록 한다. 분단시대를 악용하는 가장 못 쓸 적폐이다. 촛불로 바뀐 문재인정권도 국가보안법의 반헌법성을 잘 알 것이다. 반드시 이 법을 철폐하기를 바란다.

무죄판결이 나오기까지 한 마음으로 도와주신 평통사와 법무법인 향법의 권정호, 남성욱 두 변호사님들께 감사드린다.

백창욱 대구새민족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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