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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 “정치사상을 알고 보는 세상, 모르고 보는 세상이 달라요”

많은 사람이 새로운 길을 모색합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던, 우연한 기회가 주어졌든 도전은 가슴 뛰는 일입니다. 민중의소리 평생교육원 ‘이산아카데미’는 새로운 직업의 길을 개척한 ‘꾼’들을 찾아 그들의 밥벌이와 가치를 묻습니다. 동영상 강좌가 깊이 있는 인문학적 지식을 전한다면, 페이퍼 특강에선 독자에게 정보와 영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전할 계획입니다. 직업의 세계에선 때론 구체적인 기술보다 좋은 관점이 필요하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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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2017년 장미 대선. 대한민국은 최근 2년 사이에 놀라운 정치 격변을 경험했다. 전국의 수많은 국민들이 대통령 탄핵을 바라며 촛불을 들 때, 일부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정견이 다른 국민들이 직접 거리로 나와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희귀한 장면이 벌어진 것이다.

전 세계 언론들은 대규모 집회시위를 열면서도 유혈 사태 없이 자신의 의견을 뚜렷이 한 한국 국민에 각별한 관심을 보냈다. 촛불 시민들은 지난 5일, 권위 있는 인권상인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에버트 인권상’을 받기도 했다.

이런 시민들 곁에서 함께 정치사상을 이야기하고 세상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싶다는 정치철학자가 있다. 스스로를 ‘거리의 정치철학자’로 부르는 사람. 정치학자 김만권을 만나봤다.

거리의 정치철학자 김만권 박사
거리의 정치철학자 김만권 박사ⓒ사진 = 오마이뉴스

햇빛 좋은 초겨울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동 한 카페에서 마주앉은 그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연세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미국 뉴스쿨 대학에서 정치이론과 법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정치에 반하다』, 『호모 저스티스』, 『자유주의에 관한 짧은 에세이들』,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등 책을 썼고요. 지금은 여러 대학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종종 시민들을 만나는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김만권을 만나기 전, 최근 발간된 저서 『정치에 반하다』를 읽어보았다. 저자 소개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청소년기의 꿈이 ‘시인’ 이었고, 정치학을 전공하던 시인을 흠모해 정치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쓰여 있었다. 그 시인은 누구였고, 실제로 정치학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조금 더 들어보았다.

“(웃으며) 하하하……. 그 사람은 기형도 시인이고요. 재수하던 시절에 기형도 시인의 ‘대학시절’이라는 시를 읽었어요. ‘친구들이 은백양의 숲을 지나갈 때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담담하게 공동체의 일부가 되지 못하는 절망감과 소외감을 표현해낸 구절이죠. 당시에 어린 마음에 그 시가 너무 멋졌어요. 외로이 플라톤을 읽는 젊은이의 고독과 외로움이 느껴졌어요. 이 시인이 어디서 뭘 공부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정치학을 공부했다는 걸 알게 돼서 거길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스스로를 왜 ‘거리의 정치철학자’라고 부르는 지도 물어봤다.

“처음 공부할 때부터 제 목표는 ‘정치철학의 대중화’였어요. 유학 갈 때부터 돌아오면 시민 교육을 하겠다는 포부가 있었죠. 그것의 다른 표현이에요. 정치철학이 어렵다고들 하시죠.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쉽게 써보려고 하고 있어요. 시민들이 읽기 편한 정치교양서를 쓰고 있죠. 정치학자들 중에 좋은 논문을 쓸 사람, 쓰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만 대중서를 쓰는 사람들은 제한적이든요. 또 철학자들 중에 정치 철학자는 있지만 그분들 중에 정치철학 대중서를 쓰시는 분들이 없더라고요”

책 ‘김만권의 정치에 반하다’
책 ‘김만권의 정치에 반하다’ⓒ기타

그럼 최근에 『정치에 반하다』를 펴낸 것도 그런 맥락일까.

“제가 쓴 『자유주의에 관한 짧은 에세이들』은 자유주의에 대해서 설명체로 풀어쓴 것이고,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은 근현대 정치사상가 40여명이 만든 주요 개념을 그림을 곁들여 정리한 것이죠. 『정치에 반하다』는 그보다, 이전에 쓴 책들 중에 가장 쉬운 책이에요. 실제 강의했던 내용을 정리해서 담았거든요”

“앞으로 더 쉬워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치철학이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 시대,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의 평범한 고민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들을 담은 거거든요. 시민들이 용어도 어렵고, 설명도 어려워서 괴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시는 것 같아서 저는 쉽게 풀어서 전달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시민들을 만나 강의해보면 어떨까.

“사실 저도 시민이잖아요. 강의를 가면 제가 일방적으로 뭘 전달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강의 들으시는 분들의 반응으로부터 많이 배워요. 최근에 세계화와 지구화에 대한 강의를 하러 갔었는데, 강의 내용이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 현실의 일들과 관련지어 설명해주니까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왜 젊은이들이 직업을 구하지 못하는가’, ‘왜 남성 정규직은 사라지고 여성 비정규직은 늘어갈까’ 이런 질문들과 연결 지어서 설명해드렸거든요. 그랬더니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를 알았다’며 좋아하시더니, 관련해 실제 있었던 일을 말씀해주시면서 저랑 피드백을 해주셨죠. 저는 그런 자리에서 현장의 이야기를 알게 됩니다. 그걸 바탕으로 제가 아는 이론을 현장감 있게 재구성합니다. 이론들 중에 비어있는 부분도 찾고 그것을 메꾸기 위해 노력도 하죠”

그렇다면, 왜 시민들은 정치사상을, 정치철학을 알아야 할까?

“개념적으로 세상을 본다는 게 어려운 일이죠. 그렇지만 이 세상은 어떤 방식으로든 움직이는 틀이 있어요. 이 틀을 알고 세상을 보는 것과 모른 채 보는 것은 전혀 다르죠. 우리가 틀을 모른 채 보면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됩니다. 틀을 알게 되면 좀 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대응할 수 있죠”

“또 틀을 이해하면 구조적으로 잘못된 점, 우리 사회의 폐해를 만드는 ‘부정의’들이 보여요. 그래서 틀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고요. 그렇게 되면 어떤 문제들을 해결할 때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방식으로 하려고 하죠”

“사회 문제를 풀어가려면, 우리는 알게 된 틀을 통해 요구해야 합니다. 어떤 정치인도 요구하지 않는 것에 반응하거나 먼저 챙겨주지 않아요.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죠. 그런 사람들이 투표를 하니까요. 틀을 알게 되면 정치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룰(Rule)을 시민들 스스로 써야 한다는 거죠. 시민들이 고통 받는 지점을 엘리트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해결하는 룰을 만들라고 해도 못해요. 버스비, 지하철비 모르는 엘리트들은 사회 약자들이 받는 복지서비스에 대해 모르죠. 노인 분들 버스비가 아까워서 몇 정거장씩 걸어 다니시잖아요? 그 이유를 아는 사람들이 룰을 써야 실제로 세상이 달라지죠”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첫 주말인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주최로 열린 20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에서 탄핵 인용을 축하하는 폭죽이 터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첫 주말인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주최로 열린 20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에서 탄핵 인용을 축하하는 폭죽이 터지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2017년엔 정권이 교체되고 사회적으로 적잖은 변화들이 있었다. 여전히 국민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의 적폐들이 말끔히 청산되기를 바라고 있다. 한편으로 노동, 환경,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 변화의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치철학적 측면에서 생각해 볼만한 점이 있을까.

“‘정의’를 두고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정의는 두 개의 트랙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나눌 것인가’와 관련된 분배의 트랙,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와 관련된 인정의 트랙. 문재인 정부는 기본적으로 분배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 같고, 인정 트랙과 관련된 것 중엔 ‘과거사’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과거사 문제인 5.18, 위안부 문제 등.”

“현재 심각한데 문재인 정부가 손쓰고 있지 못한 것은 젠더와 소수자 문제죠. 이 두 가지 문제에 반응 못하는 것은 아직 우리 민주주의가 세련되지 못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더 큰 문제들부터 해결하고 다음이 당신들’이라고 하는 건데, 당사자들은 절박하죠. 저는 문재인 정부가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 주지 못하고 있어서 아쉽네요. 현재 문제점을 알고 있고 체계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이야기 해주면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을 텐데요”

“저는 소수자 문제가 ‘어떻게 대표할 것인가’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대표한다’는 틀 자체가 당사자들을 배제시키고 있거든요. 현재 대표에서 젠더나 소수자들이 배제당하고 있는 거죠. 대표의 틀을 정의롭게 짜는데 집중해야 할 겁니다. 부정의의 당사자인 그 분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틀에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틀을 짜는 일 자체에 당사자들이 들어와서 존재감을 내보일 수 있는 협의체 같은 것이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문제, 인정, 대표의 문제, 이 세 개의 틀을 잘 엮어내는 것에 문재인 정부의 성패가 달렸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이 세 가지를 다 하느냐고 하지만, 이 세 가지는 다 얽혀 있거든요. 하나의 틀을 먼저 해결한다고 해서 나머지가 풀리지 않거든요. 기본적으로는 세 개의 틀을 동시에 가져갈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하지 않나 합니다”

정치학자 김만권.
정치학자 김만권.ⓒ민중의소리

근간 『정치에 반하다』에는 세월호 사건과 국가의 의무, 헌법재판소 판결문을 연결 지어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국민들은 ‘나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워갔고, ‘국가수반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대통령’을 탄핵했다. 새 정부 하에서 시민들은 국가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

“‘사회계약론’에서부터 이 문제를 돌이켜 생각해볼 수 있죠. 우리가 국가공동체에 속하며 우리의 자유를 포기하는 이유는, 국가로부터 보호를 얻기 위한 겁니다. 국가가 탄생, 유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건데, 그게 안 됐던 거죠. 아주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지금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들은 전 지구적으로 발생합니다. 그래서 이 수많은 문제들을 막아주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국가들이 ‘니 인생은 니가 책임져라’는 논리로 자신들의 의무를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어요. ‘신자유주의’가 그런 건데,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동시에 유행했었죠, 국가가 가진 보호의 기능, 의료, 교육 등을 다 민영화 하는 거죠”

“시민권 중에는 ‘사회적 시민권’이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시민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보호받을 권리죠. 근데 이것이 지금 시장에서 ‘상품’으로 팔리고 있어요. 우리가 이것을 되찾길 원한다면 국가를 리콜(recall)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빼앗긴 권리를 되찾는 건 복지국가의 시민으로서 당연한 것이고요. 지금 난관은 우리가 복지국가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거죠. 그 혜택의 효과를 아는 사람들이 없다보니 이야기를 잘 못하는 거죠. 보호의 벽이 제대로 작동하면 사회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그 경험을 함께 하고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민들과 함께 정치철학을 나누고 싶은 김만권은 2017년 12월 ‘일주일에 끝내는 정치사상’이라는 이름의 동영상 강의를 이산아카데미에 오픈한다. 총 6부 31개 강의를 통해 근현대의 주요 정치철학자 21명의 정치사상을 쉽고 친숙하게 소개한다. 저서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과 『정치에 반하다』과 함께 보면 편안하게 정치철학에 접근할 수 있다.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광장의 경고! 촛불 민심을 들어라 23차 범국민행동의 날에서 대학생들이 발언하고 있다.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광장의 경고! 촛불 민심을 들어라 23차 범국민행동의 날에서 대학생들이 발언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김만권 정치철학자는 ‘청년 세대’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함께 공부하고 실천하며 미래를 풀어나갔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 사회 50대 이상들이 자신들을 겪지 않았던 경쟁의 룰을 어린세대에게 적용하고 있죠.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는 것’, ‘경쟁이 최상의 미덕’이라고 생각하게 했어요. 그러면서 일자리도 없고, 훨씬 제한된 기회를 줬고요. 대학 안에서도 보면 ‘상대평가’로 구성원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하게 해 놨는데요. 심지어 재수강 최고 학점 제한, 강의 인원수 제한으로 두 번째 재도전의 기회마저 제한하고 있어요. 이렇게 얻은 졸업장은 학자금 융자랑 맞바꾼 거고, 결국 청년들은 빚더미 속에서 살고 있는게 현실이죠”

“그래서 청년들이 당사자로 들어와 사회의 룰을 쓰게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최소한 공감하려고 하고 있어요. 같이 옆에 있어주고 싶고요. 그들이 무엇인가 할 때 나도 같이 움직여주려고 합니다. 그들이 움직이는 이유를 만들어주고 싶네요. 혹은 ‘내가 이유를 제시해줬으니 같이 움직이자’고 하고 싶고요”

“청년들도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벌어지는 이 사태가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니거든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그 책임은 앞 세대들에게 있는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절망에 빠지거나 허무에 빠지지 말아주세요. 이 문제는 당당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함께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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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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