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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노력에도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노력에도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훌륭한 인간이라면, 그일 말고 도대체 할 일이 무엇이 있는가?"


참으로 묘한 명제다.
이것처럼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세계관을 잘 드러낸 말도 드물 것이다. 전편(니체➀)에서 다루었듯, 니체는 기독교와 플라톤 철학이 육체를 영혼보다, 본능과 열정이 이성보다 열등한 것으로 여기도록 만든다며 ‘신은 죽었다’고 했다.


니체는 다시 묻는다. ‘인간은 과연 신이 사라진 세계를 감당할 수 있는가?’


“신은 죽은 채로 남아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
그러나 그의 그림자는 여전히 어둠 속에 드리워져 있다.
모든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편히 할 수 있을까?
이 세계가 지녔던 것 중 가장 신성하고 강력한 것이
우리의 칼 아래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
누가 이제 우리에게 묻은 이 피를 닦아줄 것인가?
그 어떤 물로 우리를 씻어낼 수 있단 말인가.

-『즐거운 학문 Die fröhiliche Wissenschaft』


중세의 신이 죽어 근대로 넘어와 인간의 시대가 왔을 때, 인간은 과연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니체는 인간 대다수는 그럴 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인간은 세상과 역사의 악보 속 ‘음표’가 되길 갈구하지만, 대부분의 ‘쉼표’로 끝을 낸다고 했다. 니체에게 쉼표란 자신의 삶과 사회에 책임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대중을 의미했다.


니체 철학에서 ‘초인 (위버멘쉬 Ubermensch)'은 이렇게 등장한다. 초인이란 기존의 거짓된 세계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선지자다. 니체는 초인의 상징으로 그 유명한 ’차라투스트라 (Zarathustra)‘를 만들어 자신의 글에 등장시킨다.


사람들에게 진리를 외치며 각성을 촉구했던 차라투스트라에게 돌아온 것은 멸시와 조롱 밖에 없었다. 속세의 인간들에게 질려버린 차라투스트라가 산 위의 바위에서 시대를 껴안고 펑펑 울며 괴로워하고 있을 때 그를 위로해 준 것은 산짐승들 뿐이었다. 차라투스트라가 초인에게 주어진 숙명을 받아들이고 다시 세상 사람들에게 나아가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나의 고통과 나의 연민,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나는 행복을 열망하고 있는가? 나는 나의 할 일을 열망하고 있을 뿐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성숙해졌다. 나의 때가 온 것이다. 이것은 나의 아침이다. 나의 낮이 시작된다. 솟아올라라, 솟아올라라, 너 위대한 정오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그의 동굴을 떠났다. 컴컴한 산 뒤에서 솟아오르는 아침 태양처럼 불타는 모습으로 늠름하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Also sprach Zarathustra』


니체는 세상을 바꾸려는 비범한 초인, 지식인에게 이렇게 요구한다.
대가를 바라지 마라. 그곳에 들어가 그 일을 수행하라. 그 사람이 고귀하다. 세상이 옳다고 말하는 것과 내가 믿는 것의 간극, 이 간극이 커질수록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지식인의 임무는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것이 현실에서 작동되게 만드는 일. 이것이 바로 지식인의 임무다.


바윗덩이를 온몸으로 밀어 올려 정상 부근에 이르면 다시 굴러 떨어진 바위를 끝없이 밀어 올려야 했던 시지프스의 형벌을 모두 알 것이다. 하늘의 끝도, 시간의 흐름도 없는 공간에서의 형벌이다. 까뮈는 이를 두고 ‘무용하고 희망 없는 끝없는 노동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절망케 할 것이라는 신의 해석이 어쩌면 맞았다’고 했다. 니체의 입장에서 보면 시지프스는 고통에 겨워 울부짖는 불행한 사람이나,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그런 존재로 태어난 초인일 뿐이다. 고대부터 철학자가 진리를 말하는 순간 그는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초판본 디자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초판본 디자인ⓒ네이버 카페 thinknntalk

플라톤 철학을 전복하겠다는 니체의 철학이 다시 플라톤으로 회귀한다. 인간이 세계를 온전히 인식할 수 없고, 개변할 수 없다는 주장은 결정적 한계다. 패배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막에서 버텨 끝내 패배하지만 다만 포기하지 않은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니.


‘초인’이라는 개념은 극우파가 특히 매력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선 박정희를 시대의 고뇌를 짊어진 고독한 초인으로 그렸던 글쟁이들이 있는가하면, 유럽에선 희대의 파시스트를 곧잘 초인으로 상징하기도 했다.


독인인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실존적 고민을 접할 수 있었다. 왜냐면 1차 대전 이후 자유주의 공화국이라는 바이마르 공화국 이후 히틀러가 등장했고, 두 번의 세계 대전 주범이 바로 독일이었기 때문이다. 종교 중심의 중세적 가치관이 붕괴했지만, 인류가 선택한 것은 전쟁과 살육이었다. 신이 사라진 시대, 인간은 과연 자신의 세계를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니체가 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이기도 했다.

이 기사는 김만권 강사의 ‘일주일에 끝내는 정치사상’ 중 [19강 니체] 편의 일부를 윤색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설령 기사내용의 오류가 있다면, 강연 내용을 윤색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기자의 몫입니다. 이후 [그람시 편]을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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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재 이산아카데미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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