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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최대 리스크는 사드 아닌 ‘두문불출’ 정몽구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 올해 시무식에도 불참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째다. 정 회장의 신년사는 이메일로 대체됐다.

시무식뿐 아니다. 정권교체 이후 처음 열렸던 청와대 '호프 데이',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생산 공장 방문에도 정몽구 회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세간에는 '건강 이상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현대차 측은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해명만 반복하며 문제를 키우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지난 2일 현대차그룹 시무식에 불참했다. 매년 양재동 본사 강당에서 열리는 시무식에 참석해 임직원들을 앞에 두고 1시간에 가까운 '일장연설'을 하던 정 회장의 모습은 올해도 볼 수 없었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의 불참에 대해 "그룹 내 자율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경영 방침의 변화 때문"이라는 해명을 내놨지만 2016년 국정농단 청문회 이후 1년여 동안 단 한 번도 공식 석상에 나서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2016년 12월 6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국정조사 1차 청문회 오전 질의를 마치고 국회를 나서고 있다.
2016년 12월 6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국정조사 1차 청문회 오전 질의를 마치고 국회를 나서고 있다.ⓒ제공 : 뉴시스

정 회장은 지난해 7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으로 마련된 '주요그룹 간담회'에 불참했다.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을 참석자로 통보했다가 행사 하루 전날 "고령의 정몽구 회장이 '호프 데이' 형식으로 진행되는 간담회에 참석하는 것이 무리"라며 참석자를 정의선 부회장으로 급작스럽게 변경했다.

청와대와 간담회를 협의했던 대한상의에 따르면 주요그룹 대관 담당 임원들과 가졌던 첫 회의는 7월 초순이었다. 20일 뒤에 청와대가 간담회 일정을 공식 발표했는데 이 시간을 고려하면 현대차는 약 1달가량 '장고' 끝에 명확한 해명도 없이 행사를 하루 앞두고 급작스럽게 참석자를 바꾼 셈이 됐다.

당시 간담회 참석자가 창업 2세와 3세, 전문경영인은 물론이고 오뚜기 같은 중견 기업까지 다양하게 포함되면서서 정 회장의 불참이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뒷말은 무성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지난달 중국 충칭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공장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자리에서도 정 회장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의 방문은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재계가 중국 시장에서 '사드 여파'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주장에 따라 국정 최고 책임자가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을 위로하고 격려한다는 의미를 담은 방문이었다.

중국 진출 기업을 대표해 그룹의 총 책임자인 정몽구 회장이 의전을 맡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결국 현대자동차 충칭 제5공장 정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맞은 것은 정의선 부회장과 공장 관계자들이었다.

중국을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오후(현지시각) 중국 충칭시 현대자동차 제5공장을 방문해 정의선 부회장의 영접을 받고 있다.
중국을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오후(현지시각) 중국 충칭시 현대자동차 제5공장을 방문해 정의선 부회장의 영접을 받고 있다.ⓒ제공 : 뉴시스

위기의 순간에 사라진 최고 경영자…
"건강엔 전혀 이상 없다"는 해명은 얼마나 위험한가

2017년은 현대차 스스로 인정한 "최악의 위기"였다. 내수판매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시장의 부진으로 판매실적은 2년 연속 감소했다. 2년 연속 판매 실적이 감소한 것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처음이다. 그룹은 최악의 위기를 맞았지만 '현장 경영'을 주창하던 그룹 최고 책임자 정몽구 회장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현대차 측은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공장 방문 당시 정몽구 회장이 아닌 정의선 부회장이 대표자로 의전에 나선 이유에 대해 "회장과 부회장 중 누가 더 의전에 적합한 인물인지를 선정하는 것은 그룹 고유의 경영적 판단"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정몽구 회장보다 정의선 부회장이 의전을 맡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 "경영적 판단"이라는 것인데 이는 사실상 그룹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미 정의선 부회장에게 넘어갔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실제 정의선 부회장은 매년 정몽구 회장이 도맡아 진행하던 해외법인장 회의를 2016년, 2017년 연속 주재했다. 지난해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주요 시장에 이어 베트남 인도 등 신흥국으로 '현장 경영'에 나선 것 역시 정몽구 회장이 아니라 정의선 부회장이었다.

그런데도 현대차 측은 "정몽구 회장의 건강 상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매일 양재동 본사에 출근하고 있다"는 해명을 내놨다. 현대측의 해명은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우려의 본질은 정몽구 회장이 움직이는데 불편함이 없는지, 밥을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라 현대차그룹이라는 거대 기업을 책임자는 최고 경영자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태인지 아닌지 여부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기억하는 정몽구 회장의 마지막 모습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 증인으로 나서 '동문서답'하던 모습이다.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자동차 생산 대기업 책임자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정 회장의 '횡설수설' 답변에 당시 청문 위원중 하나였던 하태경 바른정당 위원까지도 "경영 일선에서 은퇴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정 회장이 연기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소귀에 경 읽는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1938년생, 올해로 80세가 되는 정몽구 회장이 50, 60대 창업 3세들만큼 젊고 건강하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그룹이 위기의 순간에 자취를 감춘 최고 경영자가 '말귀도 못알아 듣는 수준'으로 건강이 좋지 않다면 그 자체로 기업에는 커다란 'CEO 리스크'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현대차는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사결정 구조의 불확실성에 대한 확실한 변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2015년 제네시스 신차 발표 현장에서 본 정 회장은 그저 '조금 걱정스러운 수준'이었지만 청문회에서는 더 안좋아 지지 않았느냐"며 "현대차가 문제를 숨기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리더십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2016년 4월 15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정 회장 장녀 정성이 이노션 고문의 아들 선동욱 씨와 채 부회장 딸 채수연 씨의 결혼식에서 기념촬영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16년 4월 15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정 회장 장녀 정성이 이노션 고문의 아들 선동욱 씨와 채 부회장 딸 채수연 씨의 결혼식에서 기념촬영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제공 : 뉴시스

홍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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