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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2018년에도 함께 하고 싶은 2017년의 노랫말들

노래 가사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노래는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체이고, 의미는 노랫말에 담긴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반만 맞는 말이다. 노래의 의미가 노랫말에만 담기지는 않는다. 사실 노랫말은 멜로디와 리듬이 없으면 산문이나 시와 다를 바 없다. 말 혹은 글에 멜로디와 리듬이 붙고, 사운드가 구성되어 보컬을 통해 발현될 때 비로소 노래가 된다. 노랫말만으로는 힘이 없다. 그럼에도 노랫말은 음과 리듬이 드러낸 정서와 생각을 보다 명확하게 서사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음과 리듬만으로도 음악에 담긴 정서를 감지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노래에 담긴 서사를 정확하게 감지하지 못할 수 있다. 문자 언어가 가진 장점이 여기에서 빛을 발한다. 노랫말이 없는 노래는 따라 부르기도 어렵다. 노래는 듣기만 하는데서 끝나지 않고 함께 부름으로써 순간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음악의 역사에는 빛나는 노랫말들이 있다. 여기서 그 빛나는 노랫말들을 모두 호명하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지난 해 발표된 노래들 가운데 앙금처럼 가라앉은 노랫말들을 복기해본다. 좋은 노래였고, 좋은 노랫말이 있어 더 좋았던 노래들.

강태구 정규 1집 ‘Bleu’
강태구 정규 1집 ‘Bleu’ⓒ강태구

강태구의 명반 [Bleu]의 수록곡 <둘>은 사랑하는 두 사람의 일상에 깃든 행복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그다지 다를 것 없는 생활일지라도 소중해지고 아름다워지는 것은 그 생활을 함께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너는 나의 전부는 아니지만/니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어/너는 내 삶의 이유는 아니지만/니가 없는 삶은 있을 수 없어”라는 노랫말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얽메이거나 구속하지 않음에도 애틋하리만큼 소중한 마음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사랑은 결국 상대가 있음으로 내가 살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사랑은 네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간절함이다. 물론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안정된 사랑을 할 수 있지만 우리는 모두 결핍이 있고, 그 결핍을 채워주면서 아니 드러내면서 우리는 사랑에 이른다. 사랑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므로써 비루한 자신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드문 기회이다. 강태구는 그렇게 연약한 존재인 사람이 행하는 가장 놀랍고 아름다운 일 사랑을 노래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세상에 사랑만 있던가. 대통령이 바뀌었어도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하고 누군가의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 예람, 이형주, 황경하를 비롯한 일군의 뮤지션들이 내놓은 [새 민중음악 선곡집]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다. 민중음악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1980년대의 노래만을 떠올리는데 노래가 세상을 외면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민중이 사라진 적도 없다. 소셜미디어와 트렌디한 방송 프로그램에 안 나올 뿐이다. 한 달에 200만원도 못 버는 이들이 수두룩한 세상. 사람들은 수도권으로만 몰려가고, 청년들은 졸업을 하고도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는 세상. 날마다 일하다 죽고, 스스로 세상을 저버리는 나라에서 자신만은 폼 나는 소비자나 네티즌이라고 생각한다 해도 기실 민중이라는 사실이 바뀌지 않는다. 민중이 스스로 민중임을 부정하게 되고, 민중이 민중을 외면하게 된 것이 지난 1987년 이후 30년, 특히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20년 동안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그러므로 민중은 옛날 이야기가 아니고, 민중가요 역시 옛날 노래가 아니다. 민중은 고개를 돌리지 말고 응시해야 할 우리 자신이며, 민중가요는 바로 우리 자신의 노래이다.

새 민중음악 선곡집
새 민중음악 선곡집ⓒ새 민중음악 선곡집

[새 민중음악 선곡집 1]에서 예람이 부른 <나가주오>와 오재환이 부른 <그래도>는 촛불로 우리가 승리했다고 믿었음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성주에 깃든 폭력과 상처를 담담하게 노래한다. 적지 않은 이들이 민중가요는 강요하고 선언한다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노래가 훨씬 많았듯 이 노래들 역시 묵묵히 기록함으로써 제 역할을 다한다.

나는 이곳 말고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아
한참동안 기억을 더듬고 나면
몇 년을 살았는지 대강 셀 수 있지만
벽을 더듬지 않아도 불은 켤 수 있어

나는 너의 얼굴을 본 적 없고
이름도 알질 못해
고향이 어디냐 물으며 인사를 했지만
너는 작은 글씨로 가득 찬
번쩍거리는 종이를 내밀며
이 집은 원래 나의 것인데
내가 누군지는 너랑 상관이 없다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지붕 아래서 난
그래도 이게 나의 집이라고
그래도 이게 나의 집이라고

너가 했던 말들은 잘 기억이 나질 않아
매일같이 다니던 동네 길목을
왜 오도가도 못하도록 막고 섰냐 물었더니
'여러분은 현재 집회와 시위...'
뭐 그런 대답을 했어.

너는 얼굴을 전부 가려놓고
이름도 말해주질 않고
꼼짝할 수 없도록 둘러싸고는
내가 전에 들어본 적 없는
쿵쾅거리는 소리를 내며
이곳은 사실 나라의 땅인데
어느 나란지는 너랑 상관이 없다고

금방이라도 밀려올 것 같은
길 위에 서서 난
그래도 이게 나의 땅이라고
그래도 이게 나의 땅이라고
-오재환(Feat 예람) <그래도>

어떤 상황인지, 어떤 심정인지 분명하게 보이는 노래다. “이곳은 사실 나라의 땅인데/어느 나란지는 너랑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군인과 경찰들이 여전한 나라. 그 나라의 민중으로 사는 일은 얼마나 고단하고 참혹한가. 그리고 <나가주오>라는 제법 강한 톤으로 말하는 듯 하는 예람의 노래 역시 “갈 곳도 그 웃음도 더 이상 사라진/하늘에는 답이 없어 하늘에는 말이 없어”라는 절망뿐이다. 우리가 지켜봐야 할 것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도 닦아주지 못한 이들의 눈물이다. 자기 땅에서 유배당하고 외면당한 이들이다. 이들에게 너무나 쉽게 기다리라 말하는 우리 자신의 무심함과 뻔뻔함이다.

반면 밴드 언니네 이발관은 자신들의 마지막 작품이 된 음반 [홀로 있는 사람들]에서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외로움과 상실감을 처절하리만큼 핍진하게 드러낸다. 피 흘리는 듯한 자책과 후회의 기록인 음반은 어느 곡을 특정하지 않아도 좋을만큼 모든 곡이 일관되게 아프게 한다. 그만큼 이 음반은 포즈로서의 고통을 넘어서는 진실이 있다.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세상에는 진정성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노랫말이 있다. 아티스트 본인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따져보지 않아도 좋을 노랫말은 사적인 내면을 파고 들어감으로써 더 보편적인 공감에 이른다.
우울과 모멸이 사라지지 않는 세상에는 위로가 필요하다.

디어 클라우드
디어 클라우드ⓒ안산M밸리록페스티벌

밴드 디어 클라우드가 내놓은 새 음반 [My Dear, My Lover]의 수록곡 <네 곁에 있어>는 지금 홀로 아픈 이에게 보내는 간절한 위로다. 지금 힘겨운 이에게 닿고자 하는 애타는 마음이다. “네가 아파하지 않길 기도해/단지 네가 행복하기를 바래/부디 어둠 속에 혼자이려 하지 마/너를 괴롭히지 마 널 괴롭히지 마/제발”이라는 노랫말은 함부로 던지는 충고나 조언이 아니다. 먼저 그 고통을 경험했거나 그 고통에 절절하게 공감하지 못하면 말할 수 없는 목소리이다. 자신을 괴롭히지 말기를, 내가 곁에 있을 것임을 노래하는 곡은 조언의 올바름보다 상대의 고통에 육박하려는 화자의 마음으로 힘을 전하는 노래이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있는지.

올해에도 분명 좋은 노래들이 쏟아지겠지만 이 노래들은 가끔씩 꺼내 봐도 좋을 노래들이다. 물론 이 노래만이 힘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노래로든 위로 받고 자신을 응시하고 세상을 외면하지 않는 삶을 이어갈 수 있기를. 그리하여 일 년 뒤 지난 한 해가 괜찮았다고, 우리 모두 수고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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