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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교의 인문학 교실] 유권자 연령, 제발 좀 내려주소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청소년YMCA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선거연령 18세 인하의 임시국회 통과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청소년YMCA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선거연령 18세 인하의 임시국회 통과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시스

엊그저께 어느 자리에선가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헌의 필요성을 힘주어 말했다. 국민 대다수가 이를 수긍하고 있다며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도를 추천했다. 그런데 그가 덧붙인 말이 좀 알쏭달쏭하다. 조기개헌에 성공할 확률이 51%라는 거다. 80%도, 60%도 아니고 51%라! 개헌하자는 여론이 굴뚝 같아서 나서기는 하겠으나 의회 안의 역학구도가 간단치 않아서 꼭 성사될지는 알 수 없다는 속내를 슬쩍 비친 것 아니겠는가.

여지껏은 개헌의 멍석을 깔기보다 ‘(이명박근혜의) 적폐 청산’을 최대한 밀어붙여야 할 때였다. 헌법 개정도 ‘적폐 청산’에 도움되는 것이 되려면 그저 대통령제도만 손볼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쌓인 비리와 부조리를 아울러 척결하는 갖가지 법개정 작업을 동반했어야(해야) 한다. 그런 과제의 하나로서 필자는 ‘선거권 연령 인하’ 문제를 거론하고 싶다.

필자는 이것, 그동안 해결(개정)하지 못한 것도 ‘적폐’의 하나라고 감히 못박는다. 꼭 이명박근혜만 혼을 낼 일이 아니라 의회의 모든 정당을 꾸짖어야 할 지난 시대의 적폐! 이명박근혜 시절의 야당 쪽에서야 “선거권 연령 인하가 세계적인 대세이므로 거기 따릅시다.”하고 어쩌다 말 한두 마디 꺼냈겠지만 이 문제를 치열하게 대결한 적은 없으니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선거권(을 행사할) 연령’ 문제는 “내려야 돼? 아니면 이대로 갈 거냐?”로 토론 붙을 일이 아니다. “언제 얼마만큼 내릴 거냐?”를 따져라. 그 논거는 긴 얘기를 덧붙일 것 없이, 이웃 나라들의 사정을 살피는 것만으로 족하다. 청소년들을 우리보다도 더 업수이 여기는 나라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를 비롯한 군소국가 10개 국 뿐이다. 거기만 20~21세부터 유권자 자격을 얻는다. 170개 나라가 우리보다 1년을 낮춰 18세로 정했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7개 나라는 16~17세로까지 낮췄다. 그러니 굳이 토론이 필요하다면 “18세가 적당하냐, 16세가 바람직하냐”를 따질 일이겠다.

청소년보다 어른들이 과연 더 똑똑할까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청소년들이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청소년 정당활동 권리 요구를 위한 제 정당 입당원서 제출 행진’을 시작해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향해 가고 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청소년들이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청소년 정당활동 권리 요구를 위한 제 정당 입당원서 제출 행진’을 시작해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향해 가고 있다.ⓒ임화영 기자

대관절 우리 청소년들이 뭘 얼마나 (못) 배웠길래 ‘어른됨’의 자격을 끝끝내 얻지 못했을까? 고등학교 교과서를 한번 들춰 봤다. 고등학생들은 스토아학파의 이성주의와 로마의 만민법(자연법)을 배운다. 나이 좀 잡순 어른들 가운데 스토아학파가 무슨 얘기 했는지 몇 사람이나 알고 있을까? 도덕의 원천이 이성인지 감성인지 토론해 보라는 과제도 교과서에 들어 있다. 이런 추상적인/이론적인 질문, 어른들께서는 맞닥뜨린 적 있는가? 눈먼 ‘태극기’ 집회와 온갖 ‘가짜뉴스’들을 보라. 쥐톨만큼의 도덕 관념조차 품지 않은 어른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학생들은 ‘공리주의’와 결과론적 윤리의 문제점을 살피는 공부(수행활동)도 한다. 그런데 공리주의의 화신化身, 박정희를 숭배하며 살아온 수많은 어른들은 ‘공리주의’가 왜 문제를 안고 있는지 살필 눈이 도통 없다.

이쯤 되면 야릇한 공상空想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살펴 보라’고 제시한 생각거리들을 놓고 전국민에게 시험을 떠안기는 것이 어떨까 하는 불온한(?) 공상이! 한참 발랄하게 뛰놀아야 할 청소년들에게 우리 어른들이 수십 년간 야박하게도 ‘대입大入 일제고사’의 굴레를 씌워 왔는데,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인생의 황금기를 짓눌려 살아 왔는데 그렇다면 어른들 자신도 그런 ‘일제고사’를 한번 치러야 공평한 것이 아닐까? 한 나라의 정치는 결코 장난처럼 벌일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이가 벼슬’이라고, 나이 잡순 분들한테는 ‘유권자 자격’을 거저 베풀 것이 아니라 자격시험을 (정기적으로) 개최해서 거기 통과되는 사람한테만 부여하는 게 어떠한가? 그 시험을 치른다면 낙제점 받을 어른이 지천으로 널릴 것이다. 그 시험을 통과하는 비율은 청소년들이 더 높을 게다.

교과서를 더 들여다 본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를 견주어 살피는 대목이 있다. 이것,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을 견줘서 비평할 눈을 틔워 준다. 자민족 중심주의와 건전한 애국심을 견주는 대목도 나온다. 이것, 요즘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우익 정치운동과 한국 수구보수세력의 빗나간 정치관을 성찰해낼 눈을 틔워 준다. 학생들은 존 롤스의 정의론과 옛날 옛적의 이상사회론(대동세상과 유토피아)도 간단하게나마 배운다. ‘정의로운 전쟁은 가능하냐’라는 까다로운 질문과도 맞닥뜨린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의 미래를 개척할 기본 소양은 학생들한테 (그나마) 더 있지, 87 민중(민주) 항쟁의 역사적인 성취를 시나브로 털어 먹은 기성세대한테 있지 않다.

중학생은 어떤가? 중3 사회책을 들춰 봤다. 맨앞에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성 얘기가 나온다. “부富의 사회적 환원, 변화하는 노사관계, 경제문제의 합리적 해결과 소비자 주권” 얘기가 뒤따른다. 구체적으로 ‘쌀시장 개방’을 놓고 조사해서 토론하라는 과제도 부과됐다. 환경 오염과 고령화 대응과 세계경제의 상호의존성도 언급돼 있으니 이 책으로 공부하면 우리가 알아둬야 할 세상의 문제들을 대부분 머리에 넣을 수 있다. 그렇다면 결론이 나온다. 중학교를 마친 16세 나이는 유권자 자격을 얻기에 충분하고도 넘치는 나이라는 결론이!

(‘애들이 뭘 알겠냐’라는) 여지껏 사회를 짓눌러 온 케케묵은 사회적 통념을 깨부수고 한번 떠올려 보라. 예전의 청소년들이 16세 나이에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를. 16세는 이팔二八 청춘의 절정이다. 로미오와 춘향이가 죽음마저 무릅쓴 사랑에 투신했는데 그때가 딱 16세였다. 소녀 유관순이 겨레의 선봉에 서서 독립정신을 온몸으로 구현했는데 불과 한 해를 더 살았던 17세 나이였다. 유관순은 남다른 예외 현상이 아니다. 조선땅과 만주 벌판에서 민족의 독립투쟁에 나선 사람들의 상당수가 10대 청소년이었다. 가까이 보더라도, 4.19 민주혁명의 주역이 그들 아니었던가(그때 시골 읍에서는 중학생과 초등학생이 ‘혁명을 계승하자’고 외쳤다). 그들만큼 한 사회의 주인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어디 또 있었던가? 그들 덕분에 독립국가가 들어서고 비로소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엊그저께는 팔레스타인의 소녀 아헤트 타미미가 이스라엘 군인을 주먹으로 때렸다는 구실로 붙들려 갔고 소년 피라스 타미미가 이스라엘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둘다 17세다. 썩어 문드러진 세상에 앞장서 맞서고, 그래서 이 세상을 가까스로 맑히고 밝힐 주역이 바로 이들 10대가 아니겠는가.

‘정치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반전평화실현! 촛불헌법 쟁취 범국민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사회대개혁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반전평화실현! 촛불헌법 쟁취 범국민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사회대개혁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정의철 기자

우리는 도무지 모르겠다. 청소년을 정치적으로 대접하는 이 (뒤늦은) 문제를, 수구 보수세력이 무슨 똥배짱으로 줄기차게 퇴짜 놨는지를. 21세기 들어, 세계 어느 나라든 대의(의회) 민주주의에 빨간 불이 켜져서 비틀거리고 있다는 것,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닌가. 기성 정치정당들이 제대로 역동적인 정치를 펼치지 못하니까 트럼프 같은 극우 정치인이 튀어나오거나 대중들 사이에 정치적 무관심이 더 팽배해졌다. 우리도 대통령 탄핵사건이 없었더라면 ‘정치적 무관심의 늪’이 한결 넓어졌을 터. 유권자의 연령 제한을 푸는 일은 그러한 사회적인 내리막 흐름을 돌려세울 (그나마 요긴한) 방도의 하나다. 조금이라도 사회 전체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치인이라면 청소년들을 주체화하는 문제를 가벼이 여기지 못할 것이다. 독일에서는 1990년대에 청소년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짙어지자 부랴부랴 청소년 의회를 만들었다. 프랑스는 청소년들이 입법한 것을 버젓한 법률로 수용하는 개혁실험도 했다. 민주주의를 국시國是로 받드는 나라라면 적어도 그런 개혁쯤은 꾀해야 명실상부名實相符하다.

2016~2017년의 ‘적폐 세력’은 이명박근혜였다. 하지만 ‘정치의 위기’에 대처하라는 최소한의 요구조차 여의도가 줄곧 마이동풍馬耳東風하겠다면 그때 적폐세력은 이명박근혜로 한정되지 않는다. 의회 자체가 수술 대상에 올라야 한다. 여의도의 한량閑良들한테 들이대겠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이냐? 너희끼리 해처먹는 당리당략黨利黨略의 정치에서 단 한번이라도 벗어나라!”

정은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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