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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의 철학산책] 까치가 날아오르기를, 영화 ‘1987’을 보고
영화 '1987' 메인포스터
영화 '1987' 메인포스터ⓒ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우정필름

영화 ‘1987’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SNS를 통해 올라오고 있다. 영화에 관해서라면 나는 덧붙일 말이 없다. 굳이 덧붙인다면, 다큐시네마 장르의 장점과 한계를 잘 보여준 영화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장점이라면 1987년 항쟁의 숨은 주역들을 조명한 것이라 보겠다. 영화는 카메라의 초점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때마다 사건의 주역을 따라 흐르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액션 영화처럼 박진감을 놓지 않았으니, 이는 영화의 장점이다. 감독과 배우 모두의 공이다. 한계라면 1987년이 역사를 오직 시민항쟁 위주로 구성한 것이다. 후대에 1987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 때문에 1987년 7-8월 노동자 대투쟁을 잊어버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그만두자.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영화가 아니다. 나는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시선에 관한 말하고자 한다. 영화를 관람한 사람은 알겠지만 두 층의 관객이 있었다. 하나는 청년들이다. 그들은 1987년의 역사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본다. 그 가운데 영화의 액션에 감탄하는 청년도 더러 있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관객은 1987년 항쟁에 참여했던 세대이다. 나 역시 그런 세대에 속하니 이 글은 나 자신의 시선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SNS에 관객 평을 올리는 사람들은 이 세대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이 세대의 시선은 향수에 어린 시선이다.

87년 6월항쟁 이후 벌어진 7-8월 노동자대투쟁
87년 6월항쟁 이후 벌어진 7-8월 노동자대투쟁ⓒ민중의소리

“경찰이 탁 치니 억하며 죽었다는 발표를 들으면서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나도 거기 있었지, 난 경찰의 최루탄이 떨어져 항복하는 것을 보기도 했어. 영화는 그걸 빼먹은 것 같아.”, “난 잊지 않아, .....”

이런 식의 발언 속에는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배어있다. 예를 들어 남자들이 자주 술집에서 논하는 학창 시절이나 군대 시절에 관한 향수와 같은 것 말이다.

즐거웠던 것은 어쩐 일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향수는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주로 상기한다. 하지만 그때의 고통은 어느덧 아련한 아픔으로만 기억될 뿐이며,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하는 배경 효과음의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그 심리를 설명하자면 이런 게 아닐까? “너희들은 알아? 나는 그렇게 컸어. 그 때문에 이만큼 내가 큰 거지.” 향수에는 달콤한 나르시시즘이 들어 있다.

마찬가지다. 1987년을 회상하는 발언을 보면, 어느덧 그때의 열정과 꿈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무용담에 가깝다. 그 시절 열정과 꿈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배반되었는지를 말해야 하지 않을까?

현실을 보자. 1987의 열정과 꿈은 배반되었다. 고문과 간첩 조작은 그 뒤로 사라지지 않았다. 정부의 폭력적 진압도 사라지지 않았다. 촛불 혁명이 일어난 다음에도 여전히 양심수는 감옥에 갇혀 있다. 1987년 함께 거리에 섰다는, 그 맨 앞자리에 섰다는 사람들이 정권의 일선에 있는데도 그렇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 다음 날인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제20차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 다음 날인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제20차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그 열정과 꿈이 사라진 다음에 남는 것은 무용담이니, 영화 ‘1987’의 화려한 액션은 그런 무용담을 폭발하는 촉매가 되었다. 그것은 마치 체 게바라가 사라진 다음 체 게바라의 의상과 체 게바라의 모자가 유행하는 것과 같다.

과거에 대한 향수에 관해 가장 신랄한 독설을 퍼부었던 사람이 있었다면 바로 루쉰일 것이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작품 가운데 ‘약’이라는 단편 소설을 보자. 이 작품은 1911년 손문의 신해혁명이 북경의 위안스카이 군벌정치로 타락하는 것을 보면서 루쉰을 사로잡은 쓰라린 분노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엽기적으로 보이는 소설이 될 것이다.

사건은 그 이전 1907년 일어났다. 손문의 혁명당원 쉬시린이 청의 대신을 암살했다. 복수는 잔인했다. 대신의 호위병이 쉬시린의 심장을 볶아 먹었다고 한다. 청 정부는 쉬시린의 아내였으며 마찬가지로 손문의 혁명당원이었던 치우진을 고향에서 체포해 관청의 대문(‘고헌정구’) 앞에서 처형했다. 이 치우진은 루쉰과 동향의 사람이다.

루쉰은 이 사건을 1919년 4월 5.4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약’이라는 소설로 재구성했다. 소설에서 아버지는 자기 아들의 폐병을 치료하기 위해 형리로부터 치우진(소설에서는 암시되었을 뿐이다. 그녀가 처형된 바로 그 역사적 장소 ‘고헌정구’만 지시된다)의 피를 은전을 주고 산다. 그는 그 피를 만두에 싸서 아들에게 먹인다. 당시 중국에 사람의 피가 폐병을 치료하는 데 좋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엽기적으로 보이는 이 소설을 통해 루쉰은 혁명가의 피, 혁명적 열정과 꿈을 이해하지 못하는 중국의 군중을 개탄한다. ‘1987’이라는 영화에 아련한 향수를 느끼는 세대를 루쉰이 보았다면 마찬가지로 개탄했지 않을까? 영화 <1987>을 무용담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1987의 열정과 꿈이 배반되는 현실을 보면서 여전히 향수에 사로잡혀 있다면, 루쉰이 글을 쓴 보람도 없게 되리라. 아니 이 영화를 보고도 감옥에 있는 양심수를 생각하지 못하는 권력자를 본다면, 그것은 혁명가의 피를 폐병을 치료하는 데 쓰려는 중국의 대중과 무어 다르겠는가?

영화 ‘1987’에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의 슬픔을 담은 장면(스틸컷). 실제 역사에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는 30년간 양심수 석방을 비롯한 민주주의 회복 운동의 최선두에 서 있었다.
영화 ‘1987’에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의 슬픔을 담은 장면(스틸컷). 실제 역사에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는 30년간 양심수 석방을 비롯한 민주주의 회복 운동의 최선두에 서 있었다.ⓒ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그래도 루쉰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소설의 대단원에 폐병 든 아들의 어머니가 아들의 무덤에서 치우진의 어머니를 만난다. 치우진의 어머니도 치우진의 무덤에 왔다. 치우진이 어머니는 이렇게 빈다.

“..난 알고 있다. 불쌍도 해라. 그놈들이 널 모함했구나.. 네가 정말 여기 있어서 내 말을 듣는다면 저 까마귀를 네 무덤 위에서 날게 해 보려무나”

우연인지 치우진의 어머니와 아들의 어머니가 함께 내려가려는 순간 멀리서 까마귀가 무덤을 지나 날아오른다.

“그들이 스무나문 걸음 갔을 때 갑자기 등 뒤에서 까욱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두 사람은 놀란 듯 뒤를 돌아보았다. 까마귀가 두 날개를 펴고 몸을 솟구치더니 먼 하늘로 날아갔다.”

난 여기서 루쉰이 왜 두 여인이 함께 내려갈 때라고 묘사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건 혁명가 딸을 둔 어머니와 아들의 병을 고치려는 어머니, 두 여인의 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나도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어쩌면 영화 ‘1987’이 이미 차갑게 식은 사람들의 마음에 진정으로 그 시대의 열정과 꿈을 다시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한다. 양심수가 갇힌 차가운 감옥 위로 까치가 날아오르기를 기대한다. 고문과 조작의 모법인 국가보안법이 한시바삐 폐지되기를 기대한다.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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