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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땅콩회항’ 피해자 박창진, “대한항공을 미워하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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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12월 5일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발생했던 ‘대한항공 086편 회항 사건’. 일명 ‘땅콩회항’ 으로 불렸던 바로 그 사건이다.

당시 기내에 있던 조현아 부사장은 승무원이 견과류를 봉지째 주는 것을 문제 삼았다. 이에 박창진 사무장이 매뉴얼대로 했다고 설명했으나 소용없었다. 조 전 부사장은 박 전 사무장을 폭행하고 욕설을 퍼부은 뒤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이동 중이었음에도 “너 내려!”라며 내리게 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대한항공은 전세계에서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땅콩항공’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까지 생겼다. 결국 조현아 부사장은 자리에서 물러나 구속돼 재판까지 받았다.

대한항공 박창진 전 사무장
대한항공 박창진 전 사무장ⓒ박창진 제공

1996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박창진 씨는 이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대한항공에서 ‘잘나가는’ 승무원 중 한명이었다. VIP인 대기업 임원들이 타는 비행기에도 타고 김대중 대통령 방북 당시 경제사절단이 타는 비행기에도 탔다. 회사에서 주는 승무원상도 몇 차례 받았고 유니폼이 바뀔 때 피팅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사건이 일어났던 비행기에 원래 다른 사무장이 타기로 되어 있었어요. 위에서 자꾸 저보고 가라고 했지만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전에 함께 비행기에 타셨던 모 중소기업 회장님이 회사로 전화해서 ‘몇십 년 비행기 타봤는데 이런 사무장 처음 봤다. 너무너무 일을 잘한다’고 칭찬을 하신 거예요. 제가 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죠. 그래서 모두를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그 비행기에 탔습니다. 그때는 그 일이 그렇게 될 줄은 몰랐죠. (웃음)”

사건 이후 박창진 씨는 귀국하자마자 바로 국토교통부와 회사에서 조사를 받았다.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답변을 했고 국토부에 보내는 서류도 회사 관계자가 작성한 것에 사인만 해서 보냈다. 스스로 회사를 위해서 헌신했다고 자부해왔기에 배신을 당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마침 회사에서 ‘너에게 피해가게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까지 들어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회사에서 지시받은 대로 진술했으니 무사히 넘어갈 줄 알았어요. 얘기해준 그대로 ‘매뉴얼대로 했다’고 진술했는데 조현아 씨 명의로 ‘사무장이 잘 몰라서 지적했다’는 내용의 입장이 나가더군요. 그때야 알았죠. 이 모든 게 저를 바보로 만들려는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는 걸. 영화 ‘1987’을 보면 고문당하는 사람이 집에 가서 말 한마디도 못 하고 움츠러들어서 있죠. 그거보고 너무 공감이 갔어요. 대한항공에서도 저에게 그걸 바랐을 거예요.”

대한항공 오너일가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만큼 박씨도 힘들어졌다. 거의 매일 기자들이 집에 찾아오곤 했다. 언론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회사는 그를 전혀 보호해주지 않았다.

“사건 이후 제 집 앞이나 출근할 때마다 항상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분들이 계속 거는 전화와 문자메시지에 시달리면서 스트레스 때문에 노이로제에도 걸리고 몸에 이상한 혹까지 나더군요. 비슷한 시기에 제 조카가 인터넷에서 이상한 찌라시를 봤다고 울면서 전화를 했었습니다. 뭔가 싶어서 봤는데 정말 이번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는 호사가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이었어요. 그거 본 이후 불면증이 더 심해졌습니다.”

극단적인 선택 고민했을때 말기암에 걸린 누님이
“네가 무슨 잘못이 있냐” 며 말리기도

가족들의 권유로 간 병원에서 박씨는 외상후 스트레스, 신경쇠약, 공황장애 등의 진단을 받았다. 의사가 입원을 권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방패가 되어줄 회사는 이미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있었고 그렇게 서서히 병들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자살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베란다 문을 열고 서 있었어요. 뛰어내리고 싶었는데 차마 엄두를 못 내고 한참을 서 있는 걸 큰누님이 발견하시고 말렸어요. 말기암 선고를 받으셨던 큰누님이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나도 삶의 의지를 놓지 않고 있는데 창창한 네가 네 잘못도 아닌 일로 왜 그러냐’ 하시면서 우셨어요. 그때 울면서 결심했어요. 죽을 결심까지 한 거 죽을 각오로 가보자고.”

창진씨는 불면증 등에 시달리며 435일간 휴직을 마치고 지난해 4월 회사로 복직했다. 사내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왜 조직의 불편한 진실을 까발려서 수치스럽게 하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오너일가의 눈 밖에 난 탓인지 그는 라인팀장에서 보직해임돼 일반승무원이 됐다. 연차가 낮은 승무원들이 주로 맡는 이코노미클래스에서 승객 대응을 하며 좌석, 화장실 등을 청소했다.

대한항공 박창진 전 사무장
대한항공 박창진 전 사무장ⓒ박창진 제공

대한항공에서는 라인팀장 자격을 얻으려면 토익과 토익 스피킹 공인 점수를 충족하고 회사에서 실시하는 방송 A 자격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해당 테스트에서 외부업체의 원어민 강사들이 채점했는데 갑자기 대한항공 출신 승무원들이 채점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창진 씨가 과거 테스트를 받을 때는 관리자용 방송문으로 시험을 봤는데 최근에는 일반 승무원들이 보는 테스트로 변경됐다.

“방송 A 자격 테스트를 받을 때마다 발음이 안 좋다는 이유만으로 통과를 못 하고 있어요. 일반 승무원용하고 관리자용하고는 전혀 다른 거고 저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거예요. 저는 과거에 테스트 받고 팀장역할을 계속했던 사람인데 갑자기 이렇게 바꿔버리고 불이익을 주려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는 이 문제로 1년 가까이 사측에 부당함을 개선해달라고 호소했다. 개선되지 않자 지난해 11월 법원에 인사·업무상 불이익을 받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 등을 요구하며 조현아 전 부사장과 대한항공을 상대로 총 3억원의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이번 소송은 지난 2015년 미국에서 한 소송에 이어 두번째다. 그러나 마음가짐은 그때와 전혀 달라졌다.

“미국에서 소송할 때만 해도 저의 억울한 마음이 정말 컸지만, 지금은 사명감 같은 게 생겼어요. 이번엔 이기든 지든 상관없습니다. 회사가 평범한 개인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또 그걸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런 것들이 계기가 돼서 승무원들의 발언권이 조금 더 높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아직도 대한항공을 사랑한다”

‘땅콩회항’ 사건 이후 사내에서 그를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늘어난 만큼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비행기 안에서 그를 알아보고 반갑다고 하거나 격려해주는 사람들도 꽤 있다.

“제 기사를 보시고 감동했다는 분들도 계셨고 듣기 민망하지만 존경한다는 분도 계셨어요. 어떤 40대 남자분은 제가 예전에 한 매체를 통해 ’짓밟힌 자존감’ 이야길 하는 걸 보시고 충격을 받으셨다고 하셨어요. 그분은 한 번도 자존감이란 단어에 대해 생각을 못 해봤는데 그 말을 듣고 계속 생각해보고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고 하시더군요. 내 진심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줬다는 걸 알았죠.”

사건이 발생하고 벌써 3년하고도 1개월이 지났다. 비 오고 땅이 굳어진다는 말처럼 창진 씨도 고난을 겪으면서 더욱 단단해졌다. 회사에 대해 섭섭함이 많은 게 정상이지만 그는 아직도 대한항공이라는 회사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저는 마음속에서 한 번도 대한항공을 사랑 안 한 적이 없었고 한 번도 비난한 적이 없습니다. 한 개인의 잘못과 재벌의 족벌경영체제에 대해 지적을 했을 뿐이에요. 개인을 희생시키는 구태의연한 행위에 대해 비판하고 이를 개선하라고 하는 거예요.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 변화를 요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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