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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의 사람과 현장] 존경하는 윤미향 대표님

나의 모교인 숙명여고에는 신문반이 유명했다. ‘숙란’이라는 이름의 신문반이었는데, 학교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써클로 교사나 학생 모두 굉장한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 ‘숙란’의 학생기자였다. 1학년은 수습기간이라 2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 기사를 쓸 수 있었는데, 내가 처음 쓴 기사가 ‘위안부와 친일파 문제’였다. 내가 딱히 의식이 있었던 학생이었나. 아니, 그건 순전히 한편의 드라마 때문이었다.

여명의 눈동자.

1991년에 시작해 1992년에 끝난 36부작 대하드라마. 등장인물 여옥(채시라)이 ‘위안부’ 피해자로 나왔고, 그 드라마에 푹 빠졌던 나는 그때부터 ‘위안부’, 친일파 관련 책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사실을 알면 알수록 너무 화가 났고, “청산하지 못한 위안부, 친일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래희망을 사학자로 ‘수정변경’ 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11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304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서 윤미향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가 언론에 보도된 지난 박근혜 정부의 정대협 여론공작에 대해 규탄 발언을 마친 뒤 눈물을 흠치고 있다.
지난해 10월 11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304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서 윤미향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가 언론에 보도된 지난 박근혜 정부의 정대협 여론공작에 대해 규탄 발언을 마친 뒤 눈물을 흠치고 있다.ⓒ제공 : 뉴시스

당시엔 자료가 많지 않아서 故임종국 선생님의 ‘친일문학론’, 그리고 관련 서적들이 전부였던 것 같다. 그래도 얼마 되지 않는 자료를 모아 기사를 썼다. 그런데 지도교사 왈, “이 기사는 못 싣는다”는 게 아닌가?

이유를 물었더니 글쎄 “위안부 이야기가 너무 선정적이어서”란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기가 막히지만, 그 때 부르르 떨리던 느낌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걸 보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할 정도로 화가 났던 것 같다. 교무실 문을 쾅, 하고 닫고 나오면서 복도를 걷는 내내 울었다. 그리고 결국 ‘위안부’ 이야기는 통으로 삭제되고, 친일파 이야기는 실명은 다 빠진 채 내 기사가 신문에 실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리고 그 드라마의 인기 덕이었는지, 그 즈음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조명 받았고, 나는 “잘 해결이 되겠구나” 생각했고, “친일파 문제도 이번 기회에 해결되겠군”, 이렇게 기억에서 점점 지워졌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2017년 겨울, 어느 날, 나는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내 어린 시절 그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여명의 눈동자 이야기부터 내 기사가 삭제되었던 이야기까지.

“그런데 그 25년 전, 1992년부터 윤미향 대표님이 수요집회를 시작하셨더군요. 제가 다 해결됐다고 생각하고 분노하기를 중단한 딱 그 때부터. 죄송합니다” 난 왜 머리로 알기만 하고 실천하지 못했을까. 할머님들께 죄스러움으로 눈물이 났다.

2007년 3월 28일 제754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윤미향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당시 내한한 엘리엇 어윗 매그넘 사진작가.
2007년 3월 28일 제754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윤미향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당시 내한한 엘리엇 어윗 매그넘 사진작가.ⓒ뉴시스

올해 햇수로 26년이 된 수요집회(정식 명칭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이다). 그 수요집회를 26년 전 앳된 얼굴로 진행하고 있는 윤미향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의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고집스러움과 끈질김으로 지난 26년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진행해온 수요집회는 엊그제 1317회 집회를 가졌다. 세계에서 제일 오래기간 진행된 집회인 수요집회. 피해 생존 할머님들을 돌보며 정작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못해 병을 얻은 그녀. 암 진단을 받고 나서도 치료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난해 늦은 수술을 했던 그녀. 선배가 드문 이 시대, 내가 가장 존경하고 또 존경하는 윤미향 대표님.

정부의 미온적 태도를 보며, 아직도 할 일이 많으시니, 부디 건강하시길 부탁합니다.

엄미야 금속노조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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