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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상균의 편지와 구은수의 변명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자진출두에 앞서 3배를 올리고 있다.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자진출두에 앞서 3배를 올리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새해를 맞아 동료 노동자에게 쓴 편지가 공개됐다. '사랑하는 아우 정욱에게'(김정욱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로 시작하는 이 글에는 문재인 정부의 첫 사면에서 제외된 소감이 담백하게 실려있다. 그는 "기대도 하지 않았고, 결정에 대해 조금도 비판하고 싶지 않다"면서 "노동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노골적인 탄압을 자행했던 박근혜 정권에 맞서 투쟁의 앞자리에 서는 것은 민주노총 위원장의 당연한 책무"라고 했다. "(박 정권이) 공포를 확장시켜 노동자 민중의 분노를 잠재우려 했지만 우리는 무릎 꿇지 않고 싸웠다"며 지형을 변화시킨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의 자족과 보람을 내비친 것이다.

그의 말처럼 2015년은 박근혜 정권의 흥망성쇠를 가른 해이다. 집권 첫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발목 잡히고, 2014년 세월호 참사로 국민과 대립했던 박근혜씨는 2015년을 권력과 자본을 위해 근로조건을 뜯어고칠 한해로 만들려고 했다. 박근혜씨는 그해 1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4대 국정 과제의 하나로 선포하고 쉬운 해고를 밀어붙였는데, 그에 저항했던 것이 한 전 위원장이 속한 민주노총이었다. 만약 민주노총의 저항이 없었다면, 단연코 정권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경찰은 정권을 뒷받침했다. 그해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선선선, 선을 지키면 행복해져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이 선 중 하나가 질서유지선이다. 경찰은 "그동안 경찰이 너무 성급하게 나서서 집회를 막는 것에만 급급한 이미지를 줬기에 선진 집회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속에는 '허용된 행위만을 하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실제 경찰은 그해 내내 차벽과 물대포를 동원해 정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잠재우려고 했다. 그 선두에는 구 전 청장이 있었다. 구 전 청장은 투쟁을 하는 노동자와 시민 사회를 불순세력으로 여겼다. 민중총궐기에서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고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사회적인 비판이 커지자 노동자·농민의 불법시위로 프레임을 바꾸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반(反) 민중적인 정권과 경찰의 태도만 드러날 뿐이었다. 한 전 위원장이 종교에 의탁해 조계사에 피신 중일 때에도 구 전 청장은 조계사를 찾아가 "도피행위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백남기 사망' 1차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백남기 사망' 1차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뉴시스

2018년, 두 사람이 선 모습은 너무나 다르다. 한 전 위원장은 재판을 거쳐 3년형을 확정받고 복역 중이다. 구 전 청장은 재판 중이다. 구 전 청장은 물대포로 백남기 농민을 향해 직사 살수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와 함께 다단계 유사수신업체 IDS홀딩스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구 전 청장은 백 농민 사망과 관련한 재판에서 부하 직원에게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전직 경찰 수장으로서의 초라한 민낯이다. 반면 한 전 위원장은 촛불혁명이 시작되기 전, 공권력으로 철옹성을 쌓았던 박근혜 정권의 성벽을 백 농민과 함께 먼저 허물었던 인물로 역사에 남았다.

국정농단으로 재판 중인 박근혜씨와 정권 유지에 앞장섰던 구 전 청장, 그리고 그들에 맞서다 집요하게 탄압을 받은 한 전 위원장의 오늘날 모습은 정도(正道)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편지 내내 자신을 내세우지 않은 한 전 위원장의 겸손함과 진정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한 전 위원장이 4장 분량의 편지에서 자신을 내세운 것은 딱 한 구절이다.

"가장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투쟁하는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저임금 미조직 노동자가 소수가 아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할 다수임을 자각하는 새해가 되길 소망해 본다. 그 길에 남은 인생을 바치리라고 하얀 벽을 증인 세우고 다짐하며 새해 첫날을 맞는다."

한 전 위원장의 편지에서 민주노총 위원장의 품격을 읽었다. 감옥의 흰 벽 앞에서 다시 '이 시대의 노동자'를 결심하는 한 전 위원장을 응원한다. 그는 "이 순간부터(노동자 민중의 분노가 폭발해 박근혜 정권이 탄핵된 뒤부터) 노동자를 가둔 감옥은 더 이상 감옥이 아닌 거라 생각했다"고 했지만, 그래도 이런 한 전 위원장이 하루라도 빨리 담장 밖으로 나오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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