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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자영업자는 최저임금으로 맞서지 말고 지대개혁으로 연대해야 한다

그리 크지 않지만 예쁜 마을이 있었다. 이곳에서 사는 상인들은 이 예쁜 마을을 사랑했다. 이 마을 식당 주인들은 맛있고 특색 있는 음식을 개발했고, 카페 주인들은 아름다운 음악 공연을 열었다.

입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마침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예쁜 마을을 찾았다. 마을을 사랑했던 상인들은 뿌듯했다. 마침내 자신들이 아꼈던 마을 상권을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주인이 찾아와 월세를 갑절로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이들에게는 단번에 오른 월세를 감당할 길이 없었다. 노력 끝에 마을만의 문화를 만들어 장사가 잘 되려는 판에, 오른 월세를 감당하지 못한 상인들은 쓸쓸히 그 마을을 떠나야 했다.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그 마을에는 월세를 감당할 막강한 자본력을 지닌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로 가득 채워졌다.

젠트리피케이션. 낙후됐던 옛 도심이 번성해 많은 사람들이 몰리자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되레 내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자기만의 문화를 형성했던 상인들의 노력이 결국 상인들을 내쫓는 결과를 야기한 젠트리피케이션은 홍대입구와 가로수길 등 전국 곳곳에서 지금 진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가시화된 최저임금 1만 원 시대에 대한 전망은 영세상공인과 노동자들 사이에 극심한 갈등을 유발했다. 300년 동안 유지됐던 자본주의가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던 분할통치, 즉 민중들을 둘로 갈라놓고 피터지게 싸우도록 하는 그 모습이 재연된 것이다.

“최저임금이 1만 원이 되지 않으면 생계유지가 불가능하다”는 노동자의 목소리도 지당하고, “갑자기 최저임금을 올리면 모두 망하라는 이야기냐?”라는 영세상공인들의 목소리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러면 정녕 이 싸움은 노동자나 영세상공인들 중 누구 한 쪽이 죽어야 해결될까? 아니면 양자의 연대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월세 vs 최저임금

2010년 시간당 4110원이었던 최저임금은 8년 뒤인 2018년 7530원으로 올랐다. 인상률은 83% 정도다. 이 수치를 기억하고 2016년 3월 <머니투데이>가 보도한 기사 제목을 살펴보자. 기사 제목은 ‘200만원 월세가 2년 새 400만원…잔인한 임대료 풍선'이었다.

우리나라는 일정 기간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월세도 일정 수준(9%)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한 상가임대차보호법이란 게 있다. 하지만 현실로 들어가면 이 법은 각종 편법에 밀려 제 기능을 못한다. <머니투데이>가 기사에서 밝혔듯이 2년 만에 갑절로 오른 임대료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을 보란 듯이 비웃는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4~2016년 3년 동안 젠트리피케이션이 본격화된 마포구 상수동 일대 상가 평균 임대료 상승률은 42.8%나 됐다. 같은 홍대의 임대료 상승률도 30%를 넘었다(31.3%).

다른 수치를 보자. 이 수치는 <경향신문>이 취재해 10일자로 보도한 ‘최저임금 갈등의 진실, 불로소득엔 관대하고 노동소득엔 인색한 사회’에 나온 것이다. <경향신문>이 취재한 자영업자 세 곳의 지출 구조는 이렇다.

프랜차이즈 커피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매월 1670만 원을 지출한다. 이 중 인건비 비중은 26.9%(450만 원)이고 월세 비중은 19.9%(330만 원)이다.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한 프랜차이즈 빵집의 경우 월 지출액은 2630만 원인데 이 가운데 인건비 비중은 8%(210만 원)에 불과했고 월세 비중은 15.2%(400만 원)이나 됐다. 월세 비중이 되레 높았다.

세 번째 케이스 편의점은 인건비 비중이 12.7%(500만 원)로 월세 비중 2.1%(80만 원)보다 훨씬 높았다. 하지만 이 편의점은 본사에 내는 로열티와 카드수수료 비중이 7.7%(302만 원)나 됐다.

숫자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이 숫자들을 종합해보면 자영업자를 극한으로 내모는 범인을 최저임금 인상으로 모는 것은 너무나 부당하다. 또 다른 범인인 월세는 짓고 있는 죄에 비해 너무나 비판을 덜 받는다.

본질적인 문제는 연대의 철학

한 가지 더 살펴봐야 할 수치가 있다. 최저임금과 임대료는 자영업자 입장에는 모두 비용이다. 그런데 지출한 비용이 다시 자영업자의 매출로 돌아올 확률을 따지면 어느 쪽이 진정한 부담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지난해 11월 국회 예산처가 발표한 ‘소득계층별 소비성향 분석’이라는 자료를 보자. 이 자료에는 소득계층별 평균소비성향이라는 약간 생소한 숫자가 나온다. 통계에 따르면 저소득층의 평균소비성향은 112%였고, 중산층은 76.2%, 고소득층은 62.8%로 나타났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만약 누군가에게 100만 원의 새로운 소득이 생긴다면 저소득층은 이 중 무려 112만 원을 쓴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생긴 돈은 100만 원인데 쓰는 돈이 더 늘어난다. 반면 고소득층으로 넘어가면 이 수치는 62만 원으로 뚝 떨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람들은 당장 써야할 돈이 급히 필요할 정도로 절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월세와 임금은 자영업자 입장에서 모두 비용이지만 그 돈을 지출하면 돌아오는 회수율이 다르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당연히 저소득층이다. 이들에게 100만 원을 쥐어주면 112만 원을 쓴다. 이 돈은 당연히 자영업자들의 매출로 이어진다.

월세를 걷어가는 건물주는 한국에서 조물주보다 높으신 분들이다. 이 분들은 당연히 고소득층으로 분류될 텐데 이들에게 월세로 100만 원을 쥐어주면 돌아오는 돈은 62만 원 뿐이다. 그 차이가 갑절에 이른다. 이 차이를 안다면 자영업자가 줄여야 할 비용은 최저임금이 아니라 월세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계산을 넘어서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한국의 대표적 ‘을’들인 노동자와 영세상공인이 최저임금 문제로 다투면 우리는 영원히 지배자들의 분할통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 종소자영업자 지원대책 TF 당정협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 종소자영업자 지원대책 TF 당정협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만약 최저임금 인상에 격렬히 반대해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늦춘다고 가정해보자. 그게 얼마나 늦춰지겠나? 지난 대선 때 최저임금 인상에 가장 보수적이었던 홍준표 후보조차 2022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을 맞추겠다고 공약했다.

건전보수를 표방하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나 극중주의를 주장하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대통령이 됐어도 마찬가지다. 이 둘의 공약은 문재인 후보와 다를 바 없는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이었다.

누가 대통령이 됐어도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는 결국 온다. 아무리 그 시기를 늦춰봐야 벌 수 있는 시간은 1년에서 2년이다. 재벌들이 골목상권을 점령한 헬조선에서 고작 1, 2년 안에 영세상공인들이 살길을 찾을 수 있을까? 장담하는데 을들끼리 치고받는 한 1, 2년의 유예기간 동안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 모두 살 길이 있다. 을들끼리 연대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으로 치고받지 말고, 고소득층만 살찌우는 지대를 개혁하는 것이다. 노동자와 영세상공인 모두 지대개혁에 팔을 걷어 부치고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해야 한다. 이러면 2020년까지 최저임금이 1만 원으로 올라도 노동자도 살고 자영업자도 사는 길이 생긴다.

그런 면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 지대개혁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지대추구의 모순을 사회적 대타협으로 바꾸자는 국민 여론이 일어날 때까지 우리의 끊임없는 치열한 노력이 함께 해야 한다”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주장은 매우 옳다. 지금은 최저임금 인상을 저지하려는 목소리에 솔깃할 때가 아니다. 노동자와 영세상공인의 굳건한 연대로 지대의 모순을 함께 극복해야 할 때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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