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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많은 성폭행 피해자들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까? 책 ‘미줄라’
책 ‘미줄라’
책 ‘미줄라’ⓒ기타

성폭행 피해 여성의 80퍼센트 이상이 신고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지인에 의한 강간은 신고율이 가장 저조한 범죄다. “왜 많은 성폭행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까?” 책 ‘미줄라’는 미국의 한 대학 도시에서 벌어진 일련의 성폭행 사건들, 일명 ‘미줄라 강간 스캔들’을 추적한 르포르타주다. 저자는 몬태나 대학교에서 2010~2012년에 벌어진 일들로 초점을 좁혀 추적해나간다. 특히 그중에서도 세 가지 사건이 이야기의 축을 이룬다. 대학생 앨리슨 휴거트, 케이틀린 켈리, 세실리아 워시번(가명)은 이 기간 중에 각기 다른 남학생에게 강간을 당했고, 이를 경찰에 신고했다. ‘지인에 의한 강간’ 또는 ‘데이트 강간’이라 할 수 있는 사건들이며, 이중 형사 기소된 두 사건은 피의자가 몬태나 대학교 미식축구팀 그리즐리의 유명한 선수라 더욱 이슈가 되었다.

미줄라에서 벌어진 일들은 한동안 언론을 달구었고, 오바마 정부가 2014년에 캠퍼스 성범죄에 대응하는 TF팀을 구성해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만들도록 촉발하기도 했다.(트럼프 정부는 이 가이드라인을 철회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미줄라가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온라인에서는 미줄라를 두고 ‘강간 수도’라고 손가락질했으나, 사실상 미줄라의 강간 사건 발생률은 미국 전국 평균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강간은 피해자가 거짓말한다는 의심을 받는 유일한 범죄다. 가뜩이나 충격에 휩싸인 피해자가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것은 ‘무고 의심’이다. 책에 등장한 여성 피해자 다수가 신고 후 경찰에게 ‘남자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여성들이 바람을 피우고선 강간당했다고 거짓 신고를 한다는 의심에서다. 대다수 여론은 그리즐리 선수는 자고 싶어 하는 여자가 줄을 섰으므로 강간할 이유가 없다고 여기고, 심지어 피해자를 거짓말을 하며 세상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몰아붙인다.

또한, 많은 사람이 무장한 괴한이 여자를 덤불숲으로 끌고 들어가 덮쳐야 비로소 ‘강간’이라고 여긴다. 가해자는 여자가 ‘싫다’고 하는 거부 의사를 무시하거나 자기 좋을 대로 받아들여도 된다고 여긴다. 지인에 의한 강간 사건의 가해자들은 자신이 저지르는 것이 강간인 줄도 모르거나, 알게 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렇게 강간은 계속 일어난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반수 이상의 성폭행이 상습범에 의한 것이다.

용기 내어 경찰에 신고해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경찰 조사에서 받은 ‘무고 의심’을 비롯한 각종 2차 가해만이 아니다. 경찰에서 검찰로 이관되어도 검찰이 기소를 꺼린다. 특성상 형사사건에 요구되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2008~2012년 미줄라에서 신고된 350건의 강간 사건 중 경찰이 검찰로 이관한 사건은 114건이다. ‘이관’은 경찰이 사건 수사를 완료하고 성폭행으로 기소할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 뒤 기소를 권고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관된 114건 가운데 기소는 14건(약 12%)에 그쳤다. 이유는 대부분 ‘증거 불충분’이다.

검찰이 기소를 한다고 해도 거기서 끝이 아니다. 배심원 재판이 기다리고 있는데, 지역민의 신망을 얻고 있는 스포츠 스타에 대한 재판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시합이나 마찬가지다. 배심원 재판에서의 ‘무죄 평결’을 피하기 위해 피의자와 ‘유죄 협상’을 벌이기도 하는데, 그 역시 피해자에게는 가혹한 경험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책을 마감한다. “강간범들은 피해자의 침묵을 이용해 책임에서 벗어난다. 자기 이야기를 밝히면서 그런 침묵을 깨는 것만으로도 피해자들은 강간범에게 강한 일격을 날릴 수 있다. 전면에 나선 많은 피해자들이 불신을 경험한다. 법정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일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드러내어 말함으로써 그들은 다른 피해자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라고 격려하는 역할을 하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가 치유됨을 느끼기도 한다.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 성폭행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밝히는 피해자들이 늘어날수록 그들의 힘도 커진다. 이 집단적 강인함이 모든 피해자에게, 너무 두려워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피해자에게도 힘을 준다. 그들이 느끼지 않아도 될 수치심은 대개 고립 속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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