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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민중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오늘의 민중가요

싱어송라이터 김동산이 노래를 만드는 방식은 독특하다. 출장작곡가를 표방하는 그는 이야기가 있는 곳에 직접 가서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곧바로 노래로 만든다. 그가 주목하는 이야기는 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 땅에서 쫓겨나고,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철거민이거나 노동자이거나 흔히 서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혹은 민중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를 통해 노래가 된다.

사실 한국의 민중가요에는 철거민이나 노동자의 이야기가 이미 많았다. 그런데 김동산의 노래는 지금껏 나왔던 민중가요들과는 조금 다르다. 다른 것은 장르만이 아니다. 김동산은 자신의 노래 속 이야기에 특별히 개입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의 사연을 고스란히 옮기는데 주력한다. 그들은 투철한 사회의식을 가진 이들이 아니고,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도 아니다. 시민사회 운동단체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사건을 겪기 전까지는 운동단체의 성원이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보수적인 관점이 드러날 때도 있다. 그럼에도 김동산의 그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살려 재현한다. 그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노래로 만들다보니 김동산의 노래는 민중의 노래이면서도 이전까지 민중가요에서 흔히 형상해왔던 민중상, 그러니까 계급적/혁명적으로 각성해 투쟁을 호소하는 급진적 주체의 목소리를 담지 않는다.

임대료 폭등으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서울 종로구 서촌 궁중족발에서 사연을 채록하는 김동산 작곡가(오른쪽)
임대료 폭등으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서울 종로구 서촌 궁중족발에서 사연을 채록하는 김동산 작곡가(오른쪽)ⓒ황경하 제공

사실 이 같은 민중상은 민중 자신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민중을 통해 혁명을 꿈꾸었던 운동권들의 이상에 더 가까웠다. 물론 민중가요에 이처럼 이상적인 민중의 모습만 담겼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초중반 혹은 그 후에도 민중가요 창작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노동자, 농민, 서민의 곁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들이 쓴 말과 생활 글로 노래를 만들곤 했다. 그 노래에는 거창한 바람이나 치밀한 사회과학적 인식은 없었다. 하지만 생생한 삶의 목소리와 진실이 담겨 있었다. 아직 민중이라는 이름조차 변변히 갖지 못한 이들은 우리 사회의 서발턴에 가까웠다. 김동산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김동산이 노래로 담는 이들 역시 서발턴들이다. 성장의 뒤안길에서 짓밟힌 사람들, 트렌드와 힙한 소비에 묻혀 잘 보이지 않고 애써 보려하지도 않는 사람들. 대변해줄 조직도 없어 목소리조차 갖지 못한 사람들. 그러나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들 곁으로 김동산은 다가가 귀를 기울이고 노래를 만들었다. 그들에게 목소리를 되돌려주었다.

낮은 자세로 민중 자신이 말하는 노래

그런 점에서 김동산은 본인이 민중가수를 표방하건 하지 않건 그동안 민중가요 진영이 진행해왔으나 꾸준히 이어지지 못한 방식, 그러니까 민중 자신이 말하게 하고 창작자가 대신 노래하는 방식,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보다 서로 배우려는 자세, 서발턴에 귀 기울이는 낮은 자세를 이으며 복원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이 같은 자세나 방식은 미국에서 포크 음악에 민중적 의미를 부여했던 이들이 잇고자 했던 떠돌이 이야기꾼 혹은 민중 자신의 노래에 대한 기록자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문 창작자가가 근사하고 화려한 테크닉을 동원해 멋진 창작물을 내놓고 청자는 그저 듣기만 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듣는 이가 노래의 발화자가 되고, 노래의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방식은 정치적으로 올바를 뿐만 아니라 예술 그 자체에 대한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예술이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고, 누구의 목소리를 어떻게 대변해야 하는지. 그리고 예술의 주체가 누구인지, 누구여야 하는지를 되묻게 하는 것이다. 예술 창작 훈련을 거치지 않은 이가 예술에 참여하는 방식, 예술 자체의 민주화 혹은 주체화에 대한 사례로 김동산의 시도는 한없이 소중하다.
실제로 김동산의 노래에 담긴 사연들은 구구절절하다.

김동산(왼쪽)과 노선택이 노래를 녹음하면서 상의하는 모습
김동산(왼쪽)과 노선택이 노래를 녹음하면서 상의하는 모습ⓒ황경하 제공

김동산이 정규 음반 [서울·수원 이야기]에 담은 곡은 총 9곡이다. 첫 곡 ‘수원아이파크시립미술관송’이 시립미술관에 아이파크라는 재벌의 브랜드를 갖다 붙인 자본 권력의 승리를 노래한다면, ‘4인 가족’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에서 곱창가게 우장창창을 운영하다 강제로 쫓겨날 뻔 했던 서윤수 사장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었다. “나도 모르는 걸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아 가게를 열었지만, “제일 좋은 재료 구해서 정성껏 대접하면 4인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단순한 삶”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 노래에는 그의 고단한 삶의 목소리가 그대로 옮겨졌다. 슬로우 템포의 곡은 김정근의 트럼펫을 더하며 노래로서의 완성도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아현포차 30년사’에는 아현동에서 쫓겨나야 했던 노년 여성 포장마차 주인의 삶을 기록하면서 서발턴으로 살아온 이의 이력을 풍부하게 담는다. 민중 자서전이 되는 노래는 “이승만 박사 때가 더 가난했는데 지금 이 세상이 더욱 각박”하다는 날카로운 질문을 놓치지 않는다.

‘노래하는 이유’는 이제 투쟁 4,000일을 넘기고 있는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돈을 벌고 미국은 그렇게 만든 기타를 가져가 우리에게 다시” 팔고, “사람들은 그걸 브랜드라고 말한다”는 진술에는 투쟁 속에 스스로 깨달은 자본주의의 진실이 통렬하게 담겨있다. 11년에 이르고 있는 싸움의 분노와 끈질김은 박희진의 건반이 거들면서 더욱 눅진해졌다. ‘통영생선구이 블루스’는 서울특별시 서촌의 식당 통영생선구이에서 벌어진 투쟁을 블루스에 담아 질박하게 노래하고 있다. 이 곡에서도 김동산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빌어 노래한다. 블루스는 그 옛날 흑인들이 그러했듯 우리 사회의 흑인 같은 이들의 심정을 흑인영가처럼 대변하는데 적절하다. 음악의 방법론과 메시지가 노래 안에서 성공적으로 만났다. ‘골든 타임’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바라지 골목의 생존권 투쟁을 노래하고, ‘도면 없는 예술가’는 경기도 수원 화성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그 곳을 떠나야 하는 지동 세인상사 김기만씨의 이야기를 담았다. 어디에나 있는 사람, 그러나 그런 사람이 없다면 동네가 돌아가지 않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김동산은 놓치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떠나야 하는 문화재 지정과 철거의 그늘을 외면하지 않았다. ‘90세 무명노인의 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예술은 빛나지 않는 삶도 기록하는 것이고, 답이 없는 질문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각각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더 많은 가능성을 꿈꾸게 하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다. 김동산이 이번 음반을 통해 해낸 일이다.

김동산 작곡가의 노래를 녹음하는 뮤지션들
김동산 작곡가의 노래를 녹음하는 뮤지션들ⓒ황경하 제공

보너스 트랙인 ‘뭘 하고 있을까’까지 총 9곡의 노래를 통해 김동산이 아니라면 미처 노래가 되지 못했을 삶들이 노래가 되었고, 노래는 노래가 감당해야 할 역할 가운데 하나를 놓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각각의 노래들이 모두 노래에 담긴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멜로디와 사운드를 만나지는 못했다. 앞으로 김동산이 해야 할 일이라면 바로 노래의 밀도를 더 높이는 일, 그래서 이 노래들이 노래의 힘으로 스스로 더 힘차게 날아갈 수 있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지금 김동산에 의해, 그리고 김동산의 벗들에 의해 민중가요의 역사가 새롭게 이어지고 있다. 이제 1987년의 영광과 상처만을 기억하지 말고 현재의 상처와 대응에도 주목해야 한다. 귀 기울여보면 노래는 오늘도 멈추지 않으니 오늘은 오늘의 노래를 듣자.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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