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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지금 당신은 어느 곳에서 어떤 자세로 현실을 바라보고 있는가

대통령이 바뀌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세상의 모든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될 리는 만무하다. 당연히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시간이 걸린다 해도 쉽지 않을 일들도 많다. 문제는 시간이 걸려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대통령이 바뀌고 세상이 조금 나아질 것 같아지니 어느새 관심이 덜한 우리 사회의 온도이다. 기다린다고 산적한 문제들이 다 해결될 리 없고, 대통령이 항상 다 잘하라는 법도 없는데 어떤 이들은 지금 아프고 힘든 이들을 외면하고 대통령만 바라본다. 덕분에 아프고 힘든 이들은 더 아프고 더 힘들다. 그럼에도 어떤 고통의 현장에는 노래가 함께 하고 있다. 노래가 함께 희망을 만들고 있다. 그 자체로 희망이 되고 있다.

지금 서울 종로구 체부동 본가궁중족발에서 벌어지는 일

2017년 8월 24일부터 퇴거반대 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체부동의 본가궁중족발이 바로 그 곳이다. 본가궁중족발은 2009년 4월부터 영업을 시작해 당시 8년째 체부동 시장 혹은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라고 불리는 동네에서 족발을 삶아왔다. 그런데 2016년 새 건물주가 된 이모씨는 그 해 1월 갑자기 보증금 3,000만원에 월 300만원이었던 임대료를 보증금 1억에 월 임대료 1,200만원으로 올려버렸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임대료를 요구한 건물주 이모씨는 궁중족발의 사장 부부가 반발하며 가게를 비워주지 않자 가게를 비워달라는 명소소송을 진행해서 승소한 뒤 강제집행을 단행하기 시작했다. 그는 용역을 동원해 최근까지 세 차례나 강제 집행에 나섰다. 맘상모를 비롯한 자영업자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 뮤지션 등이 강제 집행에 반대해 맨몸으로 막아섰다. 이 과정에서 함께 궁중족발을 지켜려 한 이의 이가 부러지고, 족발집 사장 김우식씨의 손가락 4개가 부분 절단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건물주 이씨는 전혀 개의치 않고 업무방해 등 금지가처분 소송을 걸어 승소하는 바람에 김우식 사장과 맘상모는 하루에 50만원씩의 간접강제금을 내야 한다. 그 뿐 아니라 건물주 이모씨는 소셜미디어 등에서 궁중족발을 지키려는 이들을 끊임없이 조롱하고 있으며, 가게에 수시로 찾아와 자극하거나 행패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다. 그는 업무방해 및 금지 가처분 소송, 건물인도 단행 가처분 소송, 강제집행효용침해, 특수공무집행방해, 감금, 폭행, 모욕 형사사건도 진행하고 있다.

본가궁중족발 김우식 사장
본가궁중족발 김우식 사장ⓒ황경하 제공

지금 궁중족발에서는 이렇게 일방적이고 부당한 건물주의 횡포와 법의 허점에 맞서 뜻 있는 이들과 예술인들이 연대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또 한 장의 음반이 만들어졌다. 지난 해 10월 4일부터 뮤지션들이 공연으로 연대하기 시작해 꾸준히 공연을 펼치면서 바로 그 곳에서 음반을 만든 것이다. 지난 해 10월부터 [새 민중음악 선곡집]이라는 이름으로 창작곡 음반을 연달아 발표하고 있는 뮤지션/기획자 황경하를 비롯한 10여명의 뮤지션들은 1월 16일 [새 민중음악 선곡집 Vol. 3 – 쫓겨나는 사람들]을 발표했다. 김이슬기, 노승혁, 람, 쓰다, 예람, 오재환, 이다, 이소연, 이형주, 장명선, 황경하 등이 참여한 음반에는 총 13곡의 노래와 시 낭송이 담겼다. 이 음반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있는 성주를 노래한 [새 민중음악 선곡집] 1, 2와 달리 본가궁중족발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김이슬기를 비롯한 뮤지션들은 본가궁중족발에서 벌어진 일을 알게 되고, 그 곳에서 함께 하면서 느낀 생각과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물론 본가궁중족발이 성주만큼 중요한 현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건물주의 탐욕과 법의 허점, 대중의 전도된 의식으로 인해 한 가족의 평범하지만 소중한 삶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의 삶도 함부로 짓밟혀서는 안되는데 벌어지면 안될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참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비슷한 참사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 민중음악 선곡집 Vol. 3 – 쫓겨나는 사람들’ 앨범 표지<br
‘새 민중음악 선곡집 Vol. 3 – 쫓겨나는 사람들’ 앨범 표지ⓒ황경하 제공
본가궁중족발에 연대하는 음악인들
본가궁중족발에 연대하는 음악인들ⓒ황경하 제공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두리반 철거 반대 투쟁 등에 적극 참여했던 뮤지션 황경하는 “슬픔과 분노 속에서 이 노래를 쓴다”고 직설적으로 고백하면서 묻는다. “쫓겨나고 빼앗겨 온 사람들”이 “마지막 한 톨까지 앗아가 버렸”다고, “가족과 오순도순 살고 싶었는데 건물주 탐욕에 손가락을 잘렸”다고, “너는 이제 어느 편에 서겠”냐고 물으며 황경하는 간청한다. ‘당신의 슬픔도 우리와 같다면’ “이 곳으로 달려와”달라고.

[새 민중음악 선곡집] 시리즈에 계속 참여하고 있는 뮤지션 오재환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본가궁중족발의 임대인이자 사장의 마음을 노래 ‘오랜 시간 동안’에 담았다. 일렉트로닉 음악 스타일의 사운드에 담긴 노래는 성실하게 삶을 꾸리고 지켜온 이의 단단한 심지를 포착해냄으로써 퇴거 위기에 놓인 자영업자를 일방적인 피해자로 담는 전형성을 피해 생활인이자 민중인 주체의 건강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를 건물주를 대비하는데 성공했다.

마찬가지로 지난 시리즈 음반에 계속 참여해온 블루스 뮤지션 이형주 역시 ‘땀’을 빌어 노동과 삶의 소중한 가치를 옹호한다. 건물조차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그의 인식은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진실과 허상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계속 눈물을 흘리다가 눈물이 불타는 눈알의 파편이라면 불똥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만든 쓰다의 곡 ‘불똥’은 궁중족발에 감도는 슬픔을 곡진하고 사이키델릭하게 표현해냈다. 쓰다가 노래한 “튀어오른 불똥”은 사실 궁중족발에만 있지 않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흐르고 있을 것이다. 농염하고 처절한 슬픔을 잘 담아낸 곡은 이제 우리가 민중음악이라는 장르에서 지난 1980년대와 90년대의 뮤지션들만을 기억해서는 안될 이유를 알려준다.

사실 꽃다지나 노래를 찾는 사람들, 안치환처럼 민중가요를 널리 알린 이들만이 민중가요의 전부가 아니다. 민주노총의 집회에서 울려퍼지는 민중가요 역시 민중가요의 전부가 아니다. 1980년대 우리 사회 곳곳의 낮은 이들 곁에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이야기로 노래를 만들려는 이들이 있었다. 텔레비전에도 안 나오고, 라디오에도 안 나오는 이야기. 그러나 가난하고 비참할지언정 소중한 삶의 이야기를 노래로 담아냄으로써 삶을 지키고 옹호하려고 했던 이들은 일군의 민중음악인들 뿐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을 전공하기도 했지만 전공하지 않더라도 음악으로 삶을 지키고, 삶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뒤집어버리려 했던 이들은 어쿠스틱 기타와 북 정도의 악기와 카세트 플레이어 정도의 녹음으로 불법음반을 만들곤 했다. 음악성을 테크닉만으로 한정한다면 부족한 것투성이인 음반이었지만 그 음반에는 투박한 목소리와 흐린 음질을 뛰어넘는 삶의 진실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어떤 노래들은 삶만큼 진실한 멜로디를 만나 감동적인 노래가 되곤 했다.

[새 민중음악 선곡집 Vol. 3] 음반은 민중가요가 운동 집단의 논리를 조직적으로 대변하면서 다소 멀어진 현장과 예전 민중가요의 생생함을 잇고 있다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진보 혹은 운동은 진보적인 가치를 옹호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진보나 운동은 더 많이 보는 것이다. 지금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더 많이 눈을 맞추는 일이고, 그들과 함께 비틀거리고 머뭇거리면서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는 일이다.

기존 민중가요와 다른 민중음악
아직 명곡이 없다 평가할 수도 있지만

민중가요라고 말하지만 이제 기존 민중가요 진영에서는 일 년에 새 음반이 채 10장도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데 기존의 민중가요 진영과는 거의 연계가 없고 경험도 다른 뮤지션들이 이렇게 민중음악이라는 이름으로 유사한 정서와 태도, 방식을 잇고 있다는 사실은 특별하다. 조직적 운동집단의 논리를 체현하지 않는 노래는 선언하지 않고 낙관하지 않으면서 차이를 드러내는데 이러한 태도는 1990년대 이후 민중가요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태도이기도 하다.

본가궁중족발에 연대하는 음악인들
본가궁중족발에 연대하는 음악인들ⓒ황경하 제공

이들의 노래 중에는 아직 ‘솔아 푸르른 솔아’나 ‘광야에서’ 같은 명곡이 없다고 저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새 민중음악 선곡집 3]에는 정형화된 표현이 없고, 지나치게 아름다워 들으면 좋지만 자칫하면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게 해버리는 과도한 미학이 없다. 그래서 이 음반을 들으면 궁중족발이라는 현실의 처절함에 대해, 그 현실의 악랄함에 대해 절절하게 공감하게 된다. 지금 그 곳에 있지 않은 자신의 위치와 입장에 대해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이 한 장의 음반은 훌륭한 예술작품들이 그러했듯 몰랐던 현실을 알게 해줄 뿐만 아니라 지금 자신이 어느 곳에서 어떤 자세로 현실을 바라보거나 대하고 있는지 거울처럼 드러낸다. 이 음반에 참여한 뮤지션들이 궁중족발이라는 로두스에 선 자신을 속이지 않고 드러내기 때문이며, 음악이 음악으로 존재하기 위한 방법론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노승혁이 부른 ‘어떤 평화’를 비롯한 수록곡들은 “가족의 아픔에 눈물 흘리고 이웃의 눈물을 외면하는 어떤 평화”를 드러내고, 우는 자들의 존재를 외면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결국 “잠 못 들게”되는 마음에 전염되게 만든다.

어떤 예술은 결국 감상을 넘어 윤리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간다. 좋은 예술작품은 확신보다 질문에 가깝고, 그 질문은 자신에게 향한다. 이 음반에 참여한 이들은 거대담론을 동원하거나 강력한 선전 선동의 언어를 쏟아내는 대신 정직하게 고백하고, 현장의 공기를 충분히 전달하고 재현함으로써 우리가 지금 무엇을 놓치거나 외면하고 있는지 스스로 깨닫게 만든다. 민중가요는 아니어도 현실을 노래하는 곡들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새 민중음악 선곡집 3] 음반은 음악과 삶을 가장 가깝게 연결하고 기록한 음반이자 다큐멘터리로서 제 역할을 충분히 다했다. 이제는 우리가 제 역할을 해야 할 순서다.

[새 민중음악 선곡집 Vol. 3 – 쫓겨나는 사람들] 수록곡 ‘오랜 시간 동안’(오재환&람) 뮤직비디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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