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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20년 넘은 할아버지의 농사일지가 큰 보물” : 청년 농부 김종명, 배정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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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의 삶은 참 척박하다. 많은 청년들이 밤늦게까지 일하고 퇴근해 집에 도착하면 쓰러지듯 잠든다. 다음날 아침 좀비처럼 부스스 일어나 직장으로 향한다. 짬을 내 휴식도 취미생활도 즐겨보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하는 의문을 마음에 품고 있지만, 선뜻 다른 삶으로 가는 길을 내지 못한다.

이런 도시의 삶을 뒤로 하고 다른 삶을 선택한 젊은 부부가 있다. 대학, 직장 생활로 십년 넘게 산 서울을 등지고, ‘가족’과 ‘행복’을 찾으러 경북 청도로 떠난 두 사람. 김종명(34)-배정란(34) 부부를 만났다.

“경북 청도에서 사과와 감 농사를 짓는 ‘가슴이 뜨거운 농부’ 김종명입니다”

“신랑과 함께 청도에서 농사 짓고 있는 배정란입니다. 올해 4월에 태어날 ‘보탬이’를 품고 있어요”

동글동글하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두 사람. 어떻게 청도에 와 살게 된 걸까. 종명 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청도는 제 고향이자 할아버지, 아버지의 고향입니다. 할아버지께서 평생 농사를 지어오셨죠. 그런데 2014년에 돌아가시고, 다음 해에 아버지도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가업을 이을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어요. 가업을 잇는 것이 값지고 행복할 것 같아서 2016년에 고향으로 돌아왔죠.”

청년 농부 김종명, 배정란 부부
청년 농부 김종명, 배정란 부부ⓒ사진 = 김종명 씨 제공

스스로 모든 것을 주도하며 살아 간다

종명 씨와 정란 씨는 서울에서 안정된 직장에 다녔다. 긴 취업 준비 끝에 어렵게 들어간 직장, 대학 때부터 일궈온 인간관계, 편리한 도시의 삶을 두고 청도로 오는데 고민은 없었을까.

“어렵게 들어간 대기업을 그만두는 게 쉽진 않았죠. 하지만 과도한 업무량과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회사생활은 참 힘들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아내와 함께 ‘진정한 행복이 뭘까’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결국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좋은 공기 마시며 여유롭게 살고 싶어서 결심하게 됐죠.”

정란 씨 역시 ‘행복’을 언급했다.

“내려오기로 했을 때 저는 직장생활 7년차였어요. 회사 안에서의 제 성장과 한계를 한창 고민했었죠. 그러면서 신랑과 함께 ‘진정한 행복’에 대해서도 고민했고요. 결론은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였고, 저희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함께 꿈꾸는 삶을 선택하기로 했어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간다니, 주변인들의 반대는 없었을까.

“회사의 동료, 상사들의 반대가 많았어요. 많은 연봉과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가는 걸 이해하지 못했겠죠. 결국에는 많은 연봉보다는 현재의 행복과 여유가 더 중요하다는 저의 진심을 이해해주고 격려해 줬습니다(종명)”

“저는 부모님께서 반대하실 줄 알았어요. 저는 고향이 전남 여수인데 성공을 꿈꾸며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로 대학을 왔고 십년 넘게 서울에서 살았죠. 부모님께서는 저한테 기대가 있으셨거든요. 그런데 저희의 결정과 계획을 말씀드리니 의미있는 것 같다고 허락해주셨어요(정란)”

벚꽃 속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배정란, 김종명 부부
벚꽃 속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배정란, 김종명 부부ⓒ사진 = 김종명 씨 제공

청도에서의 삶은 어떨까. 서울에서의 삶과 무엇이 다른지 궁금했다.

“예전과 분명히 달라진 것은 제 스스로 모든 것을 주도하며 살아간다는 점이죠. ‘8 to 6’ 같이 회사의 틀에 맞춰 살아가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계획하고 실천하는 여유 있는 삶이 만족스럽습니다. 무엇보다 아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지내는 것이 가장 만족스럽습니다.(종명)”

이 점에 대해서는 정란 씨가 할 말이 많은 모양이었다.

“청도로 오면서 돈을 잃고 시간을 얻었죠. 서울서 저희 연봉의 거의 절반 이하로 내려갔어요. 서울에서 우리 부부의 수입이 또래들보다 조금 높았던 것 같은데, 돈을 많이 모으지는 못했어요. 힘들게 벌었기 때문에 나를 위해 써야 한다는 보상심리가 있었고 그래서 많이 썼죠. 그런데 청도에 와보니 살아가는데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한 것 같지 않아요. 지금은 저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 정도만 벌고 있어요.”

“둘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저희 둘은 ‘소울메이트’ 예요. 농번기에는 밭에서 함께 정말 많은 시간을 보내고, 농한기에는 집에서 각자 때론 같이 취미생활을 해요. 저는 이 점이 가장 만족하는 부분이에요. 아직 신혼부부라 그럴까요?(이들은 2014년 12월에 결혼했다)”

“그전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생기지 않던 아이가 청도에 내려와서 기적처럼 반 년 만에 생겼어요. 서울에서는 난임 병원까지 다녔거든요. 아이가 생기지 않는 이유도 원인불명이었고요. 지금 생각해보니 스트레스와 환경오염이 큰 원인이었던 것 같아요. 귀농을 준비하면서 유기농 식단으로 바꾸고 스트레스가 없어진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아이가 생겨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만족감과 보람을 느껴요.”

대답을 하는 정란 씨의 얼굴이 미소로 가득 찼다. 그러나 연고도 없는 낯선 곳에 사는 일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을 터. 남편이 있지만 외롭고 쓸쓸한 적은 없었을까.

“왜 없었겠어요. 친구들과 퇴근 후 맥주 한 잔 하던 시간도 그립고, 주말에 강남에서 하던 브런치 시간도 그리워요. 지금은 그런 것들을 신랑과 대구에 가서 하죠. 청도에서 대구까지 차로 30분 정도 거리거든요. 답답할 때는 가서 아이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와요. 가끔은 혼자가기도 하고요. 요새는 친구, 전 직장 동료들이 저희 집으로 여행 오는 것처럼 놀러 와요, 그럴 때 얼굴을 보죠”

자신이 기른 '청도 비슬산 사과'를 들고 미소짓는 김종명씨
자신이 기른 '청도 비슬산 사과'를 들고 미소짓는 김종명씨ⓒ사진 = 김종명 제공

할아버지의 20년 넘은 농사일지가 큰 도움

두 사람은 2017년 본격적으로 농사에 도전했다. 새내기 농부들의 1년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종명씨가 한 해를 쭉 설명해 주었다.

“어릴 때 농사일을 도와드리기는 했지만, 혼자서 농사를 하는 건 처음이기 때문에 쉽지 않았죠. 농업에 관련된 전문서와 지침서를 봤지만, 제가 농사짓는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이 많아서 힘들었습니다.”

“지금 기르는 농작물은 사과와 감인데요. 사과는 할아버지께서 30년 전부터 길러 오신 오래된 사과나무를 그대로 키우고 있고요. 감은 청도의 특산물이에요. ‘반시’라고 씨가 없는 감이죠. 앞으로는 기후변화에 맞춰 새로운 작물을 지어볼까 하는 생각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도움과 날씨의 영향으로 감과 사과 모두 초보 농사꾼의 첫 수확치고는 괜찮았어요. 다만 감은 저장이 어려워서 수확 즉시 판매를 해야 해요. 이 때문에 공판장을 통해 판매 하다 보니 수수료도 내야하고, 경매를 붙이는 거라 좋은 가격에 판매하기 쉽지 않았어요. 사과는 저온저장고에 두고 판매할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는 좋은 가격을 받았죠.”

“올해 가장 보람찼을 때는 열심히 농사를 지어서 사과와 감을 수확했을 때죠. 특히 저희 사과를 드시고 맛있다고 피드백을 주시는 고객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즐겁습니다”

해가 바뀌었으니 2년차 농부가 된 종명 씨. 농사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게 더 많을 것 같은데 어디서 도움을 받고 있을까.

“오래된 서랍 속에서 찾은 할아버지의 농사일지가 큰 도움이 됐어요. 1년 중 언제 어떤 일을 해야하고, 어떤 농약과 거름을 줘야 하는지 적혀있거든요. 할아버지가 20년 이상 써오신 이 농사일지가 큰 보물이더라고요. 같은 마을에 살고 계신 막내 삼촌이 제 농사 멘토신데요. 많은 조언을 해 주셔서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막 수확한 청도 반시를 들고 즐거워 하는 김종명씨
막 수확한 청도 반시를 들고 즐거워 하는 김종명씨ⓒ사진 제공 = 김종명 씨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꾸는 청년농부 부부

종명씨는 무제초제, 무영양제, 무착색제 사과, 감을 팔고 있다. 유기농 농산물과는 뭐가 다를까. 굳이 이런 농법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유기농 농산물은 무화학비료, 무화학농약 농법이죠. 자연농법으로서 친환경농법의 마지막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하는 무제초제, 무영양제, 무착색제 농법은 병해충 화학방제는 하지만, 제초제와 당도와 색깔을 더 좋게 하는 영양제와 착색제만은 사용하지 않는 겁니다. 최소한의 노력이죠”

“저의 최종 목표는 유기농 과일 생산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차근차근히 친환경 농법을 늘려갈 계획입니다. 친환경 농법을 실천하려는 것은 제 목표가 농업을 통해 많은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자연을 최대한 지켜가며 안전한 먹을거리를 만들고 싶어요.”

종명 씨가 농사일에 매진할 때 정란 씨는 조금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정란 씨의 일상을 들어봤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여성농업인을 위한 전통 장을 만드는 프로그램, 우리 밀, 우리 쌀을 이용한 베이킹 프로그램을 들었어요. 앞으로 우리 부부가 생산한 농산물을 활용해서 맛있고 영양가 있는 가공품을 만들고 싶어서 고민하고 있어요. 출산하고 나서는 베이킹을 본격적으로 배워서 사과를 이용한 제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이 부부의 2018년 농사 목표는 무엇일까.

“지난해에는 처음이라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도움 덕분에 성공적으로 첫 농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올해에는 최대한 저 혼자의 힘으로 농사일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싶어요.(종명)”

두 사람에게 어떤 농부가 되고 싶은지 포부를 밝혀달라고 부탁했다.

“저희 가족만 행복하기 위해 농사짓고 싶지 않아요. 저희 농산물을 먹는 분들도 행복하고, 같은 마을 어르신들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친환경 농법을 차츰 늘려가고 싶고, 제가 성공하면 주변 이웃들에게도 제안해서 친환경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함께 하는 청년 농부’가 꿈이랄까요?(종명)”

“맛있고 건강한 농산물을 만들고 싶어요. 우리 아이와 가족이 먹어도 안심할 수 있는 농산물로요. 시작할 때 가진 이 마음을 계속 가져가고 싶고요. 저희는 단지 농사를 지으러 귀농 결심을 한 것은 아니었어요. 더불어 사는 삶을 꿈꿔요. 주변 이웃들과 많이 나누고 함께 잘사는 시골을 만들기 위해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도 계획하고 있어요(정란)”

김종명, 배정란 부부가 키운 무제초제, 무영양제, 무착색제 사과
김종명, 배정란 부부가 키운 무제초제, 무영양제, 무착색제 사과ⓒ사진 = 김종명 씨 제공

젊을 때부터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 행복하다

농촌 고령화는 오래된 사회 문제다. 청도에는 종명, 정란 씨 부부처럼 젊은이들이 있을까.

“청도는 고령화가 전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심각한 지역이죠. 젊은 사람이 많이 부족하고요, 젊은 농부는 손꼽힐 정도로 적은 숫자만 있어요.(종명)”

“저희 밭이 있는 각북면에는 제 또래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60대 아주머니가 새댁이라고 불릴 정도니까요. 어르신들이 제가 어디 갈 때마다 위아래로 훑어보시죠. 다행히 마을 어르신들이 ‘새댁이 안 해봤을텐데 잘 한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셔서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있고요. 저를 지켜보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긴장은 좀 되더라고요(정란)”

젊은 농부들이 농촌에서 잘 생활할 수 있도록 이런 뒷받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없을까.

“제가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는데요. 그 때 책에서 배운 것보다 농촌과 지방의 현실이 더 열악하다는 걸 몸소 느꼈죠. 현 정부에서 청년층의 농촌 유입과 청년 농부 지원을 위한 많은 사업을 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청년들이 시골에서 살아가며 정말 필요한 것은 지원금이나 융자가 아니라 사회적 인프라인 것 같아요. 아이들을 위한 교육 시설, 의료시설 등 기본적인 여건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종명)”

“청도 보건소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있지만, 시설이나 프로그램 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차로 30분 걸리는 대구의 큰 산부인과 전문 병원을 이용하고 있어요. 소아과가 없어서 출산 후에도 좀 걱정이 되고요. 심각한 인구 부족 지역이라 출산 시 지원 혜택이 많긴 해요(정란)”

두 사람처럼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의 삶을 선택하겠다고 하는 다른 청년들이 있다면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는지 궁금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저는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해요. 젊을 때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요. 저희 부부는 그 행복을 찾기 위해 농촌으로 내려왔습니다. 농촌에서의 삶이 가끔 불편하고 무료하기도 하지만, 그를 상쇄할 만큼 여유롭고 행복합니다. 많은 기회가 있는 농촌으로 오세요!(웃음)”

평창동계올림픽 경북 경주시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선 김종명씨 .2018.01.02
평창동계올림픽 경북 경주시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선 김종명씨 .2018.01.02ⓒ사진 제공 = 김종명 씨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 과 ‘가족’

종명, 정란 씨는 농한기에 독서, 여행을 하며 한 해의 피로를 푼다. 두 사람의 SNS에는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들이 가득하다.

“저희 둘 다 독서를 좋아하는데 서울에서는 책 읽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았어요. 시골에선 고된 농사일로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적 스트레스가 오히려 적어서 책이 더 눈에 들어왔죠. 농한기인 겨울에는 하루종일 책읽기도 가능해서 참 좋아요. 특히 요즘에는 농사에 대한 책을 많이 읽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현대 농업은 과학적 영농이라 공부가 필수죠!”

최근에 종명 씨는 평창동계올림픽 성화 주자로 나서 경주 시내를 뛰었다. 어떻게 성화 봉송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작년 여름, 인터넷을 하다가 우연히 성화 봉송 주자 모집하는 걸 봤죠. 지원 선발 기준이 ‘자기만의 열정을 가진 사람’이란 것을 보고 딱 제가 해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지원서에 가업인 농사를 짓기 위해 서울생활을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온 저희 이야기를 썼어요. 그래서 선발된 것 같아요.”

“1월 2일에 경주시에서 성화 봉송을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동계올림픽의 성화를 봉송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방송을 통해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두 부부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봤다. 용기 있는 선택을 하고 다른 삶을 일구기 시작한 사람의 열정과 패기가 느껴졌다. 부모님의 뒷받침과 주변인들의 응원이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지만, 자신들의 결단과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느끼는 행복은 이들의 것이 아니었으리라.

종명 씨는 서울을 떠나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인생 제 3막을 시작하려 한다’고 썼다. 부모님 슬하에서 자란 청소년기가 제1막, 대학, 직장생활로 보낸 서울살이가 제2막이라면 청도에서의 삶은 또 다른 인생의 갈래가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에게 인생 제3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이뤄가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저희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과 ‘가족’이죠.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도시의 삶에서는 이루기 힘든 것들이죠. 가족들이 매일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고, 좋은 공기를 마시며 살아갈 수 있는 지금의 삶이 바로 ‘행복’인 것 같아요.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이에게도 이 행복을 알려주고 함께 만들어 가는 게 또 다른 목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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