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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2010년대 한국대중음악계의 빛나는 성취

소셜미디어를 횡단하다 보면 사람들의 마음을 보게 된다. 기뻐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화내는 마음. 그리고 체념하고 상처받고 그리워하고 후회하는 마음까지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거리를 지날 때 사람들의 표정은 대체로 무표정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속마음은 소셜미디어에 드러낸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례하고 무심한 사람이 아니라면 사람들 대부분은 강하기보다 연약하다. 가진 것 없고 권력도 없는 이들은 세상 앞에 자주 무력하다. 촛불을 들어 대통령을 내쫓았어도 생활 속 부당한 권력과 폭력과 불평등까지 쫓아내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우리 대부분은 오늘도 꾸역꾸역 산다. 시간이 흐른다고 삶이 크게 좋아지리라 기대하지 않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습관처럼 해가면서. 그렇다고 대충 살지는 않으려고 애쓰고 버티면서.

밴드 9와 숫자들의 리더 송재경(9)이 발표한 솔로 음반 [고고학자]를 들으면 이렇게 사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들의 삶이 그려진다. 송재경이 자기 자신의 마음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고고학자처럼 발굴해 노래했기 때문이다. 좋은 창작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어떤 세계관과 취향, 젠더, 지역, 세대를 껴안는다. 그리하여 시대를 말하지 않고도 시대를 보여준다. 세상에 홀로 유일한 사람은 없고, 우리는 함께 살아가며 닮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송재경의 노래를 들으며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은 노래 속 서사와 서사의 주체만이 아니다. 그 서사와 주체에 공명하는 자신이다. 노래 속 이야기와 태도, 감정 가운데 자신이 어떤 부분에 공명하는지가 자신을 말해준다. 자신은 공명하는 자신이며, 반응하는 자신이다. 그리고 함께 반응하는 이들은 더 많은 나들을 드러내며 지금 우리에 대해 말해준다.

솔로 활동과 밴드 활동을 거쳐 온 송재경은 이번 음반에서 팝과 포크, 록을 조율해 팝의 언어로 담았다. 전작들에서도 자신의 시선과 속내를 담아온 탓에 이번 음반은 완전히 독립된 송재경의 솔로 음반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송재경이 참여한 음반 작업의 연장선으로 읽히는 측면을 부정할 수 없다. 10곡의 수록곡에서 송재경은 다시 자신의 고민과 열망을 드러내는데 역시 자신에 대해 확신하고 자신하기 때문은 아니다. 확신하거나 자신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고민과 열망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고, 행여 비교해 보잘 것 없더라도 감추거나 말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송재경은 다시 어떤 개인의 자존을 기록하고 있다.

송재경 ‘고고학자’ 커버 사진
송재경 ‘고고학자’ 커버 사진ⓒ오름 엔터테인먼트

희망의 어슴푸레한 가능성을 따뜻하게 담아낸 송재경의 음악

송재경은 말한다. “좀 더 또렷한 목소리로/저를 불러 줄 수 있는지” 솔직하게 이야기 해달라고. “내가 만든 작은 세상으로” “어서 들어”오라고, “나는 깨어있을 거”라고. “손 한 번 더 잡아보고 싶어서/수작 부리는 게 아니”라고. 그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 욕망을 숨기지 않으며, 그 욕망 앞에 스스로 진실하다. 자신이 소중하고, 자신이 소중한만큼 자신이 응시하는 누군가도 소중하다. 그 마음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언젠가 “몇 해를 난 후회로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미지의 세계로 떠났”던 것을 지켜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아내며 알게 된 것이다. “소중한 건 오직 단 한 번의 밝은 너의 미소”라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기쁨인 자신을.

그러므로 그가 “오직 나는 그대 손에 달려있어요”라고 말하는 이유 또한 단지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자신이 실제로 “수수깡으로 되어 있”는 뼈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너무 속이 좁고, 너무 마음이 여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차지한 자리”는 “손바닥만큼”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이는 자신이 누릴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작은 행복이 한없이 소중하다. 이를 일컬어 소확행(小確幸)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너무 작고 미약한 존재이다. 하지만 세상에 나는 나 혼자뿐이다. 그러므로 누구도 ‘나’를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나는 나를 최선을 다해 살피고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송재경은 이번 음반에서 일관되게 자신을 드러내는 동시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호명하는 마음까지 함께 담아냄으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향한다. 그것이 둘만의 ‘방공호’일지라도 홀로 행복하고자 하지 않는 마음은 간절하고 따뜻하다. 세상의 각박함과 개인의 무력감에도 채 포기하지 않는 간절함은 “고고하게, 도도하게, 담담하게, 우아하게.” “작은 것들을 지키고/낡은 것들을 되살”리려 한다. 어쩌면 이 마음이 우리 사회를 더 이상 퇴행하지 않게 만드는 마지노선 같은 마음일지 모른다. 지난 겨울 내내 촛불을 들었던 마음, 아파트 경비원 해고를 막은 마음, 지금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안간힘 같은 폭로를 외면하지 않는 마음이 송재경의 노래 속에서 반짝인다.

이렇게 송재경의 노래는 다시 한 번 지금의 어떤 마음과 그 마음이 흐르는 시간을 함께 포착한다. 송재경의 음반은 창작자 자신의 성찰과 고백을 통해 시대의 공기까지 포착하면서 오늘의 내면을 담아냈다. 특히 이 음반은 장르의 방법론이나 사운드의 완성도에 매몰되지 않고 창작자 자신의 발언으로 한 장의 작품집을 만들어 내면서, 자신과 타자를 연결하는 작품들을 모아 그동안 쉽게 말할 수 없었던 어떤 공동체와 희망의 어슴푸레한 가능성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특별하다. 노래가 희망을 담아내는 방식은 불의에 대한 고발이나 법과 정부의 교체 요구만이 아니다. 자신을 속이지 않으며 타자를 외면하지 않을 때, 그리하여 존중어린 관심과 애정을 피워 올릴 때 비로소 희망이 뒤척인다. 희망은 바로 따뜻한 마음 그 자체이고, 송재경은 어느 때보다 진실하고 따스한 마음을 늘 그래왔듯 빼어난 멜로디로 소박하게 담아냈다.

송재경
송재경ⓒ오름 엔터테인먼트

밴드 편성으로 내놓은 전작들에 비해 편성은 단출한 편이다. 어쿠스틱 기타와 건반을 기본으로 관악과 현악을 필요에 따라 추가하고, 이따금 밴드 편성으로 노래하는 곡들은 담백한 리듬 아래 펼쳐진다. 덕분에 보컬이 부각되고 송재경의 노래라는 사실은 더욱 선명해진다. 평이하게 들릴 수 있는 곡임에도 송재경이 만들어낸 멜로디는 노랫말에 담긴 서사의 기승전결과 그 안에 담긴 감정을 잘 전달한다. 소박한 편성은 오히려 노래의 진실함을 부각시킨다.

여기에 효과적으로 사용한 건반과 관악/현악기 연주는 노래에 우아한 깊이를 만들어준다. ‘손금’에서 관악기 연주가 아스라하게 흐르고, ‘문학소년’에서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 시작한 곡이 건반으로 연결되면서 영롱하고 향수 어린 공기를 만들어 낼 때 송재경의 노래는 노래 이상의 음악적 매력을 획득한다. 애수 어린 ‘메트로폴리스’의 도입부는 송재경의 창작력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중간 간주에서 펼쳐지는 복고적이고 아름다운 앙상블은 이번 음반에서 가장 깊은 사운드의 쾌감을 안겨준다. ‘작은 마음’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한 현악 연주와 ‘고고학자’에서 아련하게 울려퍼지는 건반 연주도 곡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덕분에 송재경의 음반은 편안하게 들으면서 위로받고 공감할 수 있는 음반이자,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며 생활의 순간순간 곱씹을 수 있는 음반이 되었다.

설득하기보다 부탁하고 고백하는 음반의 태도에 맞물리는 담백한 사운드와 매력적인 멜로디는 송재경이 지금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뛰어난 싱어송라이터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한다. 2010년대 한국대중음악계의 빛나는 성취 중 하나는 송재경이 해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 사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며, 먼 훗날 오늘을 발굴해도 마찬가지이다. [고고학자]가 그 증거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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