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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유착으로 성장한 롯데, 정경유착으로 총수가 구속되다

롯데그룹 총수 신동빈 회장이 마침내 구속됐다. 롯데 역사상 총수가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롯데는 그동안 반은 일본, 반은 한국 기업으로 활동하며 교묘하게 국내법의 규제를 피해온 대표적 기업이다. 사업을 확장할 때에는 일본 자본으로 인정을 받아 외자도입법에 의해 각종 세금을 감면받았다. 하지만 광복절만 되면 롯데는 버젓이 태극기를 롯데타워에 내걸고 그룹 매출의 90%가 넘는 한국 시장에서 애국자인 척을 했다.

이번에 구속된 신동빈 역시 군대를 가야 할 20, 30대 때에는 일본인 시게미츠 아키오(重光昭夫)로 살면서 병역 의무를 피했다. 하지만 40대가 되자 귀신같이 한국 국적을 취득해 한국인 행세를 시작했다.

롯데그룹 4세 승계자로 예상되는 신동빈의 장남 신유열도 사실은 시게미츠 사토시(重光聡)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사토시의 국적도 일본이기 때문이다. 사토시 역시 병역 의무가 필요 없어질 40대가 되면 한국 국적을 취득해 신유열이라는 이름으로 롯데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양국에 양다리를 걸친 롯데는 철저히 한국의 법망을 피했다. 창업주 신격호는 지난해 12월 열린 롯데 총수 일가 배임 및 횡령 재판에서 ‘셋째 부인’ 서미경에게 주식을 증여하면서 무려 706억 원의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증여된 주식이 일본 주식이었고, 서미경이 실질적으로 국내에 거주하지 않아 한국 조세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 부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증여세 포탈을 안 했다는 게 아니라, 서미경이 실질적으로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한국 세법을 적용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같은 재판에서 검찰은 신동빈에게 횡령과 배임 혐의를 물어 징역 10년과 벌금 1000억 원이라는 중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신동빈은 “모든 잘못은 아버지에게 있다”며 죄를 신격호에게 뒤집어씌우는 덤터기 전략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롯데는 늘 이런 식으로 현해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한국의 법질서를 조롱했다. 그런데 13일 한국의 사법부가 국내법을 적용해 ‘한국인’ 신동빈을 구속했다. 정경유착으로 성장을 거듭했던 롯데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정경유착의 덫에 걸려 마침내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 연루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 6개월과 추징금 70억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연루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 6개월과 추징금 70억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민중의소리

롯데백화점이 아니라 롯데쇼핑이었던 이유는?

롯데그룹의 역사는 ‘정경유착의 역사’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롯데는 정치권과 늘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성장을 거듭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청와대 궁정동 안가에서 살해됐는데 박정희가 죽기 직전 대통령으로서 공식적으로 했던 마지막 공무(公務)는 명동 롯데쇼핑센터의 건축을 허가한 일이었다.

1979년 박정희는 도심에 인구가 너무 집중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강력한 도심 인구 억제 정책을 실시했다. 이 때문에 도심 한 복판에 백화점을 짓겠다고 나선 롯데의 계획은 통과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박정희는 롯데백화점 허가를 내주고 싶어 했다. 이를 눈치 챈 서울시는 롯데백화점 명칭을 ‘롯데쇼핑’으로 바꾸는 묘수를 내놓았다. 규정만 따져서는 서울시 한복판에 대규모 백화점을 허가할 수 없었지만 백화점이 아니라면 ‘쇼핑 복합시설’이라면 도심이라도 건축허가를 내 줄 수 있다는 점을 서울시가 발견한 것이다.

롯데의 유통 계열사 명칭이 롯데백화점이 아니라 롯데쇼핑이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박정희는 또 주차장 부지가 부족했던 롯데에게 그해 4월 지금의 소공동 롯데호텔 신관 자리에 있던 산업은행 본관 땅을 팔도록 지시할 정도로 롯데를 살뜰히 챙겼다.

박정희의 비호 아래 롯데는 1974년 6월에 실시된 반도호텔 매각 입찰에서 단독으로 입찰해 42억 원에 반도호텔을 차지했다. 당시 김종필은 서울시장을 집무실로 불러 “호텔롯데 건설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신격호는 김종필과도 매우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김종필이 한일수교 막후협상의 역할을 맡았을 때 신격호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김종필이 굴욕적인 한일수교 협상을 성공리(!)에 이끌도록 도왔다. 신격호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김종필의 오른팔이었던 김동환을 1973~1974년 호텔롯데 사장으로 임명했다.

롯데월드의 꿈을 이루게 해 준 전두환

롯데는 전두환 정권에서도 승승장구했다.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의 저자 손정목 교수는 “확실한 것은, 전두환은 국보위 의장 때부터 대통령의 재임 기간이 끝날 때까지 언제나 롯데그룹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제5공화국 전두환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기업인 하나를 꼽으라면 신격호가 거명될 정도로 두 사람 사이는 각별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잠실 일대에 그럴싸한 위락시설을 원했던 전두환은 이 엄청난 특혜를 롯데에 몰아줬다. 이 사업에서도 롯데는 일본 기업으로 인정을 받아 다양한 감세 혜택을 누렸다.

한때 제2롯데월드로 불렸던 롯데월드타워는 많은 사람들이 롯데와 이명박의 합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제2롯데월드의 기반을 닦아준 사람은 다름 아닌 전두환이었다. 롯데가 제2롯데월드의 부지 2만 6000평을 차지한 때가 전두환 정권 말기였기 때문이다.

전두환은 대통령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둔 1987년 12월 12일 서울 강남권에 남은 마지막 노른자 땅인 제2롯데월드 부지를 전격적으로 롯데에 불하했다. 이 엄청난 결정에 대한 진실은 1996년 전두환 비자금 수사에서 밝혀졌다. 전두환이 땅을 롯데에 불하하기 한 달 전인 11월 신격호는 전두환과 청와대에서 독대했고, 그 자리에서 전두환에게 50억 원을 건네준 것이다.

검찰 수사결과 신격호는 이외에도 1984년 10억 원을 바친 것을 비롯해 5차례에 걸쳐 모두 150억 원의 뇌물을 전두환에게 제공했다. 신격호는 이 뇌물 덕에 송파 노른자 땅을 시가(市價)의 절반 수준인 819억 원에 삼켰다. 제대로 판결했다면 최소 징역 15년 형은 받았어야 했던 중대한 뇌물범죄였다.

신격호의 구세주는 김영삼이 아니라 이명박이었다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신격호는 마침내 가슴 속에 품었던 최후의 꿈을 이룰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100층이 넘는 마천루를 짓는 것, 그것이 바로 일흔을 막 넘긴 신격호의 마지막 꿈이었다.

신격호가 김영삼 시절 이 꿈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그와 김영삼과의 관계가 워낙 각별했기 때문이었다. 경남 출신인 신격호는 야당 인사였던 김영삼에게 늘 살가운 애정을 드러냈다. 김영삼이 롯데호텔을 방문하면 VIP 주차장은 늘 김영삼의 몫이었다. 실제로 신격호는 1990년 보수 대연합으로 불렸던 민자당 합당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신격호는 김영삼이 집권하자마자 대통령 차남 김현철의 장인 김웅세를 롯데물산 사장으로 끌어들였다. 롯데물산은 바로 제2롯데월드 사업을 추진하던 곳이었다. 대통령 사돈을 끌어들인 신격호는 김영삼에게 100층이 넘는 마천루의 건축 허가를 내달라고 간곡히 졸랐다.

하지만 신격호와 가까웠던 김영삼도 그 청탁만은 들어줄 수 없었다. 잠실 지역에 100층이 넘는 마천루가 생기면 교통 혼잡은 눈에 보듯 뻔했고 인근 군사기지인 성남 비행장(서울공항)의 안전 문제도 해결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신격호는 김대중 정부 때에도 친분이 있는 박태준을 앞세워 제2롯데월드 승인을 신청했다가 퇴짜를 받았다. 같은 시도가 노무현 정부에서마저 퇴짜를 맞자 신격호는 마침내 방향을 틀었다.

신격호가 눈을 돌린 곳은 미래의 권력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서울시장 이명박이었다. 2005년 롯데는 이명박의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인 장경작을 호텔롯데 대표이사로 전격 영입했다. 장경작이 영입되자마자 롯데와 이명박의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오죽 유착이 심했으면 세간에서는 이를 ‘친구 게이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장경작의 직책은 제2롯데월드 사업을 총지휘하는 호텔롯데 총괄사장으로 바뀌었다. 장경작은 제2롯데월드 사업이 승인된 뒤 롯데에서 퇴임했고 이후 이명박이 세운 청계재단 감사로 임명됐다.

장격작이라는 다리를 놓은 롯데는 아낌없이 이명박에게 편의를 베풀었다. 이명박은 2007년 당내 대선 경선 때부터 롯데호텔 31층 스위트룸에 머물렀다. 이명박이 당선인 시절 조각 작업을 한 곳도 롯데호텔 스위트룸이었다.

장경작을 통해 이명박의 마음을 얻은 신격호는 2006년 서울시로부터 꿈에 그리던 제2롯데월드 건설계획안을 승인받았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공군의 반대가 심하다는 이유로 서울시의 승인을 행정조정협의에 넘겨버리면서 신격호의 꿈은 또 다시 제동이 걸렸다.

마침내 이명박이 2008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서울시장 이명박의 지원은 대통령 노무현에게 막혔지만, 이제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이상 신격호의 꿈을 이루는 일에 장애물은 완전히 사라졌다.

2008년 4월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투자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합동회의’에서 국방장관 이상희는 제2롯데월드 계획에 우려를 표시했지만 이명박은 이상희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상희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이명박은 “날짜를 정해놓고 그때까지 해결할 수 있도록 검토하라”고 강력하게 압박을 가했다.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상량식에서 123층에 사용될 마지막 대들보가 크레인에 메달려 올라가는 모습.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상량식에서 123층에 사용될 마지막 대들보가 크레인에 메달려 올라가는 모습.ⓒ김철수 기자

이후 이명박은 제2롯데월드에 반대한 공군참모총장 김은기를 경질하는 등 공군의 반대론자들을 삽시간에 제압했다. 그리고 2009년 마침내 신격호에게 123층짜리 마천루 제2롯데월드의 건축 승인이라는 선물을 안겼다.

정경유착으로 흥한 자, 정경유착으로 망하리라

이명박과의 유착이 워낙 강했던 탓에 롯데는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상당한 고초를 겪었다. 2016년에는 정운호 게이트가 롯데 비자금 게이트로 이어져 그룹의 자금 총책임자였던 이인원 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벌어졌다.

하지만 롯데는 정경유착의 달인답게, 박근혜 정권과 다시 돈으로 거래를 시작하며 관계를 복원해 나갔다. 신동빈은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출연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박근혜의 마음을 돌렸다. 그리고 박근혜와 30분 동안 독대한 자리에서 박근혜가 K스포츠재단의 하남 거점 체육시설 건립자금 지원을 요구하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롯데그룹 면세점 사업 연장을 요청했다.

면세점 신규특허와 관련한 청탁을 하고 신동빈이 건넨 뇌물은 70억 원. 아버지 신격호는 전두환에게 150억 원을 갖다 바쳐도 아무 일 없었기에 신동빈은 70억 원 뇌물쯤이야 가볍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8년 2월 13일 한국의 사법부는 반세기 동안 정경유착으로 승승장구했던 롯데의 총수 신동빈을 구속함으로써 ‘정경유착으로 흥한 자, 정경유착으로 망하리라’라는 사법정의를 제대로 세웠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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