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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의 사람과 현장] 그대들, 수고했소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투쟁문화제를 열고 있는 하이디스 노조원들과 노동가수 김성만씨(맨 오른쪽)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투쟁문화제를 열고 있는 하이디스 노조원들과 노동가수 김성만씨(맨 오른쪽)ⓒ엄미야 제공

혜인아, 지은아, 효선아, 덕희야, 수미야, 소행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너희들의 어수선한 마음을, 몰래 흘렸을 눈물을, 그리운 마음을.
지회장이 지난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더구나. 담담하게 “하이디스의 투쟁은 여기까지입니다. 동지 여러분 죄송합니다”라는 그의 글 속에서 그만의 향기가 느껴졌다. 그랬지. 너희의 대장인 그는 늘 그래왔으니까. 늘 꾸준했고, 한결 같았고, 그래서 나는 때로는 그가 답답했지. 결정이 느렸고, 극적인 결단 같은 건 잘 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입에 달고 산 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조합원들이 그렇게 하지 말래요”라거나 “조합원들이 할 수 있대요” 뭐, 이런 말들이었다. 그게 핑계인건지, 아니면 당연한 지도자의 덕목인건지, 가끔 헷갈렸지만 이 투쟁은 무엇보다 너희들의 ‘생존권’ 투쟁이니까 “당사자인 당신들이 길을 가장 잘 알겠지”하며 믿었다. 기다렸다.

혜인아, 지은아.

2015년 2월 어느 날을 기억한다. 불과 몇 달 뒤면 문을 닫겠다고, 하이디스는 생산공장을 운영할 경영계획이 없다고, 특허사업만 유지하겠다는 문서를 바라보며 분노에 몸을 떨던 그 날, 너희의 교섭대표였던 나는 마침 사랑니를 뽑아 극심한 통증으로 너희들에게 아무런 결의의 말도, 힘내라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잔뜩 걱정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었지. 사랑니가 뽑혀 나간 자리가 아픈 건지, 마음이 아팠던 건지도 잘 모른채. 나에게도 그렇게 시작된 싸움이었다.

나는 이 투쟁 덕택에 정신과 치료도 받아보고, 심리상담사도 여럿 찾아다녔다. 결국 의사나 상담사보다 천막에 한 번 더 가는 것이 도움이 됐지만, 그걸 몰라서는 아니었는데, 지나고보니 그 땐 너희들보다 내가 먼저 살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욕심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공장이 문을 닫은 지 첫 해를 보내고 두 번째 겨울, 광화문 대만영사관 앞에서 같이 노숙을 하면서 동갑내기 조합원 한 명이 그리 말했지. “엄부(당시 금속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 우리 이번 겨울은 집에 가서 잘 수 있게 해줘”. 그러마, 했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못난 사람이다. 나는.

효선아, 덕희야.

이천에 있는 설봉산에 같이 올랐던 적 기억나니? 거기서 우리 서로 짝꿍 지어서 이야기 했던 적 있잖아. 그 때 이제 막 결혼을 앞두고 있는 조합원 하나가 나에게 조그마한 소리로 이야기했다. “저는 엄부가 하이디스를 맡는다고 했을 때 ‘이제 금방 해결 되겠구나’ 생각 했어요” 그 말이 내내 사무치더구나. 그래. 나도, 우리 모두 금방 해결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최선을 다해 싸웠다. 사람이 죽었고, 젊은 여성 조합원들이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쌩 노숙을 하고, 조합원 전체가 대만 원정투쟁을 가고, 타국에서 굶어도 보고, 유치장에도 가고, 추방도 당해보고. 어디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 빼고는 다 했는데, 그런데 그게 맘처럼 잘 되지가 않았다. 아, 이 싸움 끝이 있을까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청와대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또 풍찬노숙을 하며 또 한 해를 넘기면서 너희,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하이디스 조합원들이 사측의 인원감축에 규탄하고 나섰다.
하이디스 조합원들이 사측의 인원감축에 규탄하고 나섰다.ⓒ하이디스 노조

그런데 수미야, 소행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주인이 있는데, 투쟁에도 ‘주인’이 있다는 사실을.
“이 싸움은 우리 조합원들이 끝내고 싶을 때 다 같이 끝낼겁니다” 이 말이 너희 대장의 일관된 이야기였다. 내가 아무리 몰아 부쳐도 영 느리게 반응하는 너희 대장의 이런 심지가 결국 오늘의 끝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사라진 공장, 먹튀한 자본, 돌아갈 공장이 없는 싸움이라는 막막함 속에서 ‘주인’인 너희가 선택한 길은 “이것은 잘못됐다”고 세상에 원 없이 외치는 일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외침이 대만 시민사회를 움직이고, 동지를 만들고, 결국은 ‘외투먹튀 방지법’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오늘에서야 챙겨 생각하게 된다.

그래. 이 싸움의 주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희들이었다. 그것을 내가 할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오만함을 오늘에서야 사과한다. 용서해주겠니?

나도 이제 내 마음에서 하이디스 투쟁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리고 살아서 그가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죽어서 너희들의 사랑을 과분하게 많이 받은 그 사람, 배재형에게 가 볼 생각이야. 나는 그를 부를 때 “이 답답한 사람아, 이 못난 사람아” 이런 말이 절로 나오는데, 내가 뒤늦게 깨달은 깨달음을 그에게 알려줘야겠다. 여보시오. 배재형. 이 싸움은 처음부터 당신 몫이 아니었소. 당신은 그저 두 손 꼭 잡아주는 좋은 ‘아저씨’였으면 되었을 것을.

혜인아, 지은아, 효선아, 덕희야, 수미야, 소행아, 그리고 74명의 그대들.
나는 안다. 결국 그대들이 세상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것도,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것도, 그리고 그 못난 사람과의 약속도 지키려고 부단히 맘싸움 했을 것도 안다.
노동자에게 이 땅에서의 날들은 이후에도 늘 크고 작은 싸움의 연속일테지. 그래서 이 고단했던 시간이 그대들에게 살아갈 맷집을 키워주었길 바라고 그랬을거라 생각한다. 이후의 삶이 더욱 소중한 그대들, 아름다울 그대들, 젊은 그대들. 수고했소.

덧붙이는 글:
지난 12일 하이디스 이상목 지회장이 본인의 페이스북에 ‘하이디스 투쟁을 마무리 합니다’는 글을 올렸다. 지회장은 글에서 지난 11월 말부터 2월초까지 해고무효소송 민사 2심 재판과정에서 조정절차를 진행했으며 재판부의 조정권고문에 따라 보상과 민형사상 소송 취하를 전제로 투쟁을 마무리할 것을 합의했다고 알렸다.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근본적으로 승리하는 법은 없다. ‘승리’라고 이름 붙이는 싸움의 결과물들은 사실 투쟁의 긴긴 여정에서 다음 산을 넘기 위해 힘을 비축하는 소소한 과정일 뿐. 그런 면에서 3년을 싸워 며칠 전 마무리 한 하이디스의 투쟁을 나는 감히 ‘승리한 투쟁’이라고 말하고 싶다.

엄미야 금속노조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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