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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은 삼성의 다스 소송비용 대납과 무관했을까?

편집자 주: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삼성의 정경유착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이명박이 실소유주로 추정되는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의 미국 소송비용을 삼성이 대신 납부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이 사건의 뿌리는 2007년 터진 삼성 비자금 사건이다. 이건희는 이 사건으로 2009년 8월 유죄판결(배임과 조세포탈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 원)을 받았다. 그리고 그 해 12월 이명박은 오로지 이건희 단 한 명만을 사면하는 이른바 ‘원 포인트 1인 사면’을 실시했다. 삼성이 다스의 소송비용을 대납한 대가로 이건희의 사면을 따냈다는 추정이 충분히 가능한 대목이다. 검찰 수사를 계기로 삼성 비자금 사건의 전모를 3회에 걸쳐 검토해 보기로 한다.

재벌에 대해 많이들 오해하는 대목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재벌쯤 되면 굳이 자리나 직함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건희쯤 되는 사람이 회장 직함을 달건, 2선으로 후퇴했건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재벌들에게는 그게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재벌들은 이상하리만치 회장이라는 직책에 집착한다. 회장이라는 직함, 그리고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일은 생각보다 재벌들을 매우 강력하게 유혹하는 마약과도 같다.

이건 단지 명예욕이 아니다. 지분율이 워낙 낮은 탓에 재벌들은 자기가 직접 회장 자리에 있어야 덜 불안해한다. 그리고 혹시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라”는 요구가 나올까봐 자기가 늘 경영에 간여해 무언가를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려고 한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을 보라. 희귀병으로 목숨이 위협을 받는다며 온갖 앓는 소리를 다 하고 사면을 받았는데, 죽기 일본 직전이라던 그 순간에도 이재현은 회장 직함을 놓지 않았다. 전과 2범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2013년 1월에 구속됐는데 감옥에서 무려 3년 8개월 동안 회장직을 유지했다.

2009년 1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건희에게 사면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선사했다. 이 사면이 왜 중요했냐면, 이건희는 2008년 터진 비자금 사건으로 삼성그룹의 모든 직함에서 물러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건희는 정말로 경영에 복귀하고 싶었다. 하지만 건국 이래 최대의 비리 백화점으로 불렸던 비자금 사건의 여파로 그에게는 복귀의 명분이 필요했다. 그 명분이 바로 사면이었다. 이명박이 선물한 사면은 이건희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한 선물이었다는 이야기다. 실제 사면을 받은 이건희는 보름 뒤에 냉큼 경영 복귀를 선언할 정도로 경영 복귀를 빠르게 추진했다.

이학수와 이재용, 누가 주범일 확률이 높을까?

이건희의 사면이 너무 큰 선물이었기에 당시 세간에서는 이것이 절대 공짜였을 리 없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부산일보는 “이건희 회장 사면, 청와대-삼성 빅딜?”이라는 기사를 통해 사면을 두고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최근 검찰의 수사 방향을 보면 삼성이 다스의 소송비용을 대답한 시기는 이명박이 이건희의 사면을 결정하기 직전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검찰은 이 일을 주도한 인물을 일단 이학수 전 고문으로 보는 듯하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한 곳도 삼성전자 본사와 이학수의 집 두 곳이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건희에게 그토록 중요했던 사면 문제를 이학수가 주도적으로 처리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왜냐하면 2008년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이학수도 고문으로 2선 후퇴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2008년 6월 12일 오후 삼성그룹의 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의혹 사건의 첫 공판이 열린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이 공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2008년 6월 12일 오후 삼성그룹의 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의혹 사건의 첫 공판이 열린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이 공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뉴시스

오랫동안 그룹의 2인자였던 이학수가 2선으로 물러나면서 2009년부터 삼성에서는 자연스럽게 이재용 시대를 준비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재용 시대가 열린다면, 이건희 시대의 2인자였던 이학수는 필연적으로 권력에서 멀어진다. 2009년은 이학수가 가라앉고 이재용이 부상하는 묘한 교차점이었다.

물론 ‘저무는 해’였던 이학수가 자기의 힘을 유지하려고 소송비용 대납을 주도해 공을 세우려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 확률이 낮은 가정이다. 왜냐하면 사면 보름 전인 12월 15일 삼성그룹은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는데, 이 인사의 주인공은 이학수가 아니라 이재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은 사장단 인사를 발표하면서 이례적으로 전무였던 이재용의 부사장 승진 사실을 밝혔다. 부사장이 사장단 인사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게다가 이 인사에서 이재용의 최측근이었던 최지성이 삼성전자의 단독 사장에 올랐다. 이 인사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학수의 시대가 저물고 이재용-최지성 시대가 열렸다’고 해석했다. 당시 한겨레신문의 보도를 보자.

“삼성그룹이 15일 사장단 인사를 통해 이건희 전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씨로의 경영권 승계를 본격화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이어져온 ‘이건희-이학수 체제’의 뒤를 이어 ‘이재용-최지성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밑그림을 내놓은 것이다.”

만약 이학수가 소송비용 대납을 주도해 이건희 사면을 이끌어낸 공신이라면, 사면 보름 전에 이뤄진 이 인사에서 이런 푸대접을 받을 수가 없다. 사면 보름 전 이건희는 이미 자신이 사면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감지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이학수는 이후에도 철저히 이건희로부터 외면 받았다. 이건희는 2011년 이른바 ‘신묘사화(2011년은 신묘년)’로 불리는 숙청 작업을 진행했다. 이때 이학수 사단이라고 불렸던 사장단 6, 7명이 해임됐고, 그들과 가까웠던 임원들도 줄줄이 목이 달아났다.

삼성 고위임원들에게는 퇴직 이후 2~3년 동안 급여와 사무실, 차량을 제공받는 이른바 ‘전관예우’가 있었는데, 이학수 사단은 이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이학수가 이건희의 사면을 따냈다면 2년 뒤 이학수 사단이 이런 숙청을 당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그 일을 주도했을지는 추정의 영역에 속한다. 이건희가 사면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받을 무렵, 이건희로부터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 그 일을 주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바로 이재용이다. 이재용은 사면 보름 전에 단행된 사장단 인사의 최종 승자였다.

이건희는 또 이재용이 가장 편하게 생각했던 최지성을 삼성전자의 단독사장으로 밀면서까지 이재용에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줬다. 이재용이 2009년 아버지 이건희로부터 매우 인정을 받을만한 일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새드 앤딩’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사건

하지만 이 사건의 화살이 궁극적으로 이재용을 향할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인다. 검찰이 이른바 ‘빼박’ 증거를 확보하지 않는 한 이 사건으로 이재용이 처벌을 받을 확률은 낮다.

한국 재벌들은 권력을 차지하는 순간 부모도 몰라보는 후레자식으로 돌변하는 습성이 있다. 만약 검찰 수사가 진전이 돼서 삼성이 다스 소송비용을 대납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도 삼성은 철저하게 “그것은 아버지 이건희의 진두지휘로 이뤄진 것”이라고 몰아갈 것이다.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어 구치소를 나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구속 수감 중이었다.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어 구치소를 나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구속 수감 중이었다.ⓒ임화영 기자

지난해 롯데경영권 비리에 관한 재판이 벌어졌을 때 검찰은 1심 재판에서 창업주 신격호에게 징역 10년과 벌금 3000억 원, 아들 신동빈 회장에게 징역 10년과 벌금 1000억 원의 중형을 구형했다. 그런데 이때 신동빈의 재판 전술이 “(경영 비리가 저질러지던 시기는) 부친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결정권을 갖고 있어서 아버지가 다 결정한 것이고, 신동빈 회장은 아버지 뜻을 거역하지 못해 소극적으로 이행했을 뿐이다”라는 것이었다. 자기 살겠다고 죄를 아버지에게 덤터기 씌운 것이다.

이런 후레자식 전술은 멋지게 성공했다. 1심 재판부는 신동빈에게 징역 1년 8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했다. 반면 아들로부터 죄를 덤터기 당한 신격호에게 재판부는 징역 4년과 벌금 35억 원의 실형을 선고했다. 물론 신격호는 고령을 이유로 법적 구속을 피했다.

삼성의 다스 소송비용 대납이 사실로 드러나도, 결정적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이런 결론을 향해 갈 가능성이 높다. 이재용은 모든 죄를 아버지에게 덮어씌울 것이고, 설혹 유죄 판결이 나더라도 이건희는 고령과 병을 이유로 구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대손손 비리를 밥 먹듯 저질러온 이재용 일가는 늘 이렇게 교묘히 법망을 피해갔다. 그래서 삼성의 다스 소송비용 대납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의 칼날은 정말 충분히 날카로워야 한다. 어지간히 무딘 칼로 삼성을 베기에, 삼성은 너무나 사악하고 영리하기 때문이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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