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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지나온 시간에 대한 감사, 기품 있는 음악으로 피어올리다
강아솔 3집 ‘사랑의 시절’
강아솔 3집 ‘사랑의 시절’ⓒ일렉트릭 뮤즈

아주 가끔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은 뮤지션들이 있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음악이 확 좋아지거나 안 좋아지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음악도 사람의 일이다. 사람의 일이라 마음이 고스란히 따라온다. 마음 같은 건 테크닉으로 감출 수 있고, 만들 수 있다고 믿는가. 물론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마음은 음색과 노랫말과 정조와 톤으로 삐죽삐죽 삐져나온다. 막고 감추고 속이려 해도 완전히 숨기기는 불가능하다.

전작에 비해 더 깊고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준 강아솔의 새 음반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이 햇수로 5년만에 발표한 새 음반 ‘사랑의 시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음반은 오직 사랑의 시절만은 아니었던 강아솔의 시간을 드러내면서 강아솔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새 음반에서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강아솔은 2012년 정규 1집을 발표하면서 데뷔한 후 계속 소박하고 수수한 포크 음악을 들려주면서 한국 포크 음악의 역사에 깊이를 더해왔다.

꾸준히 좋은 음악을 만들어냈던 강아솔은 그런데 이번 음반에서는 전작에 비해 더 깊고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자신의 목소리와 피아노, 현악기, 어쿠스틱 기타라는 악기는 대동소이하다. 강아솔은 최근의 포크 뮤지션들이 그러하듯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자신의 음악을 채우지 않는다. 강아솔은 피아니스트 임보라 등과 함께 작업하면서 클래식 악기의 단정함으로 자신의 음악에 격조를 불어넣었다. 이번 음반에서도 거의 유사한 악기를 사용하는데 전작들과는 다른 깊이와 무게를 느낄 수 있다.

이는 음반을 여는 연주곡 ‘겨울비행’ 이후 첫 번째 보컬 곡인 ‘섬’에서부터 강아솔이 좀 더 낮아진 목소리로 더 밀도 높은 소리의 집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섬’은 인트로 연주를 생략하고 피아노 연주의 틈 사이에서 강아솔의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한다. 숨을 죽이거나 발걸음을 멈춘 듯한 속도감에 어쿠스틱 기타와 가벼운 드러밍만 더해지는 곡은 강아솔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노랫말의 서사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노랫말에서 감지되는 정서는 “모든 게 다 내 탓” 같은 죄책감과 절망감이다. 해답도 없고 변화도 없는 죄책감과 절망감을 드러내면서 강아솔은 사랑을 고백하는 듯한 소박한 연주로 불편한 정서를 가시화하고, 곡의 말미에서는 현악 연주를 가미해 그 자책감을 더욱 간절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게 분출한다. 더욱 진중해진 목소리로 쉽게 이야기 할 수 없는 속 이야기를 꺼내놓으면서 그 감정을 미학적으로 전유하는데 성공한 곡의 완성도는 강아솔이 보낸 지난 5년의 시간을 찬찬히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상상은 자연스럽게 “모든 게 다 내 탓” 같았던 우리 모두 각자의 시간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음악을 비롯한 예술의 완성도는 창작자가 만들어놓은 작품의 세계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지에서 끝나지 않는다. 작품에 대한 공감은 작품을 향유하는 감상자의 삶, 그 시간으로 스며들어와 그의 삶과 경험을 복기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작품은 삶으로 향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사용된 언어에 대한 미적 감응이 병행해야 한다. 이 가운데 어느 쪽으로든 마음이 움직이게 만드는 작품이 좋은 작품인데, 특히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에서 끝나지 않고 삶으로 공감하고 되새기게 될 때, 예술은 인간과 인간 사이를 겨우 좁히며 특별해진다. 예술은 찰나의 순간이라도 그 거리를 좁히면서 자신과 타자를 더 깊이 인식하게 함으로써 비로소 나를 나답게 하고, 나 아닌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강아솔 3집 ‘사랑의 시절’
강아솔 3집 ‘사랑의 시절’ⓒ일렉트릭 뮤즈

지나온 시절과 현재를 살아온 자신에 대한 기록 ‘사랑의 시절’

강아솔이 새 음반 ‘사랑의 시절’에서 하는 일도 바로 그것이다. 그녀는 ‘아름다웠지, 우리’에서는 “아름다웠지”라는 과거형의 표현으로 사랑했던 관계, 결국 “저무는 노을빛의 석양”이 되어버린 관계를 들여다본다. 뜻대로 되지 않았으나 아름답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형으로 옛 사랑을 되새기고, 그럼에도 좋았다고 말할 수 있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자책과 원망이 있었겠는가. 강아솔은 말하기 어려웠던 날들을 스스로 감당한 후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 현악기를 섬세하게 연결해 지나간 시간의 낭만성과 뜻대로 되지 않은 안타까움을 매끄러운 음악으로 담아냈다. 그저 좋은 멜로디와 사운드에 감동하든, 자신의 옛 추억을 꺼내보든 어느 쪽도 모두 가능하다.

다정한 우정에 감사하는 곡 ‘다 고마워지는 밤’에서도 노랫말에 담긴 마음은 실제의 감정에 육박한다. 요란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충만한 마음은 결 고운 강아솔의 보컬과 담백한 피아노 연주와 슬로우 템포의 드러밍에 담긴다. 좋았던 순간, 그래서 잊혀지지 않고 때로 아릿한 화양연화 같은 순간을 담은 곡 ‘연홍’에서도 현과 피아노, 클라리넷의 내밀한 조응은 강아솔의 보컬 너머로 뭉게뭉게 추억의 시공간을 떠올려 지금의 순간으로 데려오고 만다. 이 악기들과 보컬이 너울너울 서로 오가며 한들한들 만들어내는 공기는 봄날의 고요와 나른함을 음악으로 생생하게 재현한다. 그러나 그 봄이 특별했던 것은 우리에게 당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아솔의 노래는 가슴 뭉클한 그 사실을 잊지 않게 해준다.

‘야간열차’ 역시 피아노와 보컬만으로 채워짐에도 노래 속 한없는 간절함을 아련하고 생생하게 복원한다. 실패한 사랑을 미처 떠나보내지 못하는 마음을 노래하는 ‘당신의 파도’ 역시 감정은 농밀하고 아픈데 노래는 정갈하고 연주는 서정적이다. 강아솔은 최소한의 연주와 목소리를 엮어 자신을 드러내 담지 않으면 만들어낼 수 없는 울림을 이어나가면서 끝끝내 음악의 기품과 깊이를 잃지 않는다. 아프고 생생한 감정의 속살이 드러나는데 음악은 절제되어 아름답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의 밤바다”에서 위로와 안식을 느끼는 ‘탑동의 밤’이나, 무심하고 무례한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고백하는 ‘그래도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단지 음악적 감각과 기술이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 강아솔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겪은 감정을 소중히 껴안으며 감당해 이제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며, 그 가운데 선의와 진심을 존중하고 감사하기 때문이다. 결국 강아솔의 음반 '사랑의 시절'은 지나온 시절과 현재를 ‘사랑의 시절’이라고 말할 수 있게 살아온 자신에 대한 기록이며, 그렇게 지나온 시간과 그 시간을 감당하며 살고 있는 자신에 걸맞는 감사의 음악적 헌사이다. 돌아보면 도처에 꽃이 있고, 나 역시 그 중 하나다. 느리게 그러나 끝내 피어나는 꽃.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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