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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평화올림픽’에서 작은 통일 이룬 공동응원단 “경기장에는 철조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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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어느덧 막바지다. '빚더미' 집안잔치 우려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제는 보란 듯이 역사에 남을 '평화올림픽'으로 자리매김했다. 경기장에서 단일기(한반도기)를 흔들고 북측 응원단과 마음으로 소통하며 작은 통일을 만들어낸 100여 명의 공동응원단은 그 주역 중 하나다.

20일은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코리아'의 마지막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경기장 앞은 아침 일찍부터 '코리아'의 마지막 경기를 응원하기 위한 응원단의 준비로 분주했다. 이날은 응원단의 마지막 응원이 펼쳐지는 날이기도 했다. 이들은 그동안 강원도 양양의 숙소와 강릉을 오가면서 평화의 함성으로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우리는 북쪽 응원단과 남쪽 관중들을 이어주는 오작교"

평창동계올림픽 남북공동응원단 지휘자 김태복(34) 씨.
평창동계올림픽 남북공동응원단 지휘자 김태복(34) 씨.ⓒ김태복 씨 제공

'코리아'의 경기가 벌어지는 곳이면 어디든 "우리는 하나다", "힘내라", "이겨라" 함성과 함께 수천 개의 단일기가 물결쳤다. 북측 응원단을 포함해 경기장의 모든 관중이 함께하는 '파도타기' 응원은 그중에 백미다. 응원단 지휘자인 김태복(34) 씨는 그 짜릿한 감동의 순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금세 심장이 요동친다고 한다.

"경기장의 관중들은 기본적으로 남북 단일팀에 호응하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들이 가득해요. 하지만 관중들이 북측 응원단과 직접 소통하며 한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장벽이 있더라고요. 그 상황에서 저희가 그들을 이어주는 '오작교' 역할을 하는 거죠. 남북의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구호를 저희가 외치고 호응을 이끌어내요. 그럼 어느 순간 경기장에서 '남'과 '북'의 경계는 사라지게 됩니다."

김 씨는 이미 4년 전에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 처음 응원단 활동에 참여했다. 당시 대규모 북측 선수들이 참가했지만 북측 응원단은 끝내 내려오지 못했다. 북미간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으며 어김없이 '한반도 위기설'이 제기되던 때였다. 관중석의 시민들은 북측 선수단을 목청껏 응원하고 싶어도 왠지 망설여졌다.

"그때 저희는 북측 선수들을 응원하는 게 우선 목표였어요. 아무도 그들을 환영해주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우리 선수 이겨라' 이것부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둑이 터지듯 어느 순간부터는 관중들도 같이 외치기 시작하더라고요. 정말 심장에 남는 경험이었어요. 그때부터 이 열기를 사회적으로 확산시켜야겠다는 고민을 시작했고, 이번 평창올림픽 응원도 그 연장선에 있는 거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열정적으로 북측 선수들을 응원 중인 김태복(34) 씨.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열정적으로 북측 선수들을 응원 중인 김태복(34) 씨.ⓒ김태복 씨 제공

남북의 길이 끊어져있는 동안 보이지 않는 장벽은 어느새 다시 세워졌다. 지난 10일 '코리아'의 올림픽 첫 경기인 스위스전에 북측 응원단이 나타났다.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 이후 13년 만이었다. 북측 응원단은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 열심히 응원했지만 남쪽 관중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북측 응원단이 파도타기 응원을 유도하는데, 관중들이 이걸 따라해도 되는지 헷갈려하는 것 같더라고요. 두 번째 경기부터는 '파도타기 하나라도 성공시켜보자' 해서 우리도 열심히 호응을 시도했죠. 서너 번째부터 전체가 돌기 시작했어요. 소름이 돋았어요. 이제는 우리와 북측이 자연스럽게 응원 구호를 주고 받는 경지까지 온 거죠."

'평양올림픽' 낙인 찍고 훼방놓던 극우 세력들…
"'압도적 평화' 조성되니까 인공기 불태우던 사람들 얼씬도 안 해요"

이렇게 북측 선수·응원단과 함께 즐기는 '평화올림픽'의 분위기가 조성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북측이 올림픽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직후부터 극우 언론·정당 및 단체들은 '평양올림픽' 낙인을 찍으며 훼방을 놨다. 지난 6일 북측 응원단이 탄 만경봉92호가 묵호항에 도착했을 때는 극우단체 회원들이 인공기를 불태우고 과격 폭력시위를 벌이는 등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때로는 북측 예술단의 동선을 따라다니며 시위를 벌일 정도로 극성이었다.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어졌어요. 보수단체들이 요란하게 집회를 해도 힘을 못받으니까 얼씬도 안 해요. 북측의 취주악 공연 때도 보수단체들이 망쳐놓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막상 압도적인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니까 나타날 엄두를 못 내는 거죠. 이제는 경기장을 찾는 시민들도, 자원봉사자들도 단일기를 달라고 먼저 얘기를 합니다. 매 경기 4천개씩 준비해도 모자라요. 엄청 달라진 분위기죠."

단일기를 든 남북공동응원단이 관중석을 마주보며 공동응원을 펼치고 있다.
단일기를 든 남북공동응원단이 관중석을 마주보며 공동응원을 펼치고 있다.ⓒ뉴시스

'노스 코리아? 사우스 코리아?'…"노, 원 코리아!"
"철조망 사라진 경기장의 기적을 일상에서도 실천해야죠"

한반도가 그려진 옷에 배지를 달고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의 김 씨가 신기한 외국인들은 "노스(North·북) 코리아? 사우스(South·남) 코리아?" 라고 물으며 관심을 표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김 씨는 "원(One·하나) 코리아!" 라고 쿨하게 답한다.

그는 현재 반전평화운동가의 삶을 살고 있다. 한때 직업 정치인을 지망하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언제나 '평화 전도사'로서의 삶을 추구해왔다. 그런 점에서 공동응원단의 일원으로 한 달을 다 보내면서 느낀 점도 많다. 특히 시민들이 '전쟁 말고 평화', '분단 말고 통일'을 외칠 준비가 돼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저 뿐만이 아니라 응원단 모두가 같은 생각이에요. 그래서 마지막 응원을 마친 저희들은 이제 자기의 생활공간으로 돌아가서 빨리 이곳의 감동을 전하는 활동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시민들은 평화를 말하고 실천할 준비가 언제나 돼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거든요. 경기장에는 철조망이 없었어요. 우리는 '작은 통일'을 체험한 당사자들이죠. 이제 우리가 경기장에서의 기적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평화의 '오작교'가 될 거에요."

열정적으로 응원 중인 평창동계올림픽 남북공동응원단 지휘자 김태복(34) 씨.
열정적으로 응원 중인 평창동계올림픽 남북공동응원단 지휘자 김태복(34) 씨.ⓒ김태복 씨 제공
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남자 대회전 경기장의 응원단
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남자 대회전 경기장의 응원단ⓒ2018평창사진공동취재단

신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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