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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의 사람과 현장] 나의 #미투, 폭로를 넘어

#술자리가 끝나고 남성 조합원 2명과 나, 이렇게 노래방에 갔다. 그런데 조금 있다 문이 열리더니 여성 도우미 한 분이 들어왔다. 나도 놀랐지만 그녀도 여자인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사람들이 탬버린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나는 그 자리를 조용히 나왔다. 기분이 불쾌했지만 싫은 내색을 하면 소심한 여성으로 비추어질까봐 두려웠다.

#남편과 연애할 시절 이야기다. 민주노동당 시절, 당 사무실에 모여 회의를 하는 자리였는데, 쉬는 시간에 나와 남편의 연애 이야기가 도마에 올랐다. 그 때 한 선배가 농담이랍시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00노조에서는 ‘엄미야를 빨리 자빠뜨리라’고 이야기 한다며?” 온몸이 파르르 떨렸지만 그 자리에서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하늘같은 선배들이었고 다들 아무렇지도 웃으며 넘어갔다. 나만 그 모욕감을 온 몸으로 감내해야했다.

#이 사건도 술자리였다. 피곤해서 노조 간부였던 그의 옆에 앉아서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에게 그는 그렇게 말했다. “어딜 봐? 왜, 만지고 싶어?” 취해서 한 말이라기엔 너무 멀쩡했고, 너무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그에게 화를 내지 못했다. 그 자리에선 못 들은 척 했지만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종일 그의 말이 뒤통수를 당겼다.

미투운동을 처음 접하면서 나는 내가 겪은 과거의 이 세 가지 사건이 떠올랐다. 이 중에는 속으로만 끙끙 앓다가 지나간 일도 있었고, 어떠한 방법으로든 알려서 사과를 받은 일도 있다.

여성-엄마 민중당 당원들이 1월 3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검사 성추행 사건 관련 검찰조직 공식사과 및 가해자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검사 성추행 사건 관련자 안태근, 최교일 처벌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여성-엄마 민중당 당원들이 1월 3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검사 성추행 사건 관련 검찰조직 공식사과 및 가해자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검사 성추행 사건 관련자 안태근, 최교일 처벌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임화영 기자

터져나오는 미투 사례, 여성에게 전혀 새롭지 않은 이유

이뿐만이 아니다. 말하지 않았고, 못하는 온갖 수련회에서의 기억, 일상적 음담패설, 술자리에서의 스킨쉽까지 치면 아마도 이런 기억 한 자락 없는 여성은 단언컨대 이 나라에 ‘단 한명도 없다’

연이어 터져나오는 미투 사례가 전혀 놀랍거나 새롭지 않은 이유이다. 적어도 여성들에게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자연스레 내 주위의 ‘드러나지 않거나 또는 못한’ 무수한 피해자와 가해자가 떠오른다. 그 사람들도 언젠간 폭로하거나 폭로될까? 폭로된다면 어떤 태도를 취할까? 회의를 하고 대책을 마련할까? 기자회견을 대비해 사전 리허설을 할까? 주변 지인들에게 입단속을 시킬까? 정략적 공격이라고 항변할까? 내가 아는 그 사람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옹호할까?

최근에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처음엔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이 전부 거짓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오래된 일이어서라기 보다 워낙 일상적이고 죄의식 없이 행하던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밀함의 표현이었다. 피해자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백프로 거짓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50~70대의 남성이고 권력을 가진 위치에 있는 자라면 더더욱 그런 마음이었을 공산이 크다. 그렇게 배우고 그래도 되었던 세대이다. 그리고 그걸 비호하고 묵인하는 주변 환경까지. 그들이 그러한 행위에 죄의식을 가졌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다들 그렇다고,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두둔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사죄하고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동안 몇 번의 신호가 있었을텐데,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갔던 그들이기에 그렇게라도 배워야 한다. 일반 범죄에는 너무도 당연한 수순인데,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성폭력’에 대해 너무 무지하고 또한 관대했다.

공식적인 폭로와 처벌은 그 어떠한 수단보다 강력한 학습효과를 가진다. 공자왈맹자왈 해봤자 “응. 좋은 얘기네. 그런데?” 이상을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우리사회의 젠더교육이었다. 현행 법률로 직장내성희롱예방교육이 의무화 되어있지만, 가장 형식적이고 관심 없는 교육이 바로 성희롱예방교육이었다. 그러다보니 ‘재미있는’ 교육을 한답시고, 얼마 전 구미에 있는 KEC라는 사업장에서는 교육 강사가 수강자들에게 “50대는 물이 안 나오니 어쩌니” 해대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져도 그런 강사가 인기강사가 되어 전국을 돌아다니고, 그런 사실조차 하나도 새롭지 않은 것이 우리 사회의 수준이었다.

미투 위드유
미투 위드유ⓒ창작집단 LAS 페이스북

지금이 본질적이고 본격적인 고민의 적기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달라졌다. 달라졌겠지. 달라지길 바란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미투 기사를 보며, 누군가는 피해 사실을 떠올리게 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내가 행한, 또는 내가 당한 ‘그 때 그 일’이 성폭력이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드러내지 못하는 무수한 피해자들에게 ‘가해한’ 무수한 그들이 지금이라도 미안한 생각이 든다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렇게 지금 우리 사회는 전 국민이 젠더교육, 성폭력예방교육을 ‘쎄게’ 학습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혁명’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 지금 일련의 과정들이 폭로와 처벌만이 난무한 채 적군과 아군을 나누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학습의 목적은 교훈이고, 학습의 결과물은 변화된 사회여야 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이 바로 처벌과 더불어 전 사회가 ‘재발 방지’의 방안을 본질적이고, 본격적으로 고민해야하는 적기이다. ‘강간’, ‘변태적 성행위’에 분노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술자리에서 습관적으로 옆의 동료 무릎에 손을 얻는 것도 성폭력이라는 것을 ‘학습’해야 한다. 어깨를 주무르라고 하는 행동, “어제 밤에 잠 안자고 뭐했냐”는 따위의 어설픈 농담도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교육’ 받아야 한다. 내 아이에게도 여자친구의 치마를 들추는 ‘아이스케키’가 범죄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그렇게 초등학교때부터 젠더교육을 의무화하고, 형식적으로 머물러 있는 성평등교육을 강화시켜야 한다.

“몰랐다”, “친근함의 표시였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 듣고 싶다. 함께 싸우면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그리고 함께 교훈을 얻으면 우리는 훨씬 더 성숙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 #미투, 폭로를 뛰어넘어 그렇게 #위드유, 함께 배워가는 사회를 바란다.

엄미야 금속노조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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