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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은 돈에 민감하지만, 조선인은 자존심이 세다. 두들겨 패 길들여라”

99주년 3.1절을 맞아 동영상 강좌 [우리 역사를 바꾼 10개의 극적인 장면](전체 10강) 중 3.1운동 대목 강좌를 무료 오픈합니다. 1시간 분량의 강좌입니다. 조한성 강사는 과거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 조사관으로 활동하다 지금은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군함도』, 『해방후 3년』, 『한국의 레지스탕스』 등을 집필한 인기작가이기도 합니다.

일제는 왕실을 겁박하고 친일관료를 이용해 조선을 강제병합하는 과정이 무척이나 수월했다고 회고합니다. 정작 그들이 애 먹은 이유는 동학농민전쟁에서부터 시작해 쉼 없이 이어졌던 조선인의 항거때문이었죠. 조선총독부는 ‘조선인의 반항심’의 근원을 임진왜란과 일본에 대한 경멸심에서 찾았습니다.

압도적인 신식병기로 무장한 일제였지만, 조선인의 강한 자존심과 민족적 우월감을 맞닥뜨린 그들은 당황했습니다. 미개하다고 여겼던 조선인이 거꾸로 일제를 경멸했습니다. 일본식 근대화를 갈구했던 조선의 관료와는 달리 민중은 일제의 수법과 문화를 야만적이고 음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일제가 도입했던 '공창제도'는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성매매를 국가가 나서서 장려하고 여성을 동원해 군대에 위안소를 합법적(?)으로 설치할 수 있게 한 제도는 결국 '일본군 성노예', 종군위안부 강제동원으로 이어집니다.

이전까지 조선엔 사창은 존재해도 공창제도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영국이 인도에서 생산한 아편을 중국에 뿌렸다면 일제는 조선인에게 몰핀을 뿌렸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을 방문한 여성 외국인이 성인 남성들이 몰핀에 쩔어 일정한 시간에 성매매를 하기 위해 줄을 선 모습을 보고 기겁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인의 특질과 문화적 속성을 검토한 후 일제가 선택한 통치방법은 조선인에게 모멸감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타이완 등의 중국인에 대한 일상적 통치방법이 주로 벌금이었다면, 조선인에게는 벌금조차 태형으로 바꿔 즉결 처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중국인이 돈에 민감하다면, 조선인은 명예에 민감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살벌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조선인에 대한 경찰의 구타는 범죄혐의와 상관없이 상시적으로 했고, 칼을 찬 교사가 '훈육'이라는 미명하에 학생을 거의 실신지경까지 구타하는 일이 허용되었습니다.

1912년에 ‘조선태형령’으로 공표된 법률은 조선인에게만 적용되었고, 관서에서 즉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거리 곳곳에서 위생검사라는 명목으로 조선 여성의 치맛자락을 들쳐 항문검사를 하는가하면 경찰 1인당 하루 80대까지 칠 수 있도록 했고 연일 집행할 수 있었습니다. 태형을 당한 이들은 집에 돌아왔지만, 얼마간 신음하다 사망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탄압이 얼마나 꼼꼼했던지, ‘조선태형령 시행규칙’으로 매의 규격까지 표준화 했습니다.

일제의 태형은 조선시대의 곤장과는 달랐다. 조선에선 장을 맞는 이들이 직접 자신이 매를 선택하거나 가지고 올 수 있었지만, 일제의 '태'는 살상용에 가깝게 규격화되어 제작된 것으로 즉결로, 연일 집행할 수 있었다.
일제의 태형은 조선시대의 곤장과는 달랐다. 조선에선 장을 맞는 이들이 직접 자신이 매를 선택하거나 가지고 올 수 있었지만, 일제의 '태'는 살상용에 가깝게 규격화되어 제작된 것으로 즉결로, 연일 집행할 수 있었다.ⓒ구글


태는 길이 1자 8치, 두께 2푼 5리, 너비는 태 대가리를 7푼, 태 자루를 4푼 5리로 하고 대나무 조각으로 만든다. 마디를 제거하고 삼으로 세로 방향으로 싸는데, 잘라 낸 부분에서 태 대가리는 1치 2푼을 남기고 태 자루는 6푼을 남긴다. 삼실로 외부를 가로로 조밀하게 감는데 1회 감을 때마다 등 쪽에서 교차시켜 한 가닥의 모서리를 이루게 하고, 길이 5치의 천 조각으로 태 자루를 감싸고, 바깥지름은 태 대가리를 2치 3푼, 태 자루를 1치 5푼으로 한다.

가혹한 태형은 3.1 운동으로 인해 사라집니다. 3.1운동은 어느 날 사람들이 약속하고 일제히 들고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전국적 규모의 대사변을 일거에 일으키기 위해선 전국적 조직력이 필요했습니다. 만세시위를 위해 만주와 연해주, 일본, 조선 등에서 조직력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였던 과정은 한편의 대서사시라고 할 수 있죠. 특히 재일 유학생들은 독립운동을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조선에 ‘잠입’했는데, 3.1 거사 전 입국한 학생의 수가 무려 359명에 달했습니다.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일본 대학에서 조선학생간의 비밀회동을 위해 '너만 오라'는 식으로 소집한 모임에 수십명의 전 조선재학생이 몰려 회합이 무산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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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만민평등의 세상을 위하여 - 임술민란과 동학농민전쟁
2강 결사와 집회를 배우다 -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3강 독립과 민주주의, 자유를 향한 투쟁 – 3.1운동
4강 제국에서 민국으로 – 대한민국임시정부
5강 민주주의자들의 재생산 - 신간회, 그리고 조선공산당
6강 자치 능력을 보이다 - 8.15 해방
7강 두 개의 정부, 두 개의 민주주의 -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8강 다시 세운 민주주의 – 4.19혁명
9강 독재를 끝내기 위해 - 5.18 광주민주화운동
10강 재개된 혁명, 조그만 힘이 모여 세상을 바꾸다 – 6월항쟁

금영재 이산아카데미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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